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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속박과 한계는 어떻게 다른가?

beautician 2021. 4. 30. 12:08

한계란 지켜져야 하는가?

 

 

요즘 하는 일이 그래서인지 ‘한계’라 하면 곧바로 ‘마감’이 떠오릅니다.

내가 일정한 시간 안에 몇 개의 마감을 쳐낼 수 있는가? 그게 금액으로 환산하면 얼마? 그렇다면 한 달을 통틀어 최대한 쳐낼 수 있는 마감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인가?

 

13억 루피아짜리, 즉 소득세 떼고 한화로 계산하면 거의 1억원에 딱 떨어지는 콘텐츠 진흥원 8개월짜리 조사보고서 용역 입찰을 준비하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8개월간 4개국, 7개 문화부문을 아우르는 40개의 일반보고서와 4개의 최종보고서. 결국 한 달에 4~5건의 마감이 추가되는 셈이죠. 지금도 5일과 20일에 집중된 마감들로 거의 몸부림을 치는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물론 팀을 구축해 수행해야 하는 일이지만 ‘팀을 짠다’라는 말에는 ‘그중 한 명이 기꺼이 독박을 쓴다’는 의미가 포함됩니다. 그 한 명이 내가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예전엔 내가 무슨 일이든, 어느 정도의 분량이든 반드시 시간 내에 해치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시간적, 물리적 제약 속에서 내가 제아무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도 주어진 여건 내에서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것을 절절히 깨닫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한계는 누가 긋는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그어지곤 합니다. 저 콘진원 용역을 하게 되면 또 다시 그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이 올 것 같습니다.

 

그러니 세바시에서 말하는 한계란 저런 것이 아니라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즉 ‘속박’이죠. 좀 더 세심한 용어정리가 아쉽습니다. 우린 모두 법률, 규정, 전통, 관습, 예의, 이해 등으로 구축된 입체적인 속박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걸 개인이 깨고 나가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동료들과 떼를 지어 깨고 나가면 혁명이라 칭송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속박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또 다른 형태의 속박이 그 바깥 세상에서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죠. 유럽이 14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고서도 종교개혁은 16세기에나 이루어진 것처럼요. 하나의 속박을 깨고 나가면 또 다른 속박에 부딪히는 역사가 계속 반복됩니다. 사회의 발전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여담이지만 종교개혁 얘기가 나와 하는 말인데 세계를 중세 암흑시대로 이끌었던 기독교는 왜 천 년의 과오에 대해 인류에게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는 것일까요?

 

아무튼 속박을 깨는 것은 찬성하고 지지합니다.

하지만 물리법칙에 의해 만들어진 한계는 지켜져야 합니다.

 

 

2021.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