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무속을 다루는 인도네시아 언론의 태도 본문
인도네시아 무슬림 사회 수면 밑 무속의 세계
코로나가 세상을 바꾸면서 언젠가부터 인도네시아 몇몇 지역 마을 앞에 밤마다 길고 하얀 베게 같은 것이 나타나 자리를 잡았다. 뽀쫑(Pocong)이라 부르는 것인데 귀신의 일종이다. 귀신이 아니라면 최소한 무덤 속에 있어야 할 시신인데.
<그림1. 로컬 마을을 지키는 뽀쫑들>
무슬림이 죽으면 장례규범에 따라 생전에 사용하던 의복과 장식구를 벗긴 후 염을 하고 까인까판(Kain Kafan)이란 천으로 망자의 몸을 모두 넉넉히 감싼 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끈으로 6~7군데를 단단히 묶어준다. 묘지로 옮겨갈 준비가 된 이 상태를 ‘뽀쫑’이라 부른다. 죽음을 가장 시각적으로 구현한 뽀종은 사실상 죽음의 동의어다. 그래서 무덤 속에서 있어야 할 뽀쫑들이 돌아다니는 건 기절초풍할 일이다. 대개 뽀쫑이 돌아다니는 이유는 묶었던 끈을 푸는 것을 잊고 그대로 매장하면 끈 풀어줄 사람을 찾아 돌아다닌다고 하며 복수를 위해 무덤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990년대엔 자카르타 근교인 까라왕(Karawang) 지역에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끈을 풀어달라고 문을 두드리던 뽀쫑 ‘까뿍 하말린똥’(Kapuk Hamalintong)의 괴담이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다.
물론 마을 어귀의 저 뽀쫑들은 마을 자경단 청년들이 분장한 것인데 코로나 이동제한을 어기고 밤늦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그러다 뽀쫑 될 수 있다’고 위협하는 것이지만 청년들 스스로 자각하는지는 몰라도 사실 여기 무서운 뽀쫑 귀신이 있으니 코로나 귀신은 들어올 수 없다며 방어적 주술의 의미도 분명히 있다. 옛날 우리네 마을 어귀에 장승들을 세워놓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무슬림들의 마을을 귀신이 지키는 모습은 사뭇 비현실적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뽀쫑일가? 임신이나 출산 중 사망한 귀신으로 산모를 해치거나 아기를 가져가려는 무시무시한 여성원귀 꾼띨아낙(kuntilanak)은 도시 구석구석 깃든 괴담들 대부분에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귀신인데 청년들은 왜 꾼띨아낙 대신 뽀쫑 분장을 하는 걸까?
꾼띨아낙이 현지 영화 소재로 스크린에 등장한 것은 1970년대이지만 정작 뽀쫑의 등장은 그보다 한참 늦은 2006년이었다. 루디 수자르워(Rudy Suedjarwo) 감독의 영화 <뽀쫑(Pocong)>은 당시 기준으로 무슬림의 건전한 가치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영화검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꾼띨아낙을 수도 없이 소비했던 무슬림들에게도 대형 스크린에서 뽀쫑을 보는 것은 너무 무서웠던 것이다. 그런 우여곡절이 노이즈마케팅이 되어 같은 해 거의 같은 내용으로, 그러나 좀 덜 무섭게 다시 제작한 <뽀쫑2>가 크게 흥행하면서 이후 뽀쫑 영화들이 봇물 터지듯 극장에 밀려들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꾼띨아낙과 뽀쫑은 이제 나름 친숙한 존재가 되어, 헝클어져 얼굴을 가린 긴 머리가 트레이드마크인 꾼띨아낙은 샴푸 광고에 등장하고 뽀쫑은 온갖 코미디 영화와 광고에 감초처럼 등장하고 있다.
뽀종이 마을을 지키는 이유는 역시 종교적인 이유가 바탕에 깔려 있다. 물론 알꾸란의 그 어디에도 그런 암시는 없지만 고대로부터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민화와 괴담 속의 다른 무시무시한 귀신들에 비해 현대 무슬림 장례절차의 한 과정인 뽀쫑이 마을을 지키는 장승으로서 그나마 거부감이 덜하기 때문이리라 여겨진다.
