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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아이폰 사진 퀄리티

beautician 2021. 9. 6. 12:32

소풍

 

우리 아이들 어릴 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인도네시아에서 별로 놀러 다닌 적이 없어 혹시라도 주말을 끼고 싱가포르에 가게 되면 유명한 유원지들을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그런데 바쁜 아이들 쉴 시간 뺏는 것도 그렇고 유원지 입장료가 인도네시아 물가에 비해서는 잘 상상이 안갈 정도로 비싸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위 알렉스가 아직 딸 지현이랑 사귀던 당시 나랑 아내에게 엄청 비싼 서커스 표를 사줬던 일도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선 뭔가 하려면 비용이 장난 아닙니다. 아마 서울도 그렇겠죠?

 

그래서 어쩌면 대리만족인지 몰라도 차차와 마르셀과 함께 틈나는 대로 여가를 즐기고 싶었지만 기본적으로 내 시간을 내기 어려워 그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 자카르타와 반둥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데려갔고 차차와 마르셀은  박물관 가길 좋아하는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건 아이들 엄마가 토요일이나 휴일에도 일을 하는 한국계 플라스틱 포장재 공장 영업직으로 일하고 있어 매일 밤늦게야 돌아오는데 늘 엄마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최대한 시간을 내보았던 겁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엔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특히 요즘은 몰에 12세 이하 입장금지여서 이제 11살인 마르셀을 데리고 살 수 있는 곳도 크게 제한되었습니다

 

아이들 엄마 메이도 나름 노력하는데 간혹 차량으로 갈 수 있는 반둥이나 보고르 같은 인근 도시에 주말을 끼고 수금이나 영업을 하러 가게 되면 아이들을 데려가곤 합니다. 물론 코로나가 창궐하는 가운데 사람들 바글거리느 공장으로 애들 태워갈 수는 없으니 아이들은 그날 묵을 호텔에 내려놓고 엄마만 돌아다니는 거죠. 그래서 애들끼리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마찬가지여도 그렇게 다른 지역에 가서 다른 환경 속에서 잠시 지내보는 게 꽤 기분전환이 되는 모양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엄마를 따라 보고르에 간다고 차차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보고르(Bogor)라는 도시는 자카르타에서 50분쯤 걸리는 곳인데 보고르 군은 보고르 시내에서 반경 2시간 정도 산길을 달려야 하는 큰 지역입니다. 공장들은 당연히 땅값이 싼 외곽지역에 있을 터라 메이가 아이들을 시내 호텔에 떨구고 돌아다니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차차가 문자를 미리 보낸 건 내가 주말에 뭐라도 사들고 애들 집에 갔다가 헛걸음하는 걸 예방하는 거죠. 그래서 나도 오늘 내일은 임박한 마감을 끝내는 데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애들이 그렇게 엄마랑 지방에 가면 나도 뭔가 보너스 같은 걸 받게 되는데 거기 가서 찍은 사진들을 받는 겁니다. 내 삼성-OPPO 핸폰으로는 절대 잘 나오지 않지만 메이의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퀄리티가 장난 아니거든요. 작품사진처럼 나옵니다. 그래서 애들이 메이랑 주말에 지방에 간다고 하면 우선 사진들이 기다려집니다. 

 

차제에 나도 핸폰을 아이폰으로 바꿔야 하는 걸까요?

 

 

 

2021.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