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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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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문어와 햄버거

beautician 2021. 5. 17. 11:59

엉뚱함은 사회적 물의일까?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선거 슬로건을 휘날리며 대선에 승리하고 2013년 2월부터 대통령에 취임한 박근혜는 유독 창조를 좋아한 분이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창조'라는 말을 붙이곤 했는데 '창조경제'라는 말은 정말 와닿지 않았다. 경제가 도대체 무슨 수로 창조적일 수 있을까? 불과 몇 년 후인 2016년 그녀는 가장 남사스랍게 창조적인 발자취를 남기고 탄핵당해 권좌에서 끌려 내려오고 말았는데 2014년 하반기에 출범한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창조경제'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코위 대통령이 박근혜와 아삼육이었다니.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창조경제위원회는 경제를 다루는 곳이 아니라 영화출판연극드라마음악  창조적 본질을 가진 16 문화부문의 정책결정 기관이었다. 그곳이 2019년 말  연임임기를 시작한 조코위 대통령의 2기 내각에서 광광부에 통합되어  관광창조경제부로 거듭났고 지금은 작년 12 22일 입각한 전 야당 부통령 후보 산디아가 우노가 해당 장관직을 맡고 있다그래서 지난 4 17 영화음악인들의 120여명이 코로나 백신접종을 받았는데 그게 앞으로 3,400 명의 '창조경제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걸음이라고 한다.  '창조경제' 의미가 분명히 와닿았다.

뭔가 시선을 끌 만한 것을 내밀었는데 그 설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크게 실망해 안본 눈 산다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게 수순이고 그걸 잘 포장해 사람들을 수긍하게 하면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때로는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정부가 2013년과 2014년 내놓았던 저 '창조경제'란 단어처럼.

내가 본 것들 중 가장 엉뚱한 건 이거였다.

 


반둥의 한 주택 위에 검은 문어가 기어오르고 있는 모습. 이 장면은 멀리서도 선명히 보였다.

 

https://blog.daum.net/dons_indonesia/2341

 

너무나 실감나는 조형물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도시 한 가운데 건물 옥상에 저렇게 올라가 있으니 사람들 사이에 다양한 소문들이 퍼졌는데 나중엔 저 집에서 사탄 숭배자들이 예배를 올린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고 나중엔 그런 내용을 담은 영화도 만들어졌다. 왜 저런 고퀄의 예술작품을 일반 주택 위에 올려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대중의 호기심을 메가톤급으로 폭발시켰다는 점에선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엉뚱하다는 건 뭘까?
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어떤 것. 말이나 행동이나 물건.
또는 어떤 사람의 외관상, 경력상, 액면가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나 아이디어.
마치 저 옥상 위 검은 문어처럼 말이다.

일각에서는 그 엉뚱함을 창의력의 발현이라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방향이 문제다. 정치권에서 여야가 하는 얘기들을 보면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양쪽이 하는 말이 어쩌면 저렇게 창의적으로 서로 다른 측면만 바라보며 딴 소리를 하는지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최근의 압권은 수에즈운하에서 세기의 길막 사건이 벌어진 직후 나온 버거킹 광고가 아닌가 싶다.

 


에버기븐호가 수에즈 운하를 일주일간 막은 이 사건을 발빠르게 패러디한 버커킹이, 그러나 욕을 먹은 이유는 국제적으로 여러 관련 기업들에게 큰 손실을 일으킨 이 사건을 한 회사가 자기 매출증대를 위한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애교 넘치는 창의적 시도였지만 세월호 유민이 아빠 단식 장소 앞에서 폭식투쟁을 하던 극우 망나니들의 패륜적 엉뚱함과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너의 불행은 내 돈벌이.

너의 슬픔은 내 웃음거리.

난 어쩌면 너무 엄숙하게 살았는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그리 늘 톡톡튀는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창의적이고 엉뚱하고 재미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뭔가 잘못된 소재나 예를 들고 와 크게 물의를 끼치진 않은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창의력의 질도 중요하고 양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방향이 아닐까 싶다.
내가 혹시라도 창조경제 16개 부문 중 어딘가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창의성은 저 반둥 건물 옥상 위의 검은 문어 같은 것일까? 아니면 수에즈 운하를 가로막은 버거킹 같은 것일까?


2021.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