뽀쫑들이 마을 어귀를 지키는 모습은 한국 뉴스에서도 다루어졌지만 현지 매체들의 보도는 대체로 캐주얼한 편이며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종교적 뉘앙스를 싣지 않으려 한다. 뽀쫑의 출현과 같은 사회문화적 현상에 종교적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하는 것은 모든 매체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SARA’ 규정, 즉 Suku(종족), Agama(종교), Ras(인종), Antargolongan (그룹) 이슈에 대한 부정적 또는 공격적 표현을 금하는 규정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도저히 한 나라가 되기 어려운 다민족, 다종교의 거대 인구와 수많은 섬들을 하나로 묶는 과정에서 80% 넘는 무슬림 인구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국교를 정하지 않은 세속국가가 되기로 선택했고 국가이념의 근간을 ‘다양성 속의 통일성’에 두었다. 즉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간극을 존중해야만 통일을 유지할 수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나라가 된 것이다. 그래서 특정 지역의 특정 문화현상인 뽀쫑 경비 내지 장승의 출현에 굳이 종교적, 무속적 요소의 부각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2월 초 더틱닷컴(detik.com)을 비롯한 여러 매체가 자바섬의 동쪽 끝, 반유왕이(Banyuwangi)에서 있었던 뻐르두누(Perdunu)라는 단체 결성을 보도했다. 뻐르사뚜안 두꾼 누산타라(Persatuan Dukun Nusantara), 즉 전군 두꾼 연맹이다. 두꾼은 인도네시아식 무당 또는 퇴마사로, 영매라는 측면에서 한국 무당과 유사하지만 내림굿을 통해 몸주를 받아들이는 대체로 피동적 한국 무당 개념에 비해 두꾼은 귀신들을 소환하고 교섭하고 계약을 맺어 조화를 부리고 속이고 내쫓는 등 주체적으로 귀신을 부리는 성격이 강하다.
인도네시아 대중들이 접해 있는 이슬람의 수면 바로 밑에는 두꾼들이 활동하는 어마어마한 주술시장이 존재한다. 영화나 소설 속 두꾼의 이미지는 주로 퇴마사나 저주술사다. 그들은 귀신을 부려 상대방을 죽거나 병들게 만드는 산뗏 저주술(Ilmu Santet), 도검불침의 신체를 만들고 설령 총을 맞거나 목이 잘려도 죽지 않는 일무끄발(Ilmu Kebal),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미칠 듯 사랑하는 마음을 강제로 심는 뻴렛주술(Ilmu Pelet), 이웃과 후손의 부를 훔쳐와 단기간에 부자가 되려는 재물주술(Ilmu Pegugihan)을 시전한다. 이런 것들은 피와 생명을 제물로 요구하는 흑마술로 여겨져 두꾼들은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1998년 수하르토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자카르타 폭동 이후 1년 이상 인도네시아 전국적으로 지속된 민족-종교분쟁에서 수많은 두꾼들이 흑마술사로 몰려 살해당하기도 했다. 특히 두꾼연맹이 차려진 반유왕이를 비롯한 동부 자바 지역 두꾼들 피해가 컸다. 동부자바는 무슬림 비율이 96%에 이르는 곳이다.
<그림2. 영화 <망꾸지워(Mangkuwiko)>(2020) 포스터에 등장하는 두꾼(dukun)>
하지만 본격적인 흑마술을 사용하는 두꾼이 아니더라도 주술상식을 일상에 활용하는 아마추어 주술사들은 지금도 현지사회에 넘쳐나며 그런 주술에는 악의도 담기지 않고 제물 역시 누군가의 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의 전국 단위 거대 무슬림 조직 중 하나인 무함마디야(Muhammadiyah) 고위 성직자였던 함카(Hamka)가 1938년 ‘민중의 나침반(Pedomen Masyarakat)’지에 연재한 소설 『판데르베익호의 침몰(Tenggelamnya Kapal Van Der Wijck)』엔 “도대체 의사가 뭘 안다고? 의사들은 이런 환자를 치료하지 못해! 상처를 치료하려면 주술사를 불러와야지! 그러다가 나중에 환자 상태가 정말 위중해지면 그때 가서야 의사한테 달려가곤 했다”든가 “빤더까르 수딴의 처신과 용기있는 행동에서 드러나는 성품은 매우 매력적이었고 심지어 간혹 주술에도 일가견을 보여 노인은 그가 마음에 쏙 든 나머지 자신의 딸 다엥 하비바와 혼인시켜 사위로 삼았다”는 식의 묘사로 이슬람 성직자조차 주술을 당시 남자들의 기본 소양이나 상식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반유왕이 뻐르두누의 설립취지는 사람들이 가짜 두꾼에 속아 사기당하지 않도록 무속정보와 교육을 제공하여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것이다. 