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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은퇴'라는 로망

beautician 2021. 6. 14. 11:07

 

은퇴 또는 퇴출?

 

대체로 웃기는 소리



한 시대를 마감하고 현역에서 물러나는 것을 어떤 이는 은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퇴출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30여년 한 직장에 일하고 영예로운 마무리를 지은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과 많은 부침을 거듭한 끝에 같은 나이에 제 15, 16의 인생을 맞은 이들의 노후는 필연적으로 상이할 뿐더러 서로 이해하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올해 하반기의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중 얼마 전 만난 학군 동기는 삼성전자 법인장을 전무로 마치고 모 가전회사 부사장으로 이직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경험과 입장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한 시간 넘도록 점심식사 하면서 환담할 수 있던 것은 머리가 굳기 전 어린 시절의 교류가 그만큼 튼튼한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70대에 접어든 선배들 중 자카르타에 남아있는 이들은 이제 별로 없습니다. 해외생활을 지탱할 만한 수입도 명분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과 특별한 유대관계를 가졌거나 비록 대규모는 아니지만 건실한 자기 공장을 유지하고 있거나 뛰어난 능력으로 징검다리 건너듯 여러 회사의 CEO자리를 순차적으로 소화하고 있는, 그야말로 몇 안되는 숫자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분들 나이가 되기까지 전업작가로서 자카르타에 남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지만 전례가 없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은퇴를 논하는 것은 한창 30-40대에게는 낭만적인 미래일지 모르나 50대 후반에겐 당면한 현실이고 대체로 마음 따뜻해지는 무언가는 분명 아닙니다.

스스로 노후 비용을 댈 수 없다면 은퇴란 누군가의 짐이 되는 비루한 삶이 되기 쉽습니다. 아마 그래서 내 아버지도 끝내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하는 거겠죠. 중증 치매로 들어선 아내를 홀로 돌보면서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아버지는 무모하고 용감해 보이지만 동시에 눈물겹습니다.

하나 둘 고장나기 시작하는 몸이 10년 후에도 얼마나 버텨줄 지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도 현장을 지키며 인도네시아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없이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면 상황이 허락하는 한 한국에 나와 일하는 인도네시아 근로자나 유학생들에게 모종의 도움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통역이든 그들 개인 또는 집단의 원만한 외국생활을 위해서요. 반평생을 남의 나라에서 현지인들 속에 부대끼며 살았던 것의 보상이란 측면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싱가포르에 있고 차차와 마르셀이 인도네시아에서 커가는데 역시 가능한한 오래 자카르타를 지키며 자기 밥벌이를 하는 것이 최선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내일도 장담 못하는 인간들이 10년 후를 어찌 알겠어요?

 

평생 준비 못한 미래를 늙어서 준비해야 하는 은퇴계획

 

 

2021.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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