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절망 속에서 발견한 희망, 그 희망을 위한 고결한 희생 본문
인생영화
원래 2016년 처음 맺었던 영화진흥위원회 통신원 계약은 매월 한국에서 주는 주제에 맞춰 현지시장 조서보고서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때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향해 가던 시대. 문체부 산하단체인 영진위도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고 연간 12번 내야 할 보고서를 네 번쯤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이후에도 그런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인도네시아는 필요할 때에만 특정 주제에 대한 조사를 하는 비정기 보고서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앞으로 12월까지 한 두 차례 더 쓰게 될 보고서 주제를 한국에서 보내준 목록들 중 선정해 오늘 메일을 보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산업에 관심이 있어 영진위 일을 하는 거지만 보고서들이 좀 더 산업 쪽, 관련 정책 쪽을 조명하는경우가 많아 조금 아쉽긴 합니다. 그쪽도 흥미롭긴 하지만 영화 자체보다는 재미있지 않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좋아하는 영화는 서구권 영화였는데 주로 인도네시아 영화를 다루는 것도 예전엔 좀 버거웠습니다. 수준 낮고 재미가 없었거든요. 물론 최근 2-3년 사이 그 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니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영화, 오래 기억남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물론 좀비영화들은 아닙니다.
나한테는 <사관과 신사(An Officer & A Genttleman)>가 선택을 갈랐습니다. 이 영화가 나온 1982년은 대학에 입학하던 해였죠. 여기 등장한 리차드 기어를 보고 장교로 군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사관학교는 이미 늦었으니 ROTC를 하기로 하고 이듬해인 1983년 후보생 모집에 응시해 1986년 3월 반짝거리는 소위계급장을 달고 육군장교로 임관하게 됩니다.
내 오랜 파트너 릴리에게도 인생영화가 있었는데 그건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2000)라는 영화였어요. 둘인가 세 아이의 엄마인 에린 브로코비치로 분한 줄리아 로버츠는 법률사무소 시보가 되어 대기업과의 법정싸움에 큰 기여를 한 끝에 그곳 대표인 변호사에게 200만불 짜리 수표를 받게 됩니다. 그게 릴리에겐 매우 감명이 된 모양이었어요. 당시 우리가 파산하기 2년 쯤 전이었는데 이후 릴리는 2004년쯤에 광산업에 뛰어들었고 지금은 주먹구구식으로 니켈광산 몇 개를 힘겹게 운영하면서 언젠가 나한테 동그라미가 많이 붙은 수표를 끊어주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사실 내 인생영화라 하면 <사관과 신사>보다는 >타이타닉(Titanic)>(1997)입니다.
내가 막 한화그룹을 나온 지 1년 후, 아직 대기업물이 빠지지 않았을 당시. 그리고 자카르타 폭동이 터지기 2년 전 아직도 인도네시아가 낭만적 현대사의 일부였을 때, 이 영화가 쯔나미같은 감동과 함께 찾아 왔습니다. 영화관에서 아홉 번 쯤 보았고 CD로도 30번 이상. 그래서 나중엔 거의 모든 대사들을 외우다시피 할 정도였어요. 불멸의 영웅들이 반드시 죽음을 당하듯 신도 침몰시킬 수 없다던 거대한 여객선이 차가운 대서양에서 가라앉는 대서사 속에서도 권모술수와 욕망이 판치는 인간군상. 침몰하는 선상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연주를 멈추지 않던 현악사중주. 그리고 아직도 앳된 소년이었던 디카프리오와 이제는 투사가 되어버린 케이트 윈슬렛의 청초한 모습이 아직도 아련합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내 인생영화는 <타이타닉>보다는 좀 더 옛날에 보았던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야생오리떼' 정도로 번역되어야 마땅했던 <지옥의 특전대(The Wild Geese)>(1978). 이 영화가 내 인생영화라는 게 아닙니다. 이 포스터 중간 오른쪽에 있는 하디 크루거(Hardy Kruger)는 베를린에서 태어난 독일 배우입니다. 1928년 이 영화를 찍을 당시 50살이었을 텐데 은퇴한 특수부대 출신으로 나옵니다. 함께 공연했던 사람들은 <007> 시리즈의 로저무어, <클레오파트라>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던 레전드 배우 리차드 버튼(개인적으로는 리 래믹과 공연했던 <메두사(The Medusa Touch)>(1978)가 더 인상적이었음), <해리포터> 1편에서 완벽한 덤블도어를 연기했던 리차드 해리스에 비해 네임밸류가 좀 떨어진다고 당시엔 생각했지만 내가 아주 어릴 때 보았던 내 인생영화에 크루거가 주연했던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시벨의 일요일>(1962)라는 프랑스영화입니다. 당시 크루거는 34세. 난 아직 태어나기 전에 나온 영화인데 실제로 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은 1970년이 좀 넘어 TV '주말의 명화'에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딱 한 번, 그것도 10살 전후쯤에 보았던 이 영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주연이 하디 크루거여서가 아니라 당시 많이 접하지 않았던 새드앤딩 영화여서인지도 모릅니다. 전쟁을 겪은 남성이 어린 시벨과 기묘한 관계를 이어가다가 오해를 받으면서도 시벨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절망 속에서 만난 희망. 그 희망을 지키기 위한 기꺼운 죽음. 그게 어린 마음에 각인될 정도로 그토록 아름답고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타이타닉>에 흠뻑 빠진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 두 영화가 통하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은 본의 아니게 영화 이야기였습니다
2021.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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