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원대한 계획 본문
그렇지만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아침에 했던 계획을 기억해냈다.
아침 7시 경에 만드는 오늘의 계획은 늘 희망차기만 하다. 오늘 계획한 일들을 모두 다 한다면 오늘은 물론 앞으로의 일정이 전부 순조로울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오늘 첫 일은 눈여겨 둔 기사를 하나 번역하는 것이었다.
인도네시아 종교부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하지(Haj) 성지순례를 취소했다.....이게 분명 한국사람들에겐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일이지만 하지를 떠나려도 오래동안 저축하고 자녀들이 돈을 모아준 중년 무슬림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충격적인 일인지는 이웃 무슬림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얼마든지 알 만한 일이다. 그런데 좀 더 알아보니 사우디가 하지 순례객을 안받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 결정을 아직 내리지 않은 상태인데 인도네시아 종교부가 먼저 순례객을 보내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설레발에 준하는 성급함이 분명해 보였고 역시 인도네시아도 장관쯤 되고 메카에 몇 번씩 다녀온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종교적 열정에 넘쳐 메카 순례를 수년 동안 꿈꿔온 사람들의 염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꽤 긴 그 기사를 통으로 번역하는 게 두 시간 전후. 그걸 다시 다른 파일로 옮겨 이번엔 원고지 7매 전후로 줄이는 작업.
기사 원문번역은 대략 원고지 25장 정도 분량이니 3분의 2를 덜어내야 한다. 그 작업이 한 시간 정도. 그걸 하는 이유는 아시아투데이에 기사를 보내기 위해서다. 한달에 최대 8건의 기사를 보내는 게 아시아투데이와의 계약인데 늘 2~4건 정도를 보냈다. 오늘 기사는 이번 달 두 번째 기사이니 이번 달엔 잘 하면 다섯 건 이상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생계를 위한 포트폴리오이니 신경을 쓰는 건 나름 의미가 있다. 그렇게 해서 신문사 시스템에 업로드한 것이 오전 11시 경. 데스킹을 거쳐 신문사 홈페이지 국제면에 기사가 올라간 것이 오후 2시경.
https://www.asiatoday.co.kr/view.php?key=20210608010004643
그렇게 해서 일단 한 건을 마쳤다.
다음은 6월 15일 마감인 영화진흥위원회 통신원 원고를 위한 자료정리다.
동남아 호러영화의 전반을 정리하는 프로젝트에 난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를 요약한다. 전체적인 자료 준비는 70% 이상 오래 전에 이미 되어 있지만 크로스체크가 필요하고 내실을 기하고 함량을 제고하기 위해 좀 더 많은 자료를 번역해 놓을 필요가 있다. 이틀 전부터 작업한 번역서류는 뒤에 각주와 참고서적들이 잔뜩 붙어 있는 것으로 봐서 일반 기사나 보고서가 아니라 짧은 논문이나 학술자료에 가깝다. 결과물은 A4 14페이지. 내가 예전에 단편소설을 시도할 당시 그 정도 물량을 쓰면 200자 원고지로 대략 100~120장 정도가 되곤 했다. 그림들을 꽤 포함시켰지만 그래도 웬만한 단편소설 분량 정도를 번역한 셈이다.
나름 공을 들이느라 관련 사진들을 모두 찾아서 첨부했다. 그렇게 해서 일차 다듬고 다시 블로그에 올려 놓으면 작업이 끝나는데 원래 오후3시 쯤까지 끝내려 했던 것인데 오후 10시 쯤에야 블로그 게재까지 끝났다. 계획보다 일곱 시간 늦어진 거다. 내가 그렇지.
https://blog.daum.net/dons_indonesia/2638
문제는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이다.
