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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수티온 장군 장녀 별세 (2021. 6. 18) 본문
사진 속 인물들
이 오래된 사진은 인도네시아 현대사의 대장군(오성장군) 세 명 중 한 명인 압둘 하리스 나수티온(AH Nasution) 장군의 가족사진입니다.
일반에 공개된 이 사진이 너무 작게 나온 게 아쉽습니다. 이 사진은 대략 1965년쯤의 것인데 당시 나수티온 장군은 육군사령관직은 아흐맛 야니 장군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전군사령관 즉 육해공군을 모두 통솔하는 군 최고 위치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다가 1965년 9월 30일 자정이 지나고 10월 1일 새벽이 되었을 때 대통령궁 경호실 군인들이 나수티온 장군 자택에 난입해 들어옵니다. 훗날 9,30사태, 인도네시아인들은 P30S PKI라고 줄여 부르는 쿠데타가 벌어진 겁니다.
서로 식별하기도 어려운 어둠 속에서 나수티온 장군은 정원을 가로질러 달린 끝에 높은 담장을 타고 넘어 옆집인 이라크 대사관저 정원으로 낙하하다가 발목이 부러집니다. 가족을 쿠데타쿤의 총구 앞에 버려두고 홀로 사태를 모면했지만 그의 이 결단으로 인해 그날 새벽 질풍노도와 같던 쿠데타의 방향을 꺾는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아흐맛 야니 장군을 비롯해 반공 장군들 여러 명이 목숨을 잃은 그날 나수티온 장군도 쿠데타군에 잡혀 죽었다면 이제 군의 차상급 지휘관은 당시 육군전략예비사령부 수장 수하르토 소장만 남게 될 판이었습니다.
수하르토 소장은 나중에 쿠데타 진압 선봉에 서서 쿠데타 진압으로 그치지 않고 이후 공산당 사냥을 방치해 전국적으로 50만~300만명의 화교, 공산당, 공산당 동조자 및 주민들에게 밉보인 이들이 1년 사이 대거 학살당하는 이른바 인도네시아 대학살을 거쳐 결국 인도네시아 2대 대통령이 되지만 그날 밤 쿠데타군이 왜 수하르토 장군을 공격하지 않았는지는 아직까지 의문으로 남습니다.
쿠데타군의 수색이 계속되었다면 그들이 이라크 대사관저까지 밀고 들어갔을지 모르나 나수티온 장군의 부관 삐에르 뗀데안 중위를 나수티온으로 오인한 쿠데타군은 그를 체포해 쿠데타군 본거지인 할림공항 근처 루방부아야(Lubang Buaya)의 기지로 압송해 갑니다. 뗀데안 중위는 거기서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되죠.
그날 아까운 생명이 여럿 스러져 갔지만 저 위 사진 중 왼쪽 아래 나수티온 장군의 막내딸 이르마 수리야니(Irma Suryani)의 죽음은 가장 가슴 아픕니다. 쿠데타군이 아무렇게나 발사한 총탄 몇 발이 가정부의 등에 업혀 숨을 곳을 찾던 이르마의 척추를 끊었고 아르마는 뒤늦게 병원에 이송되었지만 며칠 후 어린 나이에 결국 목숨을 잃고 맙니다.
어쩌면 이르마의 죽음이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바꾼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라크 대사관저에 숨었던 나수티온은 쿠데타군이 떠난 후 우여곡절 끝에 수하르토와 합류하여 이제 쿠데타 진압의 선봉에 서야 했지만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다가 결국 세상을 떠난 막내딸의 일로 깊은 상심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는 사이 수하르토는 쿠데타를 진압하고 인도네시아 정국은 그를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합니다. 그 시기에 나수티온이 중심을 잡고 있었다면 인도네시아 현대사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어 갔을 지도 모릅니다.
쿠데타 배후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과 논란이 많지만 대체로 반공장군들을 몰아내고 수카르노 대통령을 보위하며 제5의 군대 즉 노농적위대를 창설해 궁극적으로 인도네시아를 적화하려 했던 공산당의 소행이란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당시 공산당 당수 DN 아이딧(DN Aidit) 역시 이 시기에 죽음을 피하지 못했고 여기 연루되었던 대통령 경호실장 운뚱 중령을 포함한 주동자들 여럿도 처형당합니다. 깔리만탄에서 말레이시아와의 국경분쟁 선봉에 서서 싸우면서 그 전쟁에 미온적이던 군 수뇌부를 질타하던 수빠르죠 준장의 처형은, 그가 쿠데타군 측에 서있었으나 그 인품과 당당함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합니다.
훗날 나수티온 장군의 아내가 아이딧 전 공산당 당수의 자녀를 지원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 지원이 분명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했던 사람은 저 맨 위 사진 오른쪽에 있는 나수티온 장군의 장녀 헨드리얀티 사하라 나수틴온(Hendrianti Sahara Nasutio)입니다.
그녀가 지난 6월 18일 세상을 떠나 남부 자카르타 따나꾸시르 공동묘지(TPU Tanah Kusir)에 뭍혔습니다. 모하마드 하타 초대 부통령이 묻혀있는 곳이죠. 물론 아버지인 나수티온 장군은 국가영웅으로 지정되어 깔리바타 영웅묘지에 뭍혀 계십니다.
그래서 결국 맨 위의 사진 속 인물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사라지고 남은 흔적들에는 더욱 역사성이 깊어지는 것이죠.
그 쿠데타의 새벽 이후 56년을 살아가면서 아무쪼록 자신의 삶을 찾아갔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1.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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