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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메인 전번 죽어도 불편하지 않은 세상

beautician 2021. 8. 31. 12:06

핸드폰 전번 불통

 

 

 

오래 전 핸드폰 요금 방식을 선불제로 바꾼 후 전화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도록 컨트롤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충전된 금액만큼만 통화나 문자가 가능했으니까요. 후불제를 쓰던 시절엔 쓴 만큼 요금을 내는 방식이니 가끔 요금폭탄을 맞는 경우가 있었지만 선불제로 바꾼 후엔 그럴 걱정이 없어진 거죠

 

그러다가 카톡이나 와츠앱에 부가서비스로 붙어있는 무료전화 시스템 음질이 괄목할 만큼 향상된 후엔 ‘뿔사’라 부르는 충전요금으로 데이터 패키지를 사는 게 지불해야 할 전화요금의 전부였고 작년 이후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엔 와이파이를 쓰니 데이터 패키지조차 살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나쁜 점이 하나 생기는데 선불제로 충전해 놓은 요금 ‘뿔사’를 쓸 일이 없으니 다시 충전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 되어 가끔은 기한연장을 위해 뿔사를 최소량이라도 매달 충전해 줘야 하는 것을 깜빡 까먹기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뿔사’엔 기한이 정해져 있어 두 달 이상 충전을 하지 않으면 번호가 죽어 버립니다. 뿔사 충전해야 한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는 동안 내 메인 전화번호가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10년도 넘게 써왔던 번호였는데 말입니다.

 

그게 대략 10개월쯤 전인 작년 일인데 그렇게 죽은 번호를 살리려고 이동통신사 대리점에 찾아갔더니 죽은 번호를 살려주는 대신 후불제로 바꾸라는 겁니다. 옛날에 후불제를 감당하지 못해 선불제로 바꾸었던 건데 말이죠.

 

하지만 요즘은 세월이 좋아져 후불제도 금액한도를 걸어 놓을 수 있게 되어 있더군요. 패키지 종류에 따라 무료전화 횟수, 사용 데이터 규모가 정해져 있는데 전화는 규정된 횟수 이상 쓰지 못하지만 데이터는 한도를 넘기면 그만큼 돈을 더 내면 되는 시스템이어서 예전처럼 요금폭탄을 맞는 일은 없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때가 되면 요금 낼 때 되었다고 이메일로 금액과 마감일까지 알려줍니다.

 

그런데 지난 6월, 그러니까 전번을 후불제로 바꾼 지 반년도 더 넘은 시점에 사람들이 왜 나한테 전화가 안된다면 컴플레인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대부분 인터넷 기반의 무료전화를 쓰니 딱히 일반전화를 쓸 일이 없었고 내가 전화를 거는 것도 문제없었으니 나한테 전화 거는 사람들이 무슨 불편이 겪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씸(SIM) 칩에 문제가 있었는지 걸려오는 전화를 도무지 받을 수 없었던 겁니다. 신호가 울리는 데 못받는 게 아니라 내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면서 아예 연결이 되지 않는 겁니다. 메인 전화를 집안 어느 구석에 처박아 놓고 찾지 못해 다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소리나는 곳을 뒤져보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그런 메시지가 매번 나오는 걸 듣고 내 번호에 문제가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은 것이 지난 6월이었습니다.

 

이통사 대리점에 다시 가서 컴플레인 하고 문제점 등록을 해 두었는데 바로 얼마 후인 7월 들어 코로나 감염 대폭발로 몰들이 문을 다시 닫자 이통사 대리점들도 모두 문을 닫았고 전화가 안되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몰이 영엄재개한 8월 10일쯤에 다시 그 이통사 대리점에 가서 같은 문제를 제기했더니 그쪽 직원이 한 시간 가까이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불만접수증을 써주겠다는 겁니다. 이미 근 두 달 전에 했던 그 절차를 이제 와서 다시 반복하는 겁니다. 뭐, 인도네시아니까 별로 화가 나지도 않았습니다.

 

며칠 전 아주 연식이 오래된 35년 지기의 전화를 받고서, 그제서야 전화가 들어오지 않는 문제가 해결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요? 아무튼 이통사에서 원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으니 저쪽에서 뭔가 잘못되어 있던 것 때문에 그 피해는 내가 오롯이 혼자 보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나한테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못했으니 그동안 내가 놓친 기회가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 기회나 문의나 오더도 아날로그보다는 디지털 경로를 통해 온다는 점, 정히 안되면 이메일 등 연락할 수 있는 다른 경로가 얼마든지 있다는 점에서  이젠 10개월씩 전화번호가 죽어도 별로 불편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2021.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