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오늘 기사를 찾아볼 수 없는 일간지 본문
자카르타포스트
인도네시아에서 몇 안되는 영자신문 중 그나마 판매부수가 가장 많은 자카르타포스트(Jakarta Post)를 내가 가장 선호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현장에서 배운 인도네시아어보다 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우고 전공까지 한 영어가 좀 더 편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지만 분석기사들의 깊이와 사설, 논설의 비판정신이 다른 신문들에 비해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선 모회사인 꼼빠스-그라메디아 그룹의 메인 신문인 꼼빠스(Kompas)와도 사뭇 다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영자지 특성상 대부분의 기자나 논설위원들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고 유려한 영어를 익히면서 동시에 해당국가 문화와 가치관에도 어느 정도 동화되어 사안을 보는 시각이나 표현하는 방식이 오로지 인도네시아적 시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차별성을 보이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다른 신문 사설들에 비해 좀 더 강력하게 정부나 관련 사안을 비판하고 자기 의견이나 해결방향을 분명히 개진하는 거죠. 일부 국내 언론들이 정치적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궤변을 늘어놓으며 너 한 번 당해보라는 식, 또는 아니면 말라는 식으로 비난하고 빈정거리는 게 아니라 자카르타포스트의 사설은 따뜻할 땐 더없이 훈훈하고 비판할 땐 훈장님 회초리처럼 올곧고 매섭습니다.
다른 신문 기사들을 번역하면서 가장 짜증나는 건 세 줄이면 충분한 기사를 20줄 정도로 늘여서 쓴 기사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전혀 관련도 없는 도입부로 시작해 팩트보다는 소문과 상식으로 지면을 메우고 몇몇 핵심부분은 이미 문장에 녹여 설명했는데 똑 같은 내용을 이번엔 인용부호 속에 넣어 다시 한번 반복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일반적 기사 쓰는 방식이 그런 걸까요? 아니면 데스킹을 엉망으로 하는 걸까요?
하지만 내가 늘 찬양해 마지않던 자카르타포스트도 얼마전 인터넷판 지면을 전면 개편하면서 완전히 똥볼을 차고 말았습니다. 전에는 다른 매체들과 마찬가지로 기사들을 업로드 시간별로 늘어놓으며 항목이 경제인지, 정치인지 등을 한 구석에 표시해 두었고 그래서 그날 올라온 대량의 기사들을 필요하다면 일일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편을 마친 지면은 헤드라인–많이 본 뉴스–국내–경제–국제-라이프스타일 등 항목별로 구획을 만들어 놓고 구획 당 5-6개 정도를 올려 놓았는데 그중 1-2개를 제외하곤 오늘 기사들이 아니고 심지어 사나흘 전 기사들도 여전히 프론트 페이지에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개편을 통해 오늘 기사들은 단 몇 개 말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스템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죠.
건의함을 통해 ‘도대체 오늘 기사들은 어디 가면 볼 수 있느냐?’ 문의를 넣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단순 유료독자인 내 목소리 정도는 자카르타포스트 결정권자들 귀엔 들리지 않는 거겠죠.
그렇다고 해서 지금 자카르타포스트 헤드라인이나 사설의 퀄리티가 예전에 비해 떨어진 것은 절대 아니지만 찾아볼 수 있는 당일기사가 예전에 비해 10%도 되지 않게 되었다는 점에서, 저 상황이 조속히 개선되지 않는다면 결국 예전에 얻은 인기가 서서히 사그라들 것은 자명한 일 같습니다.
윈도우도, 핸드폰 앱도, 게임도, 정부정책도, 개선한다는 게 결국 개악이 되어버린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내 최애 신문인 자카르타포스트의 이번 개악은 안타깝고도 한심스럽습니다.
2021.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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