국민각성당(PKB)의 동부 자바 출신 엘리트 국회의원 자지룰 파와이드(Jazilul Fawaid)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특정직업의 협회결성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반유왕이 군청은 뻐르두누가 제시한 산뗏(저주술) 문화제 개최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두꾼과 주술, 무속, 귀신목격 등에 대한 기사는 거의 모든 매체에서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지난 4월 자카르타 위성도시인 데뽁(Depok)에서 발생한 돼지요괴 사건은 현대 인도네시아 서민사회가 무속과 주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CNN인도네시아 보도에 따르면 아담 이브라힘(Adam Ibrahim)이란 이름의 우스탓(ustad=이슬람 교사)이 데뽁 사왕안(Sawangan)구(區) 버다한(Bedahan) 마을에 나타난 도둑돼지를 잡기 위해 4월 27일 밤 용감하고 힘센 주민 여덟 명과 함께 발가벗고서 내달리며 돼지를 포획틀로 몰아넣었다. 다음날 새벽 마을 사람들 수백 명이 잡힌 요괴를 보려고 그의 집에 모여들었고 이 소동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버다한 마을사람들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외지인들이 돼지를 보러 구름같이 몰려드는 것을 꺼려 돼지를 죽여 파묻었다. 흑마술로 돼지가 되살아날 것을 우려해 머리를 잘라 따로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바비응예뻿(Babi Ngepet)이란 도둑돼지에 대한 자바의 독특한 무속문화를 살짝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대개는 한 쌍의 부부가 두꾼을 찾아가 공물을 바치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빌면 돼지요괴가 현신하는데 요괴의 타액을 얻어 아직 2차 성징을 보이지 않은 자식의 몸에 바르면 아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된다. 돼지요괴에게 제물로 바쳐진 것이다. 그럼 이제 흑마술의 힘을 얻는 계약이 성립된 것이다.
부부 중 남편에겐 도둑돼지인 바비응예뻿으로 변신하는 능력이 생긴다. 밤이 깊은 후 주머니가 많이 달린 검정색 망토를 걸친 남편은 주문을 외워 멧돼지로 변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담벼락에 몸을 긁어 댄다. 그러면 그 집안의 값나가는 패물과 현금이 패물과 현금이 망토 안 주머니 속으로 저절로 빨려 들어온다. 하지만 그 사이 아내는 졸지 않고 집에서 촛불을 지켜야 한다. 만일 촛불이 솟아오르며 꾸불꾸불 요동치면 그것은 돼지가 위험에 처했다는 신호다. 재빨리 촛불을 불어 끄지 못해 촛불이 스스로 먼저 꺼진다면 멧돼지로 변한 남편이 길에서 위험을 만나 횡사했음을 뜻한다.
버다한 마을에서 도둑돼지를 죽인 것은 그걸 알면서 돼지로 변한 인간을 죽인 셈이다. 이 사건의 잔혹성은 그 지점에 있다. 흑마술을 쓴 사람이 죽어 마땅하다는 부분에 대해 바다한 마을 사람이나 그 기사를 실은 매체의 기자들은 대체로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의 우스탓 이브라힘은 도둑돼지의 가족이 자기 아들의 시신을 가져가기로 약속했음을 공개했다. 전설에 따르면 바비응예뻿은 죽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원래의 사람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경찰들이 버다한에 먼저 들어와 발굴해 간 시체는 사람 모습으로 돌아간 도둑이 아니라 이미 썩기 시작한 작은 멧돼지였을 뿐이다.
나중에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당시 마을에 도난사건이 빈번하자 이브라힘은 이를 자신이 영적 능력 뛰어난 우스탓이란 명성을 높일 절호의 기회로 보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동물애호가 그룹으로부터 애완용 새끼돼지 한 마리를 사와 사냥이 벌어진 날 밤 마을에 풀어놓고서 자신도 알몸이 되어 온동네를 죽어라 달렸다는 것이다. 이브라힘은 가짜뉴스 유포혐의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을 정리보도한 자카르타포스트는 “이런 류의 이야기 말로가 늘 그렇듯 데폭의 이번 기이한 흑마술 도둑돼지 사건도 욕망과 거짓, 그리고 덧없는 야망이 빚은 한바탕 코미디에 지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샤머니즘과는 상극일 것만 같은 이슬람이 인도네시아 토착 무속과 넓은 접촉면을 이루어 사회문화적으로 어우러져 공존하고 있는 배경은 이슬람 유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15~16세기에 활동한 ‘아홉 명의 이슬람 수호자’, 즉 ‘왈리 송오(Wali Songo)’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다양한 기록들이 서로 충돌하고 그 숫자도 8명에서 13명 사이를 오가고 있어 정통 역사보다 전설에 가까운 이들은 자바 땅에 이슬람을 전파했을 뿐 아니라 이슬람 교리와 자바 전통문화가 서로 어우러지도록 한 인물들이다.
