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토착 왜구들을 위한 치료제 본문
국뽕
성인지감수성 문제가 제기될 지도 모르지만 내가 남자라서 스스로 가장 와닿는 예를 들어 봅니다. 어떤 여자가 가장 바람직하냐는 사지선다형 문항입니다.
1. 예쁜데 자기가 예쁜 걸 모르는 여자
2. 예쁘면서 자기가 예쁜 것도 알지만 내색하지 않는 여자
3. 예쁘면서 자기 예쁜 것도 알아 예쁜만큼 나대는 여자
4. 예쁜 것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인 여자
당연히 1번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2번까지도 오케이. 3번도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받을 수 있지만 4번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좀 위험한 타입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에 대한 여자들 판단은 다를 지도 모릅니다.
이 얘기를 꺼낸 건 여성품평을 하려는 게 아니라 요즘 쏟아지고 있는 국뽕 이슈들이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강하다, 강소국이다 하는 얘기는 2002년 한일월드컵 즈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그러다가 이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에 선방을 하고, 일본 무역보복을 멋지게 이겨내고, 일본이 정말 옛날엔 상상치도 못한 정치-경제-군사적 역대급 헛발질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한국이 더욱 돋보이게 되어 국가적 자긍심이 서서히 커가던 중(물론 문재인이 북한에 나라 팔아먹으려 한다고 생각하는 일부 환자들은 제외) 급기야 지난 7월 UNCTAD에서 국제적, 공식적으로 선진국으로 격상되자 이제 한국인들 스스로가 크게 변한 국가의 위상에 크게 놀라는 것 같습니다.
많은 약점과 어두운 부분,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부분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느새 한국이 강한 나라, 잘 사는 나라, 국제적 모범을 보이는 나라의 반열에 들어선 것 것일까요? 거기에 이번 아프간 사태에서 현지인 조력자 390명을 무사히 구출해 한국에 데려온 것에 모두의 가슴이 더욱 웅장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몰론 그들 아프간 조력자들에 대해 욕설에 가까운 인종차별적 댓글을 다는 환자들은 빼고요.
우린 그동안 우리만 한국이 그런 나라인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같은 질문을 다시 할 수밖에 없습니다.
1. 강한데 자기가 강하다는 걸 모르는 나라
2. 스스로 강한 걸 알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는 나라
3. 스스로 강한 걸 알고 그만큼 과시하고 노력하는 나라
4. 내가 강하니 나보다 약한 다른 나라들은 다 꿇으라는 강대국
우린 그동안 주로 1번에, 최근에는 대체로 2번에 속해있었던 것 같습니다.
3번의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고 4번의 대표적인 나라가 지금은 미국과 중국, 옛날엔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던 시절의 일본이었죠.
그런데 요즘 이런 시류를 타고 국뽕을 조장하는 동영상들이 높은 조회수를 올리고, 그래서 아류의 유튜버들이 우후죽순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3-4번으로 달려가려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들 동영상들은 재미있고 통쾌한 게 사실이지만 여기 중독되어 버리면 마치 일본 극우들처럼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자칫 혼자서만 우리가 최고라는 생각을 품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됩니다.
예를 들어 이번 한국의 아프간 조력자 구출작전에 세계가 놀라고 찬사를 보낸다며 저들 유튜버들이 난리법썩을 떨고 있지만 여기 인도네시아의 모든 매체를 뒤져 보아도 한 두 군데 정도가 '한국이 아프간 조력자들을 데려오려 한다'는 구출 직전의 보도만 나와 있고 그 이후의 구출성공에 대한 보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별 관심도 없고 놀라고 찬사를 보내는 상황도 아닌 거죠. 그리고, 물론, 그런 일은 우리끼리만 기뻐하고 감명받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오히려 저런 영상들은 우리 일반인들보다는 태극기부대와 일부 스스로 보수라고 말하는 꼴통 친일파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보수, 또는 극우라면 모름지기 한국을 최고로 생각해야 하는데 성조기, 이스라엘기를 꺼내 데모하며 미군이 떠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일본 무역보복에 굴복하지 않으면 우리 반도체산업이 무너질 것처럼, 한국이 힘도 없고 밸도 없는 국가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겐 저런 동영상들이 약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2021.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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