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정치란 한정된 자원의 배분 기술 본문
내 불만의 본질
2주 넘게 발목을 잡고 있던 영진위 보고서를 방금 전에 마쳤습니다. A4 30페이지가 넘으니 퇴고하는 데에만 오전이 다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또 하나 마쳤다는 생각이 조금 홀가분해집니다. 인도네시아 복지시스템 보고서를 앞으로 36시간 안에 끝낸다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바로 다음 순서지만요. 일단은 한 두 시간 정도 숨을 돌려 보렵니다.
이번 보고서 주제였던 OTT-VOD라는 말은 'Over the Top'과 'Video on Demand'의 역자입니다.그래서 샛톱박스로 보는 케이블 TV 같은 건데 영상을 내가 골라서 보는 시스템을 말하는 거죠. top은 셋톱박스를 뜻합니다. 물론 요즘은 케이블용 셋톱박스 없이 인터넷 기반의 VoD 시대이니 첨단 용어인듯 한 OTT라는 말도 사실은 이미 구시대의 화석같은 용어가 되어 버렸어요.
팬데믹으로 OTT 산업이 크게 부피를 키웠지만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OTT들은 참신한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끝없이 만들어내면서 변함없이 승승장구했을 것 같습니다. 킹덤이나 몬스터나 오징어게임 같은 것들로 사람들을 홀려 핸드폰 액정 속으로 빨아들이면서요.
OTT 용어설명을 하다보니 요즘 밴드에서 현지어 강의를 하는 분이 강의 내용이 자주 틀려 지적받곤 하는데 대개는 그보다 강의 어느 한 구석에 한 단락씩 포함시키는 태극기부대스러운 정치평론떄문에 욕을 먹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한때 퇴근길 자동차 바퀴 빵꾸가 나도 노무현 때문이라고 욕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그분은 요즘 정부가 뭘해도 빈정거리며 정부와 대통령을 비난합니다. 익명의 비대면 접촉점인 인터넷에서 정치적 주장을 하거나 그걸 비난하는 건 사실 하나도 용감한 일이 아닌데 (사실은 오히려 비겁에 가깝지만) 온라인에서만 용감한 사람들은 마치 선봉장들처럼 용맹을 뽐내려 합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하는 정치적 주장이 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드는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만약 애기 엄마가 침이 마르도록 자기 애를 칭찬하면 팔불출이라고 혀를 찰지는 몰라도 사과하고 물러나라고까지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 애 친구를 비교하며 욕하면 그땐 다른 학부모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기 쉽습니다. 정치적 발언도 그게 정책이나 시류에 대한 거라면 모르지만 대개는 누군가 상대진영 정치인을 욕하고 비난하는 것이라 반발과 충돌이 일어나는 거죠.
정치판은 그 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물론 거길 바라보는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불태워 버릴 만큼 휘발성 강한 위험물이 뿌려진, 또는 대인지뢰가 촘촘히 묻힌 위험지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누구도 무사할 수 없는 그곳을 고고히 지나다니면서도 모든 진영의 존경을 받는 사람은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건지도요. 싸움이란 게 원래 마음 넓은 대인배가 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겨먹기 위해 하는 것이니 험한 말이 오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들은 것인데 정치란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행위'랍니다. 여야가 싸우는 건 그걸 이렇게 분배해야 한다, 저렇게 나눠야 한다며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고요. 대장동 사건을 보면 그게 딱 맞는 듯 합니다. 그리고 공정한 분배를 받아 내 몫을 챙기겠다, 또는 나는 남보다 더 받아야겠다 생각하는 건 내 욕망인데 결국 한정된 자원을 100% 공정하게 누구의 불만도 없이 분배할 능력따위란 애당초 없는 인간, 정치인, 정부에게 있어 정치란 '인간들의 욕망을 통제하고 제한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게 힘든 부분이죠. 욕망이란 한쪽을 틀어막으면 다른 쪽으로 터져나오는 속성을 가진 것이라서요.
그러니 요즘 대선 경선판의 정치인들이나 문제의 그 교민 강사가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들은 정부가 분배해 나누어 준 접시 위의 '자기 몫'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자기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뿐일까? 이런 생각들 말입니다.
202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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