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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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의 의외성
유머러스한 사람,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란 웃기는 사람일까?
유머란 익살스러우면서도 품위 있는 말이나 행동이란다. 그런데 한국어 번역은 ‘해학’이라 하니 뭔가 은유적이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일침이 있어야만 할 것도 같다. 해학의 기본 형성원리를 ‘의외성’이란다. 이런 개념들을 포괄하는 유머, 해학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의외의 품위 있는 말로 정곡을 찌르는 은유적 일침의 달인……?
1998년말~1999년 초에 만났던 딴지일보가 그런 것이었다.
동남아 외환위기로 세상이 무너지고 있던 시절, 웃기고 자빠라진 세상에 똥침을 날린다는 슬로건, 자기 경쟁상대는 오직 선데이서울 뿐이라던 자신만만한 B급 옐로우 저널리즘 감성, 지금은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엔 온라인의 모든 자유를 만끽하려 했던 레프트카피 정신 등으로 대변되는 딴지일보의 어떤 기사들을 몇 번을 읽어도 매번 깔깔 웃어댈 만큼 재미있었다. 세상을 그렇게 재미있게 까는 매체를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얼굴깡패 김어준이 자기 얼굴을 드러내기 전, 딴지일보가 분명한 정치색을 발산하기 전, 내가 지금보다 훨씬 잘 웃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2011년 ‘나는 꼼수다’를 만났을 때에도 그랬다. 이번에도 하필이면 김어준이었다. 뒤늦게 한국 정치판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나꼼수는 정치평론이 저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김어준이 정치감수성 뛰어난 정리의 달인이란 걸 그제서야 알았고 나꼼수 4인방과 함께 문재인의 새 시대를 기원했다. BBK 관련 명예훼손 혐의로 정봉주가 감옥에 끌려가고 박근혜가 대선에서 이긴 후 김어준, 주진우가 프랑스로 도망가기까지.
김어준은 2014년 ‘김어준의 KFC’로 돌아와 ‘김어준의 파파이스’로 이름을 바꾸지만 파괴력이 좀 떨어졌다 싶을 즈음 2016년 시작한 ‘김어준의 뉴스공장’, 2017년 출범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다시금 저력을 끌어올렸다. 물론 요즘 김어준은 1999년 처음 알게 될 당시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성장했다고 하는 게 맞을까? 스스로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예사롭지 않은 이력과 외모로 한국정치평론에 큰 획을 긋는 사람이 되었다. 오랜 세월 그가 내 생활에 활력과 즐거움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땡큐, 김어준. 당시 정봉주가 ROTC를 하다가 데모를 해서 잡혀가 결국 임관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외대 영어과는 당시 A반부터 D반까지 4개 클라스를 가진 대규모 과였고 용인분교에도 영어과가 있었으므로 학년별 60명 규모의 외대 ROTC에서도 7~8명 영어과 출신이었다. 영어과 ROTC들은 임관하고 나면 대부분 특전사로 차출되어 갔다. 미군과 합동훈련이 많아 어학능력이 중시되었기 때문이다. 불어과, 독일어과, 스페인어과, 심지어 러시아어과도 덩달아 공수부대에 다수 차출되어서 당시 특전사 초급장교들 중 외대 출신들 비율이 꽤 높았다. 그런데 내가 입단하던 24기는 영어과가 달랑 4명이 선발되었다. 평소의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당시엔 군단마다 특공부대가 신설되어 낙하산을 타는 인력이 부쩍 늘어나 있었다. 영어과 4명 중 2명이 특전사, 1명이 특공부대, 난 특전사로 갈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제3땅굴 관리부대의 의전안내장교로 차출되었다.
내가 4학년 재학 중 특전사 군복을 입은 22기 불어과 선배가 학군단을 찾아왔는데 영어 제일 잘하는 놈을 찾아서 이건 특전사 특채라고 생각한 동기들이 모두 날 지목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1987년 30사단에 가서 불어과 최영무 중위(훗날 (주)코오롱 부사장 역임)를 잡아왔던 것처럼 제3땅굴을 관리하는 멸공관 후임을 차출하려던 것이었다. 당시 이미 멸공관에서 근무하고 있던 그 선배가 모교 학군단에 찾아올 때 폼 잡으려고 예전의 특전사 유니폼을 입고 왔던 것 뿐이다. 그래서 우리 영어과 동기들 중 유일하게 낙하산을 타지 않게 된 난 가슴을 쓸어내렸다.
군 전역하고 시간이 흘러 인도네시아로 흘러온 후 문득 의구심이 생겼다. 왜 그때 우리 영어과 ROTC를 네 명만 뽑았던 걸까? 그 이후 영어과 비중은 다시 7~8명 수준으로 돌아갔다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나꼼수를 듣고 깨달았다. 정봉주가 도서관 옥상에서 반정부 삐라를 뿌리고 체포당한 바로 그 ROTC 22기 영어과 선배였던 것이다. 당시 23기는 이미 선발된 상태였는데 정봉주를 보니 외대 영어과들은 좀 빨갱이들이 많을 우려가 있어 그해 24기 영어과 선발을 반으로 줄여버렸던 것이다. 방송을 들은 것이 2011년인가, 2012년의 일이었고 내가 ROTC에 입단한 것은 1984년의 일이니 27~28년 전 의외의 진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정봉주 전의원은 당시 1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후 2017년 12월 29일 마침내 사면복권되었다. 그가 폭로한 BBK 사건이 여지없는 사실로 밝혀지고 관련자들이 모두 감옥에 간 상황에서 그의 복권은 당연한 절차였다. 당치 BBK 조작에 앞장섰던 검사 홍준표가 그해 대선에 나섰던 건 그런 배경을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기는 코미디였다
유머러스한 친구들이 있나고?
많이 있다. 김어준, 딴지일보, 정봉주, 다스뵈이다, 이명박, 박근혜, 최순실, 홍준표까지.
문제는 그들이 날 모른다는 것뿐이다.
2021.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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