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지옥문 앞 군상들 본문
파국, 새로 시작
출판진흥원 원고를 새벽 두 시에 마치고 송고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원고를 준비하면서 현재 인도네시아가 지난 한 달간 수많은 매체들의 기사들을 뒤져봐도 보고서 몇 장을 채워줄 만한 출판산업 관련 이슈나 기사를 거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코로나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20일은 이슬람 희생제인 이둘아드하(Idul Adha). 일몰을 하루의 시작으로 보았던 고대 중동 풍습에 따른다면 이미 다음 날인 20일(화) 밤에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발표한 긴급 사회활동제한조치의 완화방침은 사뭇 충격적인 뉴스였습니다. 연일 5만 명대를 기록하던 신규확진자들이 갑자기 지난 며칠간 3만 명대로 떨어진 것이 검사량 자체를 68%로 줄여서 그렇다는 걸 매체들과 야당들이 나서 대놓고 지적함에도 불구하고 감염확산의 정점, 코로나 창궐로 의료체계가 무너진 시점에 일상으로 돌아가자며 봉쇄를 풀겠다는 대통령의 발표는 마치 다같이 손잡고 지옥문으로 들어가자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자카르타와 동부자바에서 살짝 내비쳤던 도시 빈민들과 대학생들의 소요낌새에 놀란 정부가 심사숙고 끝에 내놓은 결정이겠지만 그 결정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추가 감염되고 그 중 일부는 너무나도 간단히 목숨까지 잃게 될 것이 자명합니다.
새벽 네 시경 피오나는 친정 아버지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전날 저녁 큰 병원 응급실까지 모셔갔지만 역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호흡곤란으로 세상을 뜬다는 게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일일지, 그걸 속절없이 바라봐야 하는 가족들 마음이 얼마나 참담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가 어려워 돕지 못하는 거 이해해 주겠죠."
몇 주 전 피오나가 처음 코로나 양성으로 확진되었을 때 산소통, 산소발생기를 구해주겠다며 여러 사람 괴롭히면서 생난리를 쳤던 J사장은 정작 피오나에게 가장 도움이 필요한 순간 그렇게 말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섰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의금을 보내며 내가 피오나를 대신해 이를 까드득 갈았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마음이 진심이어야 하지만 설령 진심이 아니라도 타이밍 정도는 맞춰주는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간 했던 말과 행동은 허황된 헛소리, 그저 보여줄 목적의 설레발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맙니다.
8월에 2주 이상 이동제한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보수를 반으로 깎자던 J사장의 요구는 조코위 대통령의 규제완화 방침으로 결국 전제조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가 잘못 결정해 장기간 매달 나가고 있는 다른 지출 몇 가지를 대폭 줄여줄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걸 지렛대로 최소한 피오나의 현재 보수를 지켜주려고 했었죠. 하지만 보수 삭감의 전제조건 자체가 깨진 상황에서, 바닥을 드러내 보인 그의 이익을 지키고 부풀려 주기 위해 굳이 그 방법을 제안하며 추가적인 노력을 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보수삭감 관련해서는 전제조건 자체가 무너졌어요. 없던 일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톡을 보내던 오늘 아침 분위기는 대체로 싸~했습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메이에게서 날아온 PCR 검사결과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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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인가 나흘 만에 받은 결과지가 음성으로 나온 겁니다. 결국 그간 메이가 아팠던 건 과로로 인한 몸살에 위염재발, 뭐 그런 거였던 모양입니다. 열이 나던 아이들도 모두 회복되었다고 하니 내일쯤은 식료품을 사서 가져다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고양이들을 다시 만나러 갈 때 그 집에도 보다 찰저한 방역대책을 세워 두도록 필요한 관련 물품들도 함께 구해서 가져가야 할 터입니다
요즘은 이렇게 여러가지 일들이 동시에 벌어집니다.
202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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