당시 이슬람과 전통 무속이 부딪히던 상황은 왈리송오보다 시대적으로 조금 앞선 인물인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고위 울라마(Ulama)이자 퇴마사 쉑 수바키르(Syekh Subakir)의 고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슬람 포교를 방해하던 자바의 귀신과 마물들을 퇴치하기 위해 똠박 끼아이 빤장(Tombak Kyai Panjang)이라는 장창(長槍) 형태의 영적 무기를 자바섬 정중앙인 띠다르산(Gunung Tidar) 정상에 세웠고 거기서 뿜어져 나온 영적 불꽃과 열기가 인근 마물들을 순식간에 불태워버리며 번져나갔다. 자바 영계가 아수라장이 되자 급기야 자바의 정령과 마물들의 왕, 9,000년 묵은 삽다빨론(Sabda Palon)이 현신해 40일 밤낮으로 쉑 수바키르와 격돌했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삽다빨론이 싸움을 멈추고 내민 타협안이 이슬람 포교를 막지 않을 테니 자바의 기존 관습과 문화를 파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쉑 수바키르는 고심 끝에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쉑 수바키르는 오스만투르크로 돌아가고 그의 뒤를 왈리송오의 한 명인 수난 깔리자가(Sunan Kalijaga)가 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학교 이슬람 교과서에도 정식으로 실리지 않지만 더틱닷컴은 왈리송오로 알려진 이슬람 전파자 각각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올해 4월말에서 5월초에 걸쳐 연속으로 실었다.
이후 왈리송오들의 역할에 힘입어 무속에 깃든 요괴와 귀신들이 독립적으로 현지 문화 속에 살아남거나 이블리스(iblis-마귀), 마리드(marid -마령), 이프리트(ifrit-귀신), 샤이탄(shaytan-악마), 잔(jann-악귀) 순의 이슬람 악마 체계에 편입되는 배경이 되었다. 현지 무속 속의 두꾼, 빠웡(pawong), 꾼쩬(Kuncen) 같은 무당들도 이슬람 주류사회 속에 존속하며 연맹도 만들 정도의 이런 전설에 기반한다. 인도네시아 울라마 대의원회(MUI)가 2005년에 무속금지 파트와(fatwa-권위를 가진 종교적 칙령)를 발표했지만 무속은 수면 밑으로 조금 더 들어가거나 이슬람의 옷을 덧입는 식으로 여전히 인도네시아 사회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정통 이슬람에는 카톨릭의 구마사제처럼 이슬람에도 같은 기능을 하는 루키야(Ruqiyah)가 있다. 오직 알꾸란에만 의지해 퇴마의식을 행하는 루키야들은 특별히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아 지역사회나 개별 사원에서 인정하는 우즈탓(Uztad) 정도의 이슬람 교사들이 수행한다. 그러나 루키야는 최근 일반 무슬림 대상의 강연회와 심신 및 장소의 정화에 초점을 둔 루키아 테라피로 발전해 더욱 일반화되는 추세다. 수하르토 정권(1967~1998) 당시 호러영화에서 퇴마사로 등장하는 루키야를 종종 볼 수 있었고 최근엔 아예 노골적인 이슬람풍 제목을 단 영화들이 개봉되었는데 그 중에도 루키야는 빠지지 않는다.
<그림 3. 이슬람 배경의 인도네시아 호러영화>
최근엔 두꾼들도 ‘루키야’의 탈을 쓰고 행하는 무속 퇴마의식이 진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말 안듣는 어린 딸에게 붙은 악령을 쫓아내는 의식을 하다가 딸을 익사시키고 만 부모와 두꾼들이 구속되는 사건들도 벌어졌다. 일곱 살 여아의 몸에 인도네시아의 무대표적 토착 귀신 중 하나인 건드루어(Genderuwo)가 들어갔다는 루키야를 사칭한 두꾼들의 말을 듣고 부모가 아이를 욕조에 담궜다가 끝내 사망했지만 두꾼들은 아이가 살아날 것이라며 방에 눕히게 했고 그렇게 4개월 동안 딸의 부활을 기다리다가 결국 모두 체포된 사건이다.
