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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트랜스젠더의 일생

beautician 2021. 5. 29. 12:28

벤쫑들이 사는 법

 

 

인도네시아어로 ‘벤쫑(bencong)’이란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적 취향 또는 여성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반찌(banci)라는 단어는 원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적 인간을 뜻하지만 실생활에선 벤쫑과 거의 비슷한 의미로 통한다. 성적취향이 남성을 향한 남자라 해서 모두 게이가 아니다. 거기에도 깜짝 놀랄 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손목과 허리를 야릇하게 꺾으며 나긋나긋한 동작을 섞어 말하는 남성 미용사들은 벤쫑들 중에서도 뻬웡(Pewong)으로 분류되는데 남성 동성애자 중 여성 역할을 하는 이들로 아마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부류다.

 

동성애에 대한 반감이 개신교에 비해 덜할 리 없는 이슬람 사회에서 벤쫑으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 그들은 지옥같은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며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과 편견, 때로는 폭력에 노출되곤 한다. 내가 미용기기 수입판매를 하면서 미용실에서 만나본 어란 벤쫑들은 가급적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복장이나 머리모양, 화장 등 여러 면에서 숨길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 40쯤 되면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게 되면서 복장과 머리모양이 더욱 여성스러워진다.

 

그들의 필생의 꿈은 성전환수술을 받는 것이다. 그 비용을 모으는 것이 미용사의 평균 수입으로는 어림도 없고 조금 잘 나가는 미용사가 15~20년쯤 알뜰히 모아야 될동 말동 하다. 그래서 여자가 되는 건 평생이 걸린다. 그들은 대개 40대 후반쯤 되어야 비로서 태국에 가서 수술을 받고 트랜스젠더가 된다. 

 

그래서 오래 알고 지내던 미용사가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서 풀메이크업을 한 여성이 된 모습을 보면 가끔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그 순간까지 평생 겪어야 했던 혐오과 천대, 그 모든 어려움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완쩌는 2018년 병을 얻어 갑자기 세상을 떠날 당시 완전한 여성이 되어 있었다.

 

2009년
2018년

  

내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벤쫑들은 내가 어렵던 시절 서슴없이 내 고객이 되어 주었고 충실하고도 기분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요즘도 미용실 앞을 지나다가 깔끔한 옷차림에 어딘가 벤쫑 분위기를 풍기는 어린 미용사들을 보면 한편으론 정겹고 안쓰러워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

 

 

2021. 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