그 중 하나는 이번 주 목요일 마감인 데일리인도네시아 원고다. 이번엔 [무속과 괴담사이] 13번 째 원고를 써야 하고 이번 주제는 뽀쫑(Pocong)에 대해 쓰기로 마음 먹었다. 자료도 얼추 예전에 챙겨놓은 것이면 글을 쓰긴 충분하다. 하지만 대개 A4 5~6장 정도 분량에 사진을 3~4개 정도 써야 하니 네 시간 정도 잡고 써야 하는 원고다. 지금 시간이 밤 11시 반. 지금부터 쓴다면 새벽 3시 전후에 초안을 마칠 수 있다. 밤에 쓰는 원고는 절대 최종본일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 퇴고해 보면 왜 그렇게 썼는지 스스로도 난해한 부분들이 얼마든지 발견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건 시간이 문제지 자료나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다.
또 다른 하나는 PPT 자료 열 두 페이지를 만드는 일이다.
정말 하기 싫지만 꼭 할 수밖에 없는 일. 내가 돕는 회사를 위한 일이다.
어차피 초안을 만드는 것이고 일부 슬라이드는 팀 내 현지인들이 만들어 줘야 하는데 어차피 그 친구들 내용이 오지 않으면 해당 PPT는 완성되기 어렵다. 이런 건 정말 골치아픈 일이다. 협조의지도 없이 그저 자기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과 일을 한다는 건 보람도 성취감도 기대할 수 없기 떄문이다. 그래도 하긴 해야 하지만 오늘 밤에 한다 해도 끝을 낼 수는 없다. 차라리 내일 할까 하는 유혹에 사로잡힌다. 이걸 한다면 그래도 최소한 두 시간은 작업해야 한다. 그림들 찾아 집어 넣고 몇 차례 퇴고한다면 3~4시간 짜리 작업. 이걸 하려 했다면 위에 이미 끝낸 두 가지 일을 하기 전에 했어야 했다.
정말 중요한 다른 한 가지는 양교수님께 이메일 회신을 내는 일이다.
오늘이 아니라 올초에 올해 할 일을 계획할 당시 우선 순위 가장 앞에 있던 것이 <시티 누르바야>의 번역과 양교수님과 함께 할 <리콴유 평전> 작업이었다. <리콴유 평전>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영문 원서를 번역해 양교수님이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일이다. 어쩌면 내가 일부 챕터를 쓰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러기 위해선 내가 리콴유를 좀 더 공부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이제부터 그 사람을 공부한다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인가?
문제는 지난 상반기 내내 전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서는 구했지만 제대로 열어보지도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인덱스를 붙이면서 한 차례 쯤은 다 읽어봤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원래 저 계획을 할 당시엔 이랗게까지 시간에 쫒기게 될 줄 몰랐다. 그리고 일차 읽어본다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정말 하려 든다면 읽어보는 게 아니라 하루에 10페이지 씩 번역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사려깊은 양교수님은 이메일 속에 독촉하는 단어를 단 한 마디도 넣지 않았다. 하지만 행간에서 교수님 생각이 충분히 읽힌다. 내가 리콴유 평전과 관련해 허송할 수 있는 시간이 다 지난 것이 분명하다.
양교수님께 이메일 회신을 하는 것이 오늘 아침부터 계획했던 오늘 할 일 중 하나였다.
가장 짧은 원고가 되겠지만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마음과 진심을 담아야 하는 일.
위의 무속 원고나 PPT 초안은 분명 오늘 밤 중 끝내는 게 무리겠지만 이 이메일 회신만을 내고 잠자리에 드는 게 맞는 것 같다.
어차피 영진위 주재원 원고는 7월 5일 마감이 마지막. 지난 1년 간 그 보고서를 쓰기 위해 들였던 시간과 노력을 리콴유 평전에 쏟아 보기로 한다. 늘 문제는 생계를 위한 포트폴리오인데 이 일이 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린 것은 당장 돈이 되기 어려우리란 것, 즉 생계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2017년의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막스 하벨라르>를 번역하던 시기의 순수함으로. 지금은 최소한 그때처럼 죽을 것같은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2021.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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