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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집밥을 정의하자면

beautician 2021. 6. 13. 11:25

 

집밥의 고수

 

한 끗 차이. 이름이.....^^

 

집밥이 특별한 것은 음식이 꼭 맛있거나 조미료 첨가제를 덜 쓴, 보다 건강한 음식이어서가 아닙니다. 조미료 범벅을 하고도 맛을 잡지 못하는 엄마들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흰밥에 고기반찬이란 뜻도 아닐 것입니다.

 

집밥이 특별한 것은 특수관계에 있는 가족(엄마나 아내)이 특정된 사람(자녀나 가족)을 위해 요리한 음식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집밥이란 그 요리의 특징보다는 누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가에 중점을 둔 개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집밥을 좀 할 줄 압니다.

 

특히 지난 12월 이후 아내가 석 달 간 한국에 가 있던 동안 요리실력이 좀 늘었습니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오래전 비록 라면으로 시작했지만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닭국까지 할 수 있게 되었는데 12월에 200개 넘게 만든 만두를 곧바로 냉동실에 넣지 않고 냉장실에 넣는 바람에 만두들이 모두 서로 붙어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차차와 마르셀을 주려고 닭고기와 소고기만 사용한 할랄(halal) 만두였는데 결국 먹긴 했지만 만두답게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다음 소고기 재는 법을 갈고 닦아 차차와 마르셀에게 몇 차례 만들어 주었는데 물에 담가 필를 뺀 른당 소고기 2킬로크램을 얇게 잘라 오렌지에서 착즙한 주스에 담가 거기에 빠빠야나 파인애플을 잘라 넣어 억센 고기 숨을 죽이고 거기에 마늘, 양파, 버섯, 토마토, 파 등을 잔뜩 잘라 넣고 간장, 참기름, 후추, 소금 등으로 마무리하면 대략 5킬로는 족히 되는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매번 성황리에 소진되어 큰 자신감을 얻어 지난 3월 아내가 한국에서 돌아왔을 때 첫 요리로 소고기를 쟀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야박했습니다.

 

“이게 무슨 냄새야? 아우~. 자기 혼자 다 먹어.” 오렌지 종류를 바꿨는데 그 냄새가 비위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것도 차차와 마르셀네 집으로 보내져 성황리에 소진되었습니다. 내가 만든 집밥은 집에서는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옛날 할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재현해 보려고 노력해 보기도 했는데 그 특이한 음식들이 이젠 기억도 잘 안납니다. 돼지고기를 잔뜩 넣은 김치찌개 같은 걸 자주 먹었는데 색깔이 대체로 맑은 색이어서 김치가 아닌 다른 걸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배추를 잘라 넣었을까요? 할머니는 달성에서 태어나 강경으로 시집오셨으니 할머니 요리의 기원도 대략 그쪽이 어딘가일 듯싶습니다.

 

닭국은 어느 정도 복원했다고 자부합니다. 잘 손질한 닭 두 마리 껍질을 벗겨서(옛날엔 안벗겼던 것 같지만 아내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은 후 벗기기로 했습니다) 통마늘 20~30개 정도를 까고 양파도 잘라 넣고 감자도 몇 덩이 잘 씻어 압력밥솥에 같이 넣은 후 물을 맞추고 별다른 양념없이 일단 푹 끓인 다음 잘 익은 닭을 건져 살을 발라 냅니다. 꼭 닭 두 마리가 아니라 가슴살만 몇 덩이 넣어도 될 듯했습니다. 그런 다음 발라낸 닭살을 얇고 길게 뜯어 소금, 고추가루, 후추, 참기름, 들깨 등으로 따로 무치는 거죠. 그렇게 사전 준비를 마치면 뼈와 야채가 든 국물을 다시 끊여 나중에 사골국처럼 떠서 식탁에 올리는데 약간 짜게 무쳐진 닭고기를 각자 원하는 만큼 덜어내 국에 넣고 그걸로 간을 맞추는 겁니다. 이 레시피만은 아내의 검열을 통과해 요즘은 아내도 가끔 이렇게 만든 닭국을 내놓곤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집밥엔 가문의 전통도 깃들어 있는 거네요.

 

요즘 싱가포르에서 딸이 자기가 만든 음식 사진을 단톡방에 올리는 걸 보면 꽤 좋은 솜씨와 부지런함이 엿보입니다. 먹여 살릴 사람들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요리를 즐기는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엌일이 더 이상 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요즘 세상에 그 집에 함께 사는 피부양자 두 사람(오빠와 남편)도 라면 이상 뭔가 만들 수 있어야 좀 더 안전하고 평탄한 미래를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사랑만 담뿍 담긴 맛없는 집밥은 참아내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2021.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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