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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술 취하면 나오는 속마음

beautician 2021. 7. 31. 12:59

프레임

 

그간 팬데믹 와중에 적잖은 말실수로 구설수에 올랐던 마흐푸드 MD 인도네시아 정치사법치안조정장관이 오늘 유뷰트 채널로 공개된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인도네시아 서민들의 현실을 제대로 묘사했습니다. 국민들이 코로나에 죽느냐 생계가 끊겨 죽느냐 그 기로에 서 있다는 말을 한 겁니다.

 

불과 이틀 후인 7월 26일(월) 현재 코로나 확산세가 꺾이지 않는 상태에서 나온 이 발언은 결국 코로나 확산억제에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국민들이 경제생활을 재가할 수 있도록  현행 이동제한조치를 완화하기로 마음먹은  정부의 사전포석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규제만 푼다고 해서 망가진 사업이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이미 크게 나버린 손해가 벌충되는 것도 아닙니다. 정부가 그렇게 국민들을 위하는 듯 립서비스를 하는 동안 실제 손해를 감내하는 것은 오롯이 인도네시아 서민들의 몫일 뿐입니다.

 

마흐푸드 장관

 

J사장이 그만큼의 통찰은커명 립서비스조차 하지 못하는 이유는 국민들과 대통령의 입장을 감안할 수밖에 없는 장관들에 비해 그는 오직 자기 혼자만의 손익을 따지기 때문이죠. 그는 지난 월요일 나를 자기 아파트로 불러들이는 데에 성공하자 다음 주에도 아파트로 와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 이유란 것이 지난 번에 얘기 못한 것이 있는데 전화상으로 얘기하긴 좀 그러니 얼굴 보고 얘기하자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도 같은 이유로 불러내고서 그때 얘기를 다하지 못했으니 다시 오라는 말에 갑질, 꼬장, 오만함 같은 것들이 느껴진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 수 접어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전화해온 금요일 밤 9시 그는 거의 만취상태였다는 겁니다. 자기가 한 말을 제대로 기억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술 취하면 헤어진 애인에게나 전화해야지 주말 저녁 9시에 나한테 전화해 일 얘기를 하려는 건 그 인간관계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합니다.

 

원래 인성에 문제 있는 사람이 술 취해서 전화하면 평소라면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들어아 하니 매우 불쾌한 일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 속내도 살짝 들여다 보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술 취하면 자긴 가장 논리적으로 말한다 생각하지만 말이 많아지며 속이 훤히 비치거든요.

 

그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겁니다. 코로나 상황에 꼼짝 못하는 자카르타 상황이나 지지부진한 허가 문제들을 다 떠나 한국에 가면 다른 기회를 모색할 여지가 여기보단 낫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성사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진 것도 아니니 한발은 걸쳐 두려 하는 겁니다. 작년 말 귀국했던 그가 자카르타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때 다른 사람들 밑바닥을 보았던 그는 내가 뒷 일을 맡아주길 바라지만 현지 비용을 우선 최소화해 놓고 싶고 무엇보다 내 보수부터 줄이고 싶은 겁니다. 원래 하던 일에 자기 '집사'일 까지 함께 해달라면서 말입니다.

 

그는 아마 마흐푸드 장관이 생각하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상황처럼 나를 기로에 세우고 싶은 겁니다.반이라도 받고 시키는 일을 할래? 아님 관둘래? 그는 이런 프레임으로 가려 할 것이고 난 그 프레임을 받는 대신 자카르타 사업을 어떻게든 내가 유지해 줄까? 아니면 다른 사람 찾아 볼래? 이런 전혀 다른 프레임으로 들이 밀어야 할 거고요.

 

일단 내가 어떻게 할지 마음을 정한 것은 어쨋든 좋은 일이지만 술 취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발 밑에 있다는 원래의 오만함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인간과 저녁 늦은 시간에 장시간 전화통화하는 건 정말 불쾌한 일입니다.

 

대충 이 대목에서 J사장 없었으면 이번 시즌 2에 무슨 글을 썼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2021.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