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대체할 수 없는 내가 되기 위해 본문
제너럴리스트의 세계
어느날 내가 얼마든지 대체가능한 인간임을 깨닫던 날이 있었습니다.
학창시절과 대기업시절을 돌이켜 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배우고 거기 맞춰 학력을 쌓고 토익시험을 보고 그럴 듯한 직장에 들어가 일하면서 좀 더 유창한 영어회화와 민법과 세무실무를 배우며 자기계발을 하여 어디든 끼워 맞출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범용의 인간이 되면 취직이나 전직도 쉬워질 것이고 구세대의 인간들이 요직에서 떨려 나갈 때가 되면 그 자리를 쉽게 메울 수 있는 나 같은 제너럴리스트들의 전성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98년의 동남아 외환위기와 2000년대 초반의 파산, 2000년대 중반의 국제적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그 시대가 끝나간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쉽게 대체할 뿐 아니나 나 자신도 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그것을 더욱 실감했습니다. 나 역시 대체되어야 하는 구세대의 인간이 되어가는 중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에겐 학교에서 우등생이 될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이과에 가서 남들이 대체할 수 없는 개인만의 기술과 따라올 수 없는 능력을 키우라고 어릴 때부터 요구했습니다. 아빠가 왜 저러냐 싶었겠지만 그래서 결국 큰 애는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었고 작은 애는 컴퓨터 게임과 애니메이션 그래픽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일본에 레인웨어를 팔고 인도네시아 전역에 미용가위를 팔러 다녔던 것은 나중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무리 레인웨어와 미용가위에 대한 깊은 상식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것만으로 레인웨어와 미용가위를 만들어 내기엔 턱도 없었고 그걸 팔러 다니는 건 다소 능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슬프게도 제너럴리스트의 한계는 거기까지입니다..
그래서 내가 인도네시아 역사와 무속을 파고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역사와 무속을 공부하는 한국인들은 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인도네시아 역사를 공부하는 한국인들은 한 줌도 안되고 인도네시아 무속은 나 정도만 공부해도 쉽게 화제가 되고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되니까요. 인도네시아 바틱이나 박물관들을 다니며 얼마간의 시간을 투자한 후 전문가 소리를 듣는 교민들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의 흔적들을 기록한 책을 번역하는 한 아마추어 팀이 그 엉성한 번역본 초고를 ‘칼럼’이란 제목으로 현지 한인 매체에 싣는 게 가능한 곳이니까요. 교민사회는 스페셜리스트의 탈을 뒤집어쓰기 어렵지 않은 곳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탈의 안쪽도 진짜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오늘도 정진합니다.
역사와 무속으로, 영화로, 출판으로.
누가 뭐래도.
2021.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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