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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도(Manado) 음식의 특징 본문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마나도(Manado) 음식의 특징

beautician 2021. 9. 22. 11:26

다부다부(Dabu-dabu)

 

 

지난 7월 초 인도네시아에 강력한 이동제한이 걸리면서 몰들이 모두 문을 닫을 때 함께 문을 닫았던 내 단골 시내 앰베서더몰 5층 식당가의 마나도 음식점도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예전에 비해 음식 가짓수나 다양성은 좀 줄어든 것 같지만 요즘같은 시절 다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부페식으로 원하는 만큼 담아서 먹는 식이고 보통 3만-5만 루피아 정도지만 밥+고기1+야채2 세트로 보통 3만5000(약 3천원)루피아 정도가 보통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고기를 기준해 좀 더 세분해서 고기가 생선이면 3만 루피아, 닭은 3만5000천, 생선알과 돼지고기는 4만 루피아로 파는 곳이 많더군요. 저 위 그림에서 윗쪽 요리들이 주로 생선과 닭고기, 아래쪽이 각종 돼지고기와 야채들입니다. 

 

인도네시아 음식인데 돼지고기가 끼어 있는 건 마나도(Madano)가 이슬람이 아주 우세한 지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이 다수인 인도네시아에서 돼지고기 음식이 금기인 곳이 많지만 정상적으로 돼지고기 요리를 내놓는 곳은 마나도 말고도 메단(Medan)을 위시한 바딱(Batak) 지역, 아예 돼지농가가 밀집되어 있는 발리(Bali) 등도 있습니다. 하지만 차림표에 아예 소고기가 빠져 있는 것은 마나도 식당의 가장 대표적 특징입니다. 힌두교도들도 아닌데 소고기 요리를 취급하지 않는 건 매우 이례적이거든요. 

 

 

마나도는 인도네시아 지도에서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 우측 위에 K처럼 보이는 섬의 북쪽 끝입니다.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가 있고 참지잡이 원양어선들의 기착지로도 유명합니다. 한국인 선원들 중에 배에서 문제를 일으켜 자발적으로 또는 타의에 떠밀려 저곳에서 하선해 비자도 없이 인도네시아 현지인 사회에 스며든 사람들 이야기도 들은 적 있습니다. 마나도 바로 동쪽은 말루꾸(Maluku) 지역인데 옛날 네덜란드 사람들에 앞서 포루투갈인들이 14-15세기부터 와서 정향, 육두구 같은 향료들을 가져가던 곳입니다. 그렇게 오래 전부터 서양인들 왕래가 잦았던 이 지역에 기독교가 좀 더 빨리 전파되어 현재 꽤 많은 기독교 인구를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이름은 굉장히 서구적인데 말루쿠 지역에서 남말루쿠 공화국을 세워 독립하려는 세력을 때려잡은 이 지역 출신 정부군 사령관 이름이 알렉스 에버트 까윌라랑 이었던 것처럼 맨 뒤 이름(성)을 빼고는 대부분 토마스, 크리스토퍼, 조나단 등 정통 유럽식 이름들이 많습니다. 혼혈들도 많고요. 어쩌면 그런 부분이 전통이 되고 자부심이 되었던 것인지 KNIL이란 약자로 불리던 네덜란드 왕실의 인도네시아군에 들어가는 것을 마나도, 암본 등 북부 술라웨시와 말루꾸 쪽 사람들은 출세의 지름길이자 가문의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1945년 자바섬에서 수카르노와 하타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직후 시작된 네덜란드와의 독립전쟁에서 이들이 주축이 된 KNIL 군대는 네덜란드 장교들의 지휘를 받으며 인도네시아군과 싸웠습니다.

 

1949년 12월 주권이 이양된 후 16개 국가의 연합체 형태로 시작된 인도네시아 '연방'이 급속히 인도네시아 공화국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마나도 지역은 KNIL 부대 해산과 공화국군에 편입되면서 한 차례 혼란을 겪었고 1950년대에는 잠시 뻐르메스타 반란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으니 마나도인들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남들 못지 않은 파란만장을 겪은 셈입니다. 앞서 언급한 남말루꾸 공화국 반란진압을 지휘한 정부군 영웅 알렉스 에버트 까윌라랑 대령이 전역후 뻐르메스타 반란의 주역이 되어 별 둘, 소장 계급을 달고 반란군의 총사령관을 지내기도 한 사실은 술라웨시와 마나도가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 겪은 굴곡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그래서일까요. 마나도 음식은 술라웨시 대표음식인 워꾸(woku)를 위시해서 맵기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음식에 식용유를 많이 쓰는데 그래서 마나도 음식을 냉장고에 넣었다가 꺼내먹으려면 고기요리들은 물론 야채와 심지어 찍어먹거나 덜어먹는 장들까지도 기름이 허옇게 굳어나오기 때문에 잘 데워먹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그런 느끼함을 잡아주는 마나도 전통 음식이 있습니다. 다부다부(dabu-dabu)라는 것인데 '다부' 또는 '다부다부 이리스'라 하기도 합니다. 이리스(iris)란 잘게 썰어 저민다는 뜻입니다. 주 재료인 토마토와 빨간 마늘,  짜베라윗(cabe rawit)이라 부르는 작은 고추를 잘게 썰어 레몬즙과 소금으로 버무린 일종의 삼발(sambal), 매운 장인 거죠.

 

 

 

그 상큼한 새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고추가 너무 맵지만 않다면 다부다부 만으로 밥을 비벼먹어도 될 정도로 입맛을 살려주거든요. 그래서 대체로 기름진 마나도 음식을 먹을 때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요소이고 현지식당에선 다른 건 돈 주고 사지만 한국식당 식탁에 김치가 공짜로 나오듯 다부다부도 대개는 덤으로 제공됩니다.

 

마나도 음식들 중 가장 특징적인 것 아닌가 합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돌지 않습니까?

 

 

2021.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