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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
생각해 보니 단 한 번도 버킷리스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목록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려고 했던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은 분명 있지요. 그것들을 꼽아 보면서 재미있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참 모순적이란 생각도 하게 됩니다.
꼭 하려 했던 것 중 첫 번째는 제사를 지내는 겁니다.
우린 기독교 집안이어서 제사 전통이 없어요. 독실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1970~80년대에 함께 완도 등지를 다니시며 귀신들린 사람들 안수하여 귀신을 쫓아내곤 하셨습니다. 나중에 글 쓰는 사람이 될 걸 미리 알았다면 그때 열심히 쫓아다니며 취재했을 텐데…… 목사인 아버지와 동생이 질색을 할 일이겠지만 굳이 제사를 지내려는 것은 역시 그게 조상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선조와 조상들에게 예를 다하는 게 문제일 리 없습니다. 그게 귀신을 불러들이는 초혼술의 일종이라 하더라도 만약 그래서 정말 돌아가신 선조의 혼령이 제사상을 찾아온다면 정말 고맙고 반가운 일 아닐까요? 귀신이 먹을 음식이라고요? 어차피 제사상에 올린다는 핑계로 다 우리가 먹을 음식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정으로 쓸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을 구해 놓고 제사상 차림에 대해 인터넷으로 공부하고서도 정작 올해 설날에도 상을 차리지 못한 건 집안에 흐르고 있는 유구한 기독교 전통이 목덜미를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1945년 8월 9일이 기일인 할아버지는 히로시마에서 원폭에 돌아가셨는데(사실은 그때 연락이 끊겼고 유해도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사진 속 30대의 젊고 날카로운 턱선을 가진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미남 할아버지가 ‘쯧쯧, 딱한 놈” 이러시며 혀를 차고 있을 것 같습니다.
신학교에 진학해 공부해 보겠다는 생각도 오랫동안 품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생계를 지키고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인생 1막이 끝나고 나면 인생 2막에서는 신학 공부를 해서 신이 정말 누구인지 알고 싶었고 목사님들이 가르치는 것들이 정말 진실인지 교리를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그 교리들이 정말 산의 뜻인지, 한낱 인간들의 얄팍한 통치기제인지도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신학교에서 도대체 어떻게 가르치기에 오늘날의 목사들이 저 모양 저 꼴들인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 2막에 들어서서도 - 사실 난 대력 인생 15막 정도에 와 있는 기분이지만 – 생계문제와 가족, 아이들에 대한 책임의 무게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서적으로도 자립할 능력을 갖추는 것은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입니다. 게다가 이제 90세가 된 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나도 어느 정도 심정적으로 의지하는 부분이 있으니 50~60대에 생계를 버리고 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참 힘든 결정일 것 같습니다. 너무 늦으면 학습능력이 너무 떨어질 것 같고요.
이슬람에 입문할 생각도 있습니다.
이슬람의 하나님과 기독교의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같은 분이라 하니 저 위에선 문제삼지 않을 것 같지만 그 아래 이 땅에서는 상당한 물의를 빚겠죠. 이슬람을 겉핥기 식으로 아는 것보다는 그 안으로 직접 투신하는 것이 이슬람과 인도네시아를 더 깊이 아는 길이 될 것임은 누구나 쉽게 추론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한 심리적, 정서적, 문화적 장벽이 너무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무슬림이 되지 않고도 이슬람을 공부하는 학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언젠가는 보고서를 쓰는 대신 장편소설을 몇 편 쓰고 싶습니다. 단편소설도 한 50편에서 100편 정도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업작가의 세계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나란 작가가 살았다는 흔적을 남기려면 그 정도는 남겨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후세의 누군가로부터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살았던 배모 작가가 주로 이런 주제를 저런 문체와 분위기로 쓴 사람이라는 정도의 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세상의 주목을 끌 문제작으로 대 히트를 친다면 한 두 편으로도 충분할 지 모르나 그건 역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므로 양으로 승부해 보려는 거죠. 그러면 장편소설도 일단 열 편은 넘게 써야 할까……?
이렇게 쓰고 보니 내 버킷리스트의 특징은 당장 하기 곤란하거나 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에다가 서로 충돌하는 상호 모순적인 것들입니다.
이것 말고도 와이프랑 함께 유럽여행 가기, 싱가포르의 아이들, 준사위(작년 4월로 예정했던 결혼식이 코로나로 늦어지는 중이어서)와 함께 호치민에서 만나 베트남 여행하기 같은 것들도 있지만 이런 것들은 곧 이룰 수 있는 것들 같아 굳이 버킷리스트에 넣고 싶진 않네요. 거기 넣어버리면 왠지 거기 이미 들어가 있는 ‘현실화되기 힘든 희망’들과 비슷해져 버릴 것 같아서요.
소원을 왜 굳이 양동이에 담으려 했는지 궁금해 버킷리스트의 어원을 살펴보니 자살하는 사람이 자신이 올라가 있던 양동이를 차버리고 스스로 목 매단다는 뜻의 ‘kick the bucket’에서 왔다고 하네요. 그러니 버킷리스트가 하나 더 생깁니다. 부정적인 어원에서 시작된 버킷리스트란 단어를 ‘죽전꼭’(죽기 전 꼭 해야 할 일), ‘이못절’(이거 못하면 절대 못죽어) 같은 순수 한국어로 바꾸는 일입니다.
2021.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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