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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잡히지 않을 것같은 자카르타의 코로나 불길

beautician 2021. 7. 21. 12:29

대폭발

 

 

 

이런 날이 올 것 같긴 했습니다.

그간 인도네시아 코로나 상황이 줄곧 예사롭지 않았지만 현지 정부는 경제를 죽일 수 없다면서 봉쇄도 규제도 아닌 어정쩡한 활동제한을 별 성의없이 해왔습니다. 그대부터 대충 각오했었는데 막상 닥치니 장난 없습니다. 7월 13일 인도네시아 신규확진자가 4만8000명을 넘었습니다. 또 다시 신기록을 무지막지하게 세워버리고 만 겁니다.

 

사실 요즘 더욱 주목하게 되는 건 신규확진자나 사망자보다 활성환자 숫자입니다. 인도네시아 의료체계에 병상이나 의료인력의 여력이 없다는 것은 활성환자 숫자가 10만명 전후알 떄부터 이미 나오던 이야기였고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에 확진되면 자의반 타의반 병원에 가기보다 집에서 자가격리를 했습니다.그런데 현재 활성환자는 40만명이 넘은 상태입니다. 그건 그 사이 아무리 병상을 늘렸다 해도 대략 3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현재 자가격리치료를 하고 일부는 치료도 못받고 죽억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의료용산소통이 동나고, 확진자 가족들이 산소충전소에 끌이 안보일 정도로 줄을 서고, 시민들 한명한명이 모두 코로나에 걸리면 먹어야 하는 비타민 종류와 브랜드까지 다 꿰고 있고 시중엔 램데시비르, 아이버맥틴, 악템라 같이 예전엔 듣도보도 못한 의약품들이 코로나 치료제로 알려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것이죠. 병에 걸렸을 때 병상을 구하지 못하거나 약을 구하지 못하고 치료도 받을 수 없다면 그게 바로  의료체계 붕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인도네시아 의료체계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고 이제 코로나에 걸리면 아주 높은 확률로 죽기 쉬운 환경이 되어버린 겁니다.

 

2주 전 코로나에 확진되었던 피오나가 호텔격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이 친구는 병원에 있다가 일부러 퇴원해 호텔로 간 것이니 의료붕괴와는 조금 다른 이유로 자가격리치료를 한 셈입니다. 병원에 있으면 죽을 것 같다고 했으니 그게 그건지도 모릅니다.  PCR 검사 일정은 내일이고 아직 음성이 나올지는 미지수이지만 호텔자가격리 7일 팩키지가 1천만 루피아(약 85만원)으로 웬만한 현지인 대졸 6년차 월급과 맞먹으니 비용을 버틸 수 없어 호텔생활을 마친 겁니다. 집에 있는 어린아이 두 명이 걱정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나도 차차와 마르셀을 보지 못한지 닷새째입니다. 차를 몰고 가면 20분이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내가 움직여 누군가를, 즉 차차와 마르셀은 물론, 내 아내까지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위험한 요소는 이런 상황에서 차차와 마르셀의 엄마 메이가 일주일에 나흘 쯤 출근하고 있다는 것이죠. 위험은 매우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J사장은 피오나가 완치판정이 나면 모여서 식사하자 합니다. 식당들이 다 문을 닫았으니 자기 집으로 오라는데 이분은 경찰들이 고속도로 출구나 간선도로 로터리를 막고 차량들을 돌려세우는 '이동제한'이 자기랑은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막 완치된 피오나와 60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사는 내가 그 이동제한을 뚫고 자기 집에 오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쪽이 코로나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피오나, 혹시 내일 검사결과 음성으로 나오더라도 양성 나왔다고 해. 괜히 우리가 이 와중에 길바닥에서 고생할 필요 없어.'

 

J사장은 경제활동이 대체로 멈춰버린 인도네시아에서 하루하루가 좀이 쑤실지 모르지만 나나 피오나는 골방에서도, 코로나 병상에서도 늘 할 일이 있습니다. 예전처럼 마구 밀려있는 건 아니지만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잠시의 방심으로, 또는 불필요한 일을 무리해서 쓸데없이 시도해 위험을 스스로 초래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진 않습니다. 누가 위험수당 챙겨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미 예견했던 것처럼 인도네시아의 신규확진자는 곧 5만을 넘어 당분간 더 높은 숫자를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현재 무섭게 번지는 화염이  소형 소화기 몇 개로  잡힐 리 없습니다. 그 와중에 국민들 대상으로 무료백신 약속했던 정부가 유료로 장사하려 들었다가 우박소나기처럼 쏟아진 비난과 질타에 급히 취소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모두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도무지 작금의 코로나 상황에 대한 진지함이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니 대폭발이 일어나는 것이겠죠.

 

 

거의 코로나대응 사령탑이 된 해양투자조정부 루훗 장관은 이 상황에서 자주 매체에 등장해 여러 말을 내놓으며 속으로는 날로 높아져가는 인지도에 '우후훗!'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2021.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