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사람의 진심이 과연 말에 깃들 수 있을까? 본문
진심을 담은 대화
말에 진심을 담을 수는 있지만 그 진심을 증명하는 것은 행동입니다.
잘못을 저질러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연예인, 정치가, 기업인, 교수 등 많은 공인들이 기자회견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또는 검찰청 포토존에 서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숱하게 보았지만 그들이 그 사과의 진정성을 증명할 만한 행동을 나중에라도 보여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사과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고 오히려 피해자를 조롱하는 가해자들도 넘쳐나는 세상이니 사과라도 한 게 어디냐 싶긴 합니다.
말이 충분히 담지 못하는 진심을 분명히 하기 위해 행동을 먼저 보이거나 그렇게 강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들어 달라고, 결백을 믿어 달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끝내 외면하는 경우도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공개적인 할복을 통해 명예를 지키려 하고 야쿠자들은 진심이야 어떻든 새끼손가락을 잘라 용서를 구하거나 결심을 증명하려 하는 거죠. 기정사실로 만드는 행동이죠. 애인에게 바치는 꽃다발, 청혼할 때 무릎 꿇고 바치는 반지, 무슨 기념일 때마다 연인들의 창의력을 요구하는 각종 세리머니도 사랑을 말 대신 행동으로 증명하라는 무언의 압박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담뿍 담긴 진심이 느껴지는 말도 수없이 들어봤습니다. 하지만 그 진심은 ‘네가 싫다’, ‘죽여버리고 싶다’, ‘제발 이 세상에서 꺼져 다오’ 같은 악의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따뜻한 진심이 느껴진 누군가의 말’을 기억해 보려고 거의 반나절을 생각해 보았지만 부모님이 해준 말씀들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난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살아온 걸까요? 명절 때나 되어야 한 두 번 연락하는 사람이 새해를 맞아 보내온 덕담도 따뜻한 진심을 담은 대화라고 봐줘야 할까요?
용건을 전하고 필요한 것을 얻어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살지만 어쩌면 진심을 전할 목적으로 대화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건 아닐까요? 아니면 역시 말보다 행동이 더욱 중요하다는, 진심이란, 말 따위에 깃들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요?
액면가의 동그라미 숫자가 사람의 진정성을 대변하는 사회에서 사실 사람들의 진심은 말이나 행동보다 돈으로 더욱 분명히 표현되는 게 아닐까요? 따뜻한 진심은 금방 식어버릴 지도 모를 몇 마디가 아니라 주로 두툼한 헌금봉투에, 빵빵한 상여금 액수에, 부주와 조의금에, 세뱃돈 봉투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202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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