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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음을 지배했던... 본문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내 젊음을 지배했던...

beautician 2021. 9. 20. 11:32

OFF COURSE

 

번역하자면 '길을 벗어나서', '궤도를 떠나서' 정도의 뜻으로 풀이될 이 영어는 일본의 오래된 밴드 이름입니다.

'オフコ-ス'라고 쓰는데 처음 들었을 때는 'Of Course' 라 이해하고 '그룹이름이 '그렇고말고'라니....'라고 꽤 오래동안 이상하게 생각했더랬습니다.

 

노래방이나 카라오케를 자주 드나든 사람이라면 고음으로 '사요나라'를 외치는 긴 일본 노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부른 친구들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q95tN57bvQ

 

이젠 모두 끝이야.

네가 점점 작게만 보여

난, 나도 모르게 널 껴안고 싶어져.

 

이렇게 시작하는 '사요나라'는 감성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선율로 내 인생노래였고 아직도 카라오케를 다니던 40대 후반까지도 이 노래를 부르곤 해 카라오케 애국자들에게 빈축을 사곤 했습니다.

 

처음 OFF COURSE의 카세트를 받은 것은 1987년 쯤의 일입니다. 부대에서 외출을 나가면 서울까지는 어림도 없고 문산 쯤에 나가는 게 고작이었는데 그곳에 '열'카페가 있었습니다. 1사단 장교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는데 아마 예쁜 마담 때문이었지 싶습니다. 일본에서 한동안 살았던 그때 마담은 30대 초반 쯤이었던 것 같은데 서울도 아니고 문산까지 흘러 들어와 일본식 살롱을 차린 것이 어쩌면 우리가 상상도 못할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도 서울엔 요즘같은 현대식 가라오케들이 있었겠지만 거기선 테이블 놓인 홀 한구석 무대의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식이었죠. 몇 차례 열카페를 갔을 때 마담이 내 손에 카세트를 하나 쥐어 주었습니다.

 

"배중위 선곡이  이 사람들 분위기랑 비슷하네요. 아마 좋아할 거에요."

 

마담이 일본에 있을 때 즐겨 들었다는 그 카세트를 난 아마 족히 수백번은 들었던 것 같습니다. OFF COURSE의 노래는 내 20대를 지배했습니다. 내가 카세트를 받던 당시 이미 일본에선 한물 간 퇴물그룹이 되었다고 들었지만 한국에선 들어본 적 없는 너무나 참신하고 아름다운 노래였습니다. 최소한 나한텐 그랬습니다.

 

요즘 K-POP에 열광하며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난 이해가 됩니다. 내 주변에도 K-POP과 한국 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해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워 한국사람들과 막힘없이 소통하는 대단한 인도네시아 아가씨들이 있습니다 1980년 후반 군시절의 나도 그렇게 OFF COURSE에게 열광하며 가사 하나하나를 받아써서 번역하고 외우며 일본어 기초를 닦았습니다. 마침 부대에서도 선배장교가 아침마다 일본어 강좌를 열고 있어서 그 덕에 새로 알게 되는 노래가사의 의미들이 당시만 해도 아직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20대의 감수성을 건드렸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J-POP이나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오직 OFF COURSE 뿐이었어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당시 가사를 달달 외웠던 20곡 정도의 그들 노래가 이젠 아련해지기만 하고 (내가 가본 모든 카라오케에 등재된 그 친구들 노래는 불과 세 곡 정도 뿐이었거든요) 일본어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을 때까지도 혼자 흥얼거리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여름은 겨울이 그리워했고 

겨울은 여름에게 돌아가고 싶어했지

 

누구보다고 그리워 했던 그 사람은

저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하늘을 좋아했어

 

 

이런 식으로 가사가 이어지는 이 노래를 유튜브에서 발견했을 때 거의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습니다. 이미 잊어버렸던 그 아름다운 화음 속에서 내가 30년도 더 지난 옛날에 왜 이 밴드를 좋아했는지 새록새록 기억이 되살아 났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hjMRt8fi54

 

마구 달려가듯 끝나가던 여름의 끝자락

희미해져 가는 너의 향기

(중략) 

그렇게 그곳에서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는 것

절대 이 손으로 다시 건드려서는 안되는 것

 

난 왜 이 가사에 그토록 공감했던 걸까요?

당시 내 인생을 주구장창 살아가야 할 날이 쇠털처럼 남아 있었는데 왜 뭔가가 끝나가는 것같은, 또는 한 시대가 저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던 걸까요?

 

누군가에겐 그저 '왜놈들의 노래'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인생의 노래였던 OFF COURSE의 '여름이 겨울을 그리워해서' 입니다.

 

 

2021.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