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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뿔루잇 바소아큐 끌라빠가딩 지점

beautician 2021. 8. 2. 12:17

전설의 고기국수

 

 

오늘은 몰 워킹이란 걸 했습니다.

자카르타의 봉쇄조치는 한 단계 완화된 셈이지만 내가 사는 끌라빠가딩은 아직 확진자들이 많이 나오는 레드존에 속해 있어 몰이나 식당들이 문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몰 안에 있는 약국들은 보건 프로토콜에 따라 모두 문을 열고 있고 식당들도 테이크어웨이 손님들이나 배달 주문을 받으려고 문을 연 곳들이 많아 일단 몰에 들어가는 건 허용되는 상태. 그래서 에어컨도 나오지 않고 자연 속 산책에 비할 바 안되지만 인적 널널한 몰은 그럭저럭 걸어다니며 땀을 낼 여지를 남겨 주었습니다.

 

최근 BSD에 다녀오거나 장시간 외출하고 나면 피로감이 느껴져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게 실감되던 차였습니다. 어떻게든 운동량을 늘리지 않으면 고혈압, 당뇨 등이 줄줄이 손짓하며 반갑게 맞아줄 채비를 하고 있는 게 자명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땀을 빼고 맨 마지막 가게 된 곳은 바소 아큐(Bakso Akiaw)라고 하는 지하 음식점 카운터. 

 

예전에 아직 미용기기 수입판매를 하던 시절 서부 자카르타 뿔루잇(Pluit)이라는 화교들 동네에서 사람들이 줄서서 먹는 비싼 국수집을 몇번이나 지나치다가 한번 먹어볼 마음이 들었는데 그 고기국수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일인분에 세 그릇이 나오는데 국수가 담긴 그릇이 한 개, 소고기 각종 부위와 미트볼이 담긴 국물 그릇 한 개, 그리고 토끼풀을 비롯한 야채가 담긴 그릇 한 개. 다른 국수에 비해 두 배를 훌쩍 넘는 가격이지만 가성비가 끝내주던 그 국수집이 얼마 전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 몰 지하에 생긴 겁니다.

 

 

그 뿔루잇 본점에는 아이들이 싱가폴에서 올 때마다 데려가 맛을 보여줬고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도 꼭 모시고 가는 코스였습니다. 끌라빠가딩 분점은 본점에 비해 데친 숙주나물이 나오지 않지만 그걸 빼고는 모든 면에서 본점과 다를 바 없는 맛과 양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명색이 살 빼려고 운동 나왔는데 먹을 걸 사서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명분이 서지 않아서요.

 

나이 들면 큰 차를 타야 한다는 사람들 말에 실소를 터트리곤 했는데(차종을 예산과 용도에 맞춰야지 나이에 맞춰 사를 사다니!) 나도 국수 하나 먹는 데에 명분을 찾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2021.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