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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교만한 간증

beautician 2021. 11. 18. 11:26

왕자와 공주는 정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서로 만나 첫 눈에 사랑하게 된 왕자와 공주가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결혼해 그 후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속 결론을 난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극적으로 맺어진 왕자들과 공주들도 그 후에 살아가는 동안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갈등과 고통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어쩌면 성격차이나 가정폭력, 또는 숨겨놓은 애인 때문에 이혼하거나 반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해 함께 목이 날아가거나 전쟁에서 패해 죽거나 노예로 잡혀갈 수도 있고 왕자가 왕이 된 후 후궁을 들여 본처 공주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었을 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의 마무리는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합니다. 장미 빛 찬란한 그 동화들은 권선징악과 사필귀정의 원칙을 도식적으로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착하고 진실하게 살라고 가르치지만, 그 후 반드시 만나게 될 고난과 역경의 가시밭길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인생이 사실은 어떻게 끝날 지 모르는 장기전이라는 사실을 끝내 가르쳐 주지 않는 거죠. 물론 그래서 동화인 거지만요.

 

어느 날 교회 주보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어느 대기업에서 신규사업의 안녕을 위해 고사를 지냈는데 모든 직원들이 참여해 고사상에 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A부장은 고사상 앞에 무릎 꿇기 싫어 탕비실에 숨어 있었습니다. 고사에 나타나지 않은 그는 상사들에게 괘씸죄로 찍혀 한동안 험난한 회사생활을 해야 했지만 그렇게 고사를 지내고 시작한 신규사업이 망가지면서 자신과 이사 승진을 다투던 라이벌 부장과 A부장을 곱지 않게 보던 그 위의 임원들마저 사태의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나게 되자 비로소 A부장은 막혔던 숨통이 트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승승장구하며 사장까지 고속승진을 했다는 것입니다.  A부장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신앙을 지킨 자신에게 하나님이 축복한 것이라고 믿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대목에서, 이 사건을 겪은 당사자는 아마도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역사한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내겐 참 얄팍하고도 일방적인 간증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간증의 맥락은 고사상에 절하지 않은 자신은 축복을 받아 승진했고 고사에 참여한 경쟁자와 상사들은 모조리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 결국 회사에서 잘리고 말았다는 취지로 전개됩니다. 정말 하나님이 그들의 생계를 끊어버린 것일까요?

 

30년 전쯤 들은 것이지만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고 주말 가족여행을 떠났던 한 집사님 가족 전원이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모두 사망했다는 옛 목사님의 설교가 떠올랐습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였죠. 당시 성도들은 열정적으로 아멘을 외치며 주일을 철저히 지키겠다고 다짐했지만 사실 그날 그 목사님은 인간들을 사랑해 자기 몸까지 내어 주었다는 신이 사실은 교회 안나오는 사람들을 교통사고로 막 죽여버리는 파렴치하고도 잔혹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직장인이라면 다니엘처럼'(원용일 저)라는 책에 실린 예의 A부장의 간증도 본질적으로 그 목사님의 설교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그가 정말 그 경험이 자랑스러워 사람들 앞에서 간증까지 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에겐 그게 사필귀정이었겠지만 고사를 피해 탕비실에 숨어 있던 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이었을까요?

 

난 사실 A부장의 다음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그렇게 승진한 그가 10년 후, 20년 후 어떻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잘린 라이벌 부장과 임원들 역시 그들의 인생이 거기서 그렇게 끝났을 리 없습니다. 어쨌든 우리들의 삶은 계속되는 것이니까요. A부장이 자랑스럽게 간증하던 그 사건이 언젠가 어떤 계기로 자신의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변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인생의 쓴 맛을 못 라이벌 부장이 어느 날 유망한 스타트업을 꾸려 재계의 준재벌로 거듭났을 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A부장과 라이벌 부장의 승패가 죽는 날까지 절대 뒤바뀌지 않았을까요? A부장은 그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인생은 장기전인데 말이죠.

 

4.3 사태 당시 제주도 양민들을 학살하던 서북청년단에 대해 '우리 교회 청년들이 잘 하고 있다'고 말했던 한경직 목사님의 입도, 온갖 부정부패로 국가의 자산과 국민의 세금을 철저히 탕진해 버리고도 역대 정권 중 '도덕적으로 가장 당당힌 정권'이라 말했던 이명박 전대통령의 입도 이젠 부끄럽기 짝이 없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목사님도 세상 꼭대기에 섰던 위정자도 결국 그리 멀리 내다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전성기를 되돌아보면 꼭 A부장의 간증을 듣는 것만 같습니다.

 

ROTC 전역자라면 대기업 입사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던 1988년 6월 사회로 복귀한 내 동기들 중 J만 유일하게 취직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베트남어를 전공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공산화된 지 얼마 안된 베트남은 한국에겐 절대적 적국이었고 외교관계도 없었으니 그의 전공은 오히려 그의 족쇄가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본의 아니게 대학원에 진학하고 중국어와 영어 공부에 더욱 매진하면서도 몇 년째 직장을 구하지 못하던 그를 만날 때마다 대부분의 동기들은 술을 사며 위로했고 어쩌면 빠져나올 수 없는 나락에 빠진 것만 같은 그의 모습에 내심 우월감을 느낀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트남 시장이 열리자 갑자기 각광받기 시작한 그는 LG그룹 기획실에 특채로 들어가더니 이후 유수한 업체들을 징검다리 타듯 거치며 유리한 조건으로 가장 먼저 베트남에 들어가 승승장구한 끝에 지금은 호치민 일대에 현대화된 제약공장 여러 개를 거느린, 동기 중 가장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한때 수세에 몰렸던 젊은이가 강산이 두 세 번 변한 후에도 여전히 인생의 그 어두운 코너에 몰려 있을 리 없는 일입니다.

 

물론 J의 삶도 거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의 사업도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 부침을 계속 하겠죠.

내가 처음 5년 임기를 예상하며 인도네시아 왔을 때 만약 여기서 20년 넘게 살게 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여러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해보려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현지인들을 사귀며 저변을 넓히고 정식으로 학원에서 인니어를 배울 뿐 아니라 중국어와 네덜란드어도 배우고 현지 국적을 따기 위한 준비도 차근차근 했을 것입니다. 20년은 그 모든 것을 해내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코앞의 미래도 바라보지 못했던 나는 그 모든 기회를 놓치고 그 긴 세월을 허송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냥 논 것은 아니지만 더 할 수 있었을 일들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는 현지 문화와 무속, 근현대사 역시 조금 더 일찍이 눈을 떴다면 현지 대학에서 공부를 더 하고 학위도 몇 개 더 땄을 지 모를 입니다. 그래서 늦었다고 생각한 지금 그것들을 다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후 또다시 똑같은 후회를 하고 싶진 않으니까요.

 

세상에 변치 않고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언컨대 오래오래 행복할 것만 같았던 저 왕자와 공주들도 그 사이 수많은 커플이 파경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래서 해당 동화의 후속편이 나오지 않았을지도요.

 

교만은 멸망의 앞잡이라 했는데 A부장의 간증에서 교만의 냄새를 살짝 맡은 것은 나 혼자 뿐이었을까요?

 

2021. 11. 15

(2018. 4. 8의 원본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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