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안들리는 척 본문
깊은 뜻
아침에 브로커가 정부 모부처 직원과 채팅한 내용을 보내왔습니다.
코로나 위험에 직면한 상태인 '비타민 10000'을 네 명분을 보내줄 수 있냐는 공무원 말에 브로커는 물어보고 연락주겠다고 합니다. 나한테 물어본다는 거죠. 그 이야기 오간 게 8월 2일인데 일주일만인 오늘에야 나한테 던진 겁니다.
딱 보는 순간 이게 비타민을 달라는 건지 돈을 달라는 건지 조금 헷갈렸습니다. 비타민이라면 돈도 얼마 안드니 자기가 사주면 될 것이고 영수증 보고 합당하면 돈을 주면 되는 겁니다. 우리 일을 위해 연락하는 공무원 담당자라니 말입니다. 피오나에게 물어보니 그건 분명 돈을 달라는 얘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나한테 보낸 문자에는 돈을 달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간 이 친구가 작년에 수천만원을 뜯어간 방식 그대로 올해에도 이렇게 저렇게 돈을 뜯으려는 걸 지난 7개월 동안 내가 틀어쥐고 주지 못하도록 했는데 J사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술집에서 술에 취해 한화 500만원쯤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니 저 브로커가 뻑하면 돈달라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겁니다. 그동안 달라고 한 돈을 못주게 한 게 대략 7-8천만원 정도 됩니다. 저 놈이 날 죽일 듯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거절하면 나한테는 말을 못하고 피오나에게 전화해 한시간씩 지랄을 하는 건 내가 그만큼 껄끄럽다는 뜻입니다. 올초 시내 보로부두르 호텔에서 거의 주먹질까지 할 뻔한 사건 이후부터입니다. 작년에 J사장 일을 봐주던 친구는 약점을 잡혀 쩔쩔매면서 브로커가 달라는 대로 다 J사장에게 받아 주었다고 하던데 브로커는 그 친구가 더없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나도 사실 그간 워낙 다 거절했으니 비타민 정도라면 받을 수 있습니다. 돈을 달라는 거라면 안되고요. 그 돈 자기한테 주면 자기가 전달하갰다 할 텐데 그건 이미 배달사고가 예견된 일입니다.
"그래, 비타민 사줄게. 열 개면 돼? 어디로 보낼 지 주소 줘 봐."
그랬더니 잠시 후 브로커 답변이 다급히 들어옵니다.
"그거 비타민 달란 말 아닌데? 비타민 10000이란 뜻은 천만 루피아란 뜻이고 그걸 4명한테 주란 뜻이거든?"
"아, 그랬어? 이 사진도 비타민 10000인데 이거라면 사줄게."
"돈이라니까."
"진작 그리 말하지 그랬어. 이미 J사장 오케이 받은 건데 이제 와서 그게 비타민 아니라 돈이라곤 말 못해. 이거 필요없는 거야? 필요하면 얘기해."
"그게 아니라 돈이라니깐."
대화는 여기까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브로커도 더 이상 얘기를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피오나에게 여러번 전화가 왔다는데 이 상황을 이미 전달받은 피오나는 그 전화들을 받지 않았답니다.
사회 초년병 시절 또는 군시절, 거기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누가 넌지시 하는 얘기를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하지만 잘 해서 뭔가 보여주겠다는 생각만 조금 버리고 잘 안들리는 척 하면 세상 살기는 참 편해집니다.
그리고 사실 대놓고 하기 민망해 자기 스스로 대충 뭉뚱그려 놓은 의미를 뭐 그리 깊은 뜻이라고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하겠어요?
2021.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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