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삶의 질

beautician 2021. 10. 1. 12:02

자전거의 부활

 

 

내가 자전거를 산 건 마르셀이 아직 두 살쯤 되었을 때니까 2012년 전후였던 것 같습니다.

 

원래 운동하려고 산 자전거인데 운동할 시간이나 장소가 만만찮으니 별로 쓸 일이 없었습니다. 당시 자카르타엔 매년 2-3월에 대홍수가 나 며칠씩 차가 다닐 수 없게 되곤 했는데 자전거는 그때 요긴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일년에 몇 차례 사용할 일이 없어서 집안에 보관하기엔 덩치만 큰 애물단지였다가 어느날 아이들한테 양도하기로 마음먹고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게 4년쯤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메이네 집에 뭔가 가져다 주면 다 금방 고장나거나 못쓰게 되어 버리곤 합니다. 자전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건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홍수때마다 집이 침수되면서 자전거도 물속에 잠기기를 반복해 결국 온통 녹이 쓸고 타이어 안쪽 튜브도 삭아버렸습니다. 예전 같으면 간단히 튜브를 갈았을 텐데 최근 인도네시아에도 스포츠가 보편화되면서 고가의 자전거들이 나오고 비싼 스포츠샵들이 여기저기 들어섰습니다. 거기서 자전거 튜브를 바꾸는 게 옛날에 내가 그 자전거를 사던 가격과 거의 맞먹었습니다. 메이가 고칠 엄두를 내지 못한 건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메이네 집에 갈 때마다 집 앞 마당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그 자전거를 보는 건 좀 속상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그냥 가지고 있었다면 언제든 타고나갈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비 올 때마다 걱정해야 하는 침수지역에 사는 메이와 아이들에게 그런 것까지 요구하거나 질책할 수는 없었습니다.

 

메이가 다니는 회사의 이점 중 하나는 메이가 특별히 고위직이 아닌데도 출퇴근용 차량이 배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운전수 복은 없어 여러 번 바꿔야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서민층에서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봉건적이기 이를 데 없어 메이의 운전사라면 메이의 편의를 돌봐야 하지만 오히려 메이가 ‘자기 여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메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내가 메이 집 앞에 가 있다가 운전사를 한번 노려봐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들어온 운전사는 여러 모로 도움이 되어서 메이의 불편함이 많이 해소된 것은 물론 얼마전에 자전거를 싣고 가더니 깨끗하게 고치고 바퀴 튜브까지 새것으로 바꿔 끼워 돌려줬다 합니다. 그래서 이젠 언제라도 타고 나갈 수 있는 상태가 된 겁니다. 애들이 신이 났습니다.

 

“하지만 난 자전거 탈 줄을 몰라서 재미가 없어요자전거의 부활


내가 자전거를 산 건 마르셀이 아직 두 살쯤 되었을 때니까 2012년 전후였던 것 같습니다. 

원래 운동하려고 산 자전거인데 운동할 시간이나 장소가 만만찮으니 별로 쓸 일이 없었습니다. 당시 자카르타엔 매년 2-3월에 대홍수가 나 며칠씩 차가 다닐 수 없게 되곤 했는데 자전거는 그때 요긴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일년에 몇 차례 사용할 일이 없어서 집안에 보관하기엔 덩치만 큰 애물단지였다가 어느날 아이들한테 양도하기로 마음먹고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게 4년쯤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메이네 집에 뭔가 가져다 주면 다 금방 고장나거나 못쓰게 되어 버리곤 합니다. 자전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건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홍수때마다 집이 침수되면서 자전거도 물속에 잠기기를 반복해 결국 온통 녹이 쓸고 타이어 안쪽 튜브도 삭아버렸습니다. 예전 같으면 간단히 튜브를 갈았을 텐데 최근 인도네시아에도 스포츠가 보편화되면서 고가의 자전거들이 나오고 비싼 스포츠샵들이 여기저기 들어섰습니다. 거기서 자전거 튜브를 바꾸는 게 옛날에 내가 그 자전거를 사던 가격과 거의 맞먹었습니다. 메이가 고칠 엄두를 내지 못한 건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메이네 집에 갈 때마다 집 앞 마당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그 자전거를 보는 건 좀 속상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그냥 가지고 있었다면 언제든 타고나갈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비 올 때마다 걱정해야 하는 침수지역에 사는 메이와 아이들에게 그런 것까지 요구하거나 질책할 수는 없었습니다.

메이가 다니는 회사의 이점 중 하나는 메이가 특별히 고위직이 아닌데도 출퇴근용 차량이 배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운전수 복은 없어 여러 번 바꿔야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서민층에서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봉건적이기 이를 데 없어 메이의 운전사라면 메이의 편의를 돌봐야 하지만 오히려 메이가 ‘자기 여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메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내가 메이 집 앞에 가 있다가 운전사를 한번 노려봐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들어온 운전사는 여러 모로 도움이 되어서 메이의 불편함이 많이 해소된 것은 물론 얼마전에 자전거를 싣고 가더니 깨끗하게 고치고 바퀴 튜브까지 새것으로 바꿔 끼워 돌려줬다 합니다. 그래서 이젠 언제라도 타고 나갈 수 있는 상태가 된 겁니다. 애들이 신이 났습니다.

“하지만 난 자전거 탈 줄을 몰라서 재미가 없어요.”
“배우면 되지, 바보.”

마르셀이 칭얼거려 그렇게 얘기하면서도 나중에 애들한테 가면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빵을 잔뜩 들고 찾아갔을 때 예상대로 아이들은 자전거를 고쳤다며 내놓고 자랑했습니다. 사실은 아이들도 내가 준 ‘선물’을 방치해서 고장낸 것이 미안했던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서 마르셀이 자전거에 올라타면서 자신만만해 합니다.

“내가 자전거 타는 거 보여줄게요?”
“못탄다며?”
“누나한테 배웠어요.”

사실 그 자전거는 마르셀이 크면 줄 생각이었지만 내가 워낙 쓰질 않으니 미리 줬던 겁니다. 4년 전엔 마르셀 다리가 자전거 안장에서 땅에 닿지 않았지만 이제는 까치발로 아슬아슬하게 걸칠 수있을 만큼 컸습니다. 

마르셀이 몇 차례 주택가 골목을 오르내리는 동안 내 자전거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이 기뻤고 무엇보다도 홍수 침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주택지로 아이들을 옮긴 후 아이들이 즐거워 할 만한 일들이 하나 둘 더 생겼다는 사실에 다행스러움을 느꼈습니다.


  

2021.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