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바람직한 업무공간 본문
워크스테이션
첫 직장인 대기업에서는 하필이면 부서장 바로 앞자리에 꽤 오래 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풍수지리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그 자리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당시까지만 해도 아직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던 문화 덕택이었습니다.
자카르타에서 내 사업을 하기 시작했을 땐 대기업 다니던 시절을 너무 따라했던 것 같습니다. 직원들 사무실에서 회의실과 쌤플실을 거쳐야 나오는 내 사무실은 아늑하긴 했지만 직원들과 필연적인 단절을 가져왔습니다. 직원들이 있는 홀에도 미팅룸이 있었지만 내가 거기서 미팅을 하면 분위기가 별로 안좋았어요. 대기업의 상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직원들의 업무상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업무를 가중시키는 사람에 불과했던 모양입니다.
한 차례 파산 후 많은 시간이 흘러 다시 사무실을 갖게 되었을 때 그때도 여전히 ‘내 사무실’에 대한 로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조직에서 대표가 자기 사무실을 고집하면 홀을 관리할 오른팔이 없는 한 필연적으로 분리될 직원들이 딴 짓을 하게 될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방문을 늘 열어 놓았지만 역시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미용가위 사업을 하는 동안 직원들은 끝없이 사고를 치고서 눈썹을 휘날리며 도주했고 결국 그게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 사업을 접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2018년 대표 타이틀을 버리고 한 회사의 관리자가 되었을 때 별도의 방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사양했습니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방안에 들어가 폼 잡는 동안 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뻔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관리자와 직원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부서장 앞에 앉아 있던 시절, 그 사이에 있던 보이지 않는 벽은 절대 허물어지지 않는 성격의 방화벽 같은 것이었다는 걸요.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공간은 그런 사무실 공간이 아니라 코로나 상황이 벌어진 후 내가 만든 이른바 ‘워크스테이션’이라 할 만한 식탁이었습니다.
2019년 12월에 다른 회사로 갈아타겠다며 2년간 다닌 싱가포르 회사를 그만 둔 아들이 두 달간 한국에서 열심히 놀고 2020년 2월 싱가포르로 돌아가 구직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쉬워 보이던 구직이 코로나 창궐을 맞으며 수 십 군데에 원서를 넣고도 결국 여의치 않았습니다. 무비자 기간이 종료되어 출국해야 할 시점에, 이미 무비자 제도를 폐지하고 누구나 다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오라 하던 인도네시아도 급기야 외국인 입국금지를 발표했는데 다행히 주싱가포르 인니 대사관과 여행사 도움을 얻어 입국금지 발효 여섯 시간 전에 아들이 간신히 인도네시아에 입국 세이프했습니다. 결국 아들에게 내 방과 책상을 뺏기고 식탁으로 물러났는데 입국한지 2주 만에 싱가포르 회사와 화상면접에 채용된 아들이 실제로 싱가포르에 돌아간 것은 입국허가가 몇 번씩이나 퇴짜를 맞은 후인 11월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난 8개월 간 식탁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일하는 느낌이 의외로 괜찮았습니다. 그곳은 코로나 시대를 위해 특화된 공간이었습니다. 마침 노동연구원 설문조사용역과 단기간 500장 번역 용역,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원서 번역 등을 진행하면서 보조모니터가 많은 수록 여러가지 일들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각 프로젝트들을 보조 모니터에 띄워 놓고 팀들을 관리하면서 랩톱 화면으로는 문서작업을 하면서, 최대 3~4개 프로젝트 팀을 동시에 관리하는 게 가능할 거란 생각도 헸습니다.
그 상황은 내가 내 방에 들어앉아 직원들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사실은 직원들도 홀에 모여 있는 게 아니라 다들 각각의 방에 들어앉은 셈이어서 재래 사무실 공간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리고 모니터에는 팀원 개개인의 외모나 말투나 학력이나 집안배경, 지인관계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직 그들의 업무결과와 성실성만 보였습니다. 본의 아니게 매우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근무환경이 된 것입니다.
물론 생각해 보면 도저히 비대면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을 겁니다. 술라웨시의 니켈 채굴도 절대 비대면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어쨌든 개인에 따라 장단점과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대면 사무실에서 평생 느꼈던 부조리들이 코로나가 가져온 비대면의 세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2018년 마지막으로 사무실 생활을 할 때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매일 아침 자기 방으로 불러들여 자신이 월급을 주고 샀다고 생각하는 내 시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듯 온갖 쌍욕과 저열함으로 버무린 자기 개똥철학을 한 두 시간씩 설파하던 대표의 폭주였는데 그런 것들이 사라진 겁니다.
아들이 싱가포르로 돌아간 후 다시 내 방의 책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모니터를 두 개쯤 더 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더 큰 책상을 사야 할까? 아니면 벽걸이 모니터를 사야 할까?
그런데 술라웨시에 가게 되면 어떡하지?
2021. 4. 7.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 일은 너무 많은데 (0) | 2021.05.03 |
---|---|
술먹어서 개가 됐을까? 아님 원래? (0) | 2021.05.02 |
속박과 한계는 어떻게 다른가? (0) | 2021.04.30 |
대체할 수 없는 내가 되기 위해 (0) | 2021.04.29 |
실패담을 얘기하는 사람들 (0) | 2021.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