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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자카르타의 쾌적한 아침

beautician 2021. 7. 9. 00:23

더 날카로운 것

 

센트럴파크 앞길

 

텅텅 빈 출근길 도로.

한적한 주차장,

비교적 적은 스모그 사이로 비치는 아침햇살.

 

이 모든 게 코로나 때문이 아니었다면 정말 쾌적한 아침일뻔 했습니다.

 

소규모 마을단위 공공활동제한조치 이른바 PPKM Mikro라는 방역조치가 시행되고 회사들이 직원 75%에게 재택근무를 시키면서부터 출근길이 전혀 붐비지 않게 되었습니다. 7월 3일부터는 불요불급한 사업장들은 100% 재택근무가 권고됩니다. 2020년 3월부터 사실상 줄곧 재택근무 중이라 별로 와닿진 않지만요.

 

인도네시아 국회 상원 격인 MPR의 여러 부의장들 중 한 명인 노련한 정치인과 우리 대사님의 만남이 줌미팅으로 바뀐 건 국회의사당 콤플렉스에서 발생한 일련의 코로나확진자들 때문에 콤플렉스 자체가 잠정 폐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두 사람의 미팅에 불려가 주변을 서성이게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를 포함해서요.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합니다. 대사는 인도네시아 국회가 CEPA 합의를 조속히 비준해 줄 것을 희망하고 새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내정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상원 부의장은 끄마요란에서 진행하려는 주상복합 콤플렉스 브로셔를 줌 화상에 띄워놓고 관련 설명을 하는 모습이 대화라기보다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 별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놓는 게 외교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무튼 외교무대여야 마땅할 그런 자리에 개인이나 특정 기업의 욕망을 가지고 들어간 측이 상대방에게 특정 반응을 유도하려 하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우리 대사님은 40분 가량 사각의 링(사실은 사각의 모니터)에서 나름 상대방 펀치를 유려하게 흘렸습니다. 그걸 보며 느끼는 건 우리 사회의 밑바닥이든 저 높은 외교무대이든 사람들의 욕망은 일관성 있게 날카로운 칼끝을 번득이며 상대가 누구든 찔러댄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기술이 부족하거나 재수가 없으면 찔리는 거고요.

 

밑도 끝도 없이 찌르고 들어와 목숨을 내놓으라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준비도 안된 특정 상대방을  사정없이 찌르며 들어가는 사람들의 욕망 중 어떤 게 더 파국적인가 생각에 잠기지만 않았다면 오늘은 꽤 쾌적한 오전일 뻔 했습니다.

 

 

2021.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