루키야 퇴마의식은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성행하고 있는데 대체로 적절한 안전장치나 통제가 없어 무고한 인명을 잃는 결과가 종종 벌어진다. 2018년 동부자바 뜨렝갈렉(Trenggalek)에서는 어머니에게 붙은 악령을 쫓아낸다며 자녀들이 두꾼들이 시킨대로 얼굴에 계속 물을 부어 결국 어머니가 질식사하는 사건도 있었다.
자카르타포스트의 5월 22일자 이 기사에서 두꾼과 루키야의 경계는 상당히 모호해져 있다. 엄밀한 의미의 루키야는 우즈탓이 오직 알꾸란의 말씀만으로 진행하는 퇴마의식인데 이 기사에 등장한 루키야는 이슬람의 용어와 방식을 빌어 왔지만 실제로는 두꾼들이 귀신들이 물을 두려워한다는 무속적 속설에 따라 물을 붓거나 물속에 사람을 담근 것이어서 진정한 루키야와는 거리가 멀다.
대규모 인원이 밀집한 봉제공장이나 학교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집단빙의, 즉 끄수루빤 마쌀(Kesurupan Massal)은 현지 한국인들도 종종 경험하는 영적 현상이다. 자기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노조의 색다른 사보타지 투쟁방식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귀신을 목격한 직원들이 단체로 비명을 지르며 일사불란하게 졸도하는 봉제라인을 2층 관리실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종업원들을 쓸어버리는 것만 같다. 이런 집단빙의 사건에 대한 기사는 대체로 넘쳐나는 편으로 작년 12월 3일에도 자카르타에서 네 시간 떨어진 수카부미(Sukabumi) 소재 찝따 드위 부사나(PT.Cipta Dwi Busana)라는 한국계 봉제공장에서도 집단빙의사건이 벌어져 초기 단계에서 수천 명이 조업을 중단했다는 수아라자카르타의 보도도 있었다. 이때 사태 수습을 위해 현장에 불려가는 사람들은 목사와 루키야, 최악의 경우엔 두꾼들도 동원된다.
끄수루빤 마쌀 같이 극단적인 경우 말고 부부싸움이 잦거나 자주 다치거나 사업이 잘 안될 때 인도네시아인들이 루키야나 두꾼을 찾는 것은 한국인들이 철학관이나 점집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상이다. 단지 대놓고 찾아가기엔 사람들 눈이 두려운 두꾼들은 본격적인 흑마술조차도 온라인으로 옮겨가 주문과 복채를 받는 추세여서 누군가를 확실히 그러나 자연적인 방법으로 죽여주겠다는 산뗏 저주술사들의 홈페이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반면 양지로 나온 루키야는 기독교의 신유부흥회처럼 샤리아 테라피를 앞세운 대대적인 유료집회를 조직하곤 한다. 2013년 설립된 인도네시아 샤리야 루키아 협회(Ruqyah Syar'iyyah Indonesia Association)에 가입한 루키야 테라피스트들은 현재 1천 명이 넘는다.
<그림 4. 우스탓 누르딘 인두니시의 루키야 테라피 유료 강연 포스터>
각각의 종교들은 서로의 입장이 있어 때로는 다른 종교를 옹호하기도 하고 때로는 비난하기도 하지만 이를 다루는 언론매체들은 대체로 SARA 규정을 준수하며 좀처럼 치우치지 않는다. 1998년 설립된 이후 줄곧 정부, 민중과 부딪히며 온갖 물의를 빚었던 이슬람수호전선(FPI)의 전횡에도 불구하고 작년 말 불법단체로 판정되어 정부가 해산을 명령할 때까지도 일부 전문가 컬럼들을 제외하고는 기사들은 팩트를 전할 뿐 매체 차체의 판단은 담지 않았다.
그런 태도는 이슬람 외의 다른 종교에도 적용되며 무속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이슬람 인구 비중이 적은 곳엔 대개 기독교나 힌두교 비중이 높지만 동부 누사떵가라나 서파푸아, 깔리만탄 내지의 다약족 지역 등은 무속 비중도 적지 않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간극을 존중해야만 통일을 유지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특히 종교와 무속을 다루는 매체들은 대체로 매우 조심스러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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