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우리 부장님은 예언자

beautician 2021. 4. 11. 21:23

몰랐던 재능

 

그 LH 직원들은 직장을 다니면서 투기에 능한 자신들의 재능을 발견했고, 그 재능을 발휘했을 뿐 아니라 전파까지 했으니 뛰어난 마케팅 능력까지 발견한 것이라 보입니다. 물론 그 마케팅 활동의 속마음은 함께 돈 벌자는 것보다는 공범자로 만들어 입을 막겠다는 의도도 분명 있었겠죠.

 

짧은 대기업 생활을 하면서도 사람들이 대학전공과는 무관하게 조직 안에서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는 요즘 와서 뒷북 치며 새삼 깨닫게 됩니다. 당시 어떤 이들은 보는 사람 손발이 다 오그라질 정도로 상사들에게 아첨을 떨며 타잔처럼 줄타기의 재능을 보였고 또 어떤 이들은 세월호 이준석 선장이 무색하게 모든 잘못을 부하들에게 돌리며 홀로 살아남는 생존력을 자랑했습니다. 자기가 정확한 상황을 알았다면 절대 서명하지 않았을 거라고 악을 쓰면서 클레임 터진 수출품의서에 자기 서명을 팁엑스 화이트로 지우는 사업부장들이, 당시 유행에 따라 칸막이 없이 한 층을 통으로 쓰던 우리 사무실에서 좌우로 심심치 않게 보였습니다.

 

대리 시절 매년 베스트드레서로 뽑히며 여직원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끌던 원유팀 친구가 과장을 단지 얼마 되지 않아 정유사 에이전트들에게 받은 뒷돈으로 주유소를 다섯 개 소유하고 있던 것이 들통났는데 그걸 회사가 쉬쉬하며 조용히 처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는 10년 전후의 회사생활을 통해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도 대기업의 약점을 쥐고 딜을 하는 배짱을 키웠던 겁니다. 크게 될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재능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직업은 대학 전공이나 회사에서 배당되어 받은 담당 업무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나 역시 대기업 입사 후 7년간 의류생산과 일본수출을 담당했고 1년 반 동안 인도네시아 공장의 전반적 관리를 맡았지만 그 모든 게 내 적성과는 하나도 맞지 않고 오히려 뭔가에 맞서 싸우는 활극 히어로가 내 적성이란 걸 깨달았을 뿐입니다. 군시절에도 사실 그런 비슷한 걸 느꼈습니다.

 

모든 우여곡절을 겪으며 먼 길을 돌고 돌아 50대에 들어서서야 본격적인 작가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내 첫 반응은 ‘이제 와서 어쩌라고?’ 하며 마뜩지 않았지만 결국 그 세계에서 나름 평화를 찾게 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열망해 왔던 것이기도 하고, 말하자면 삼각형 인간이 마침내 삼각형 세상에 들어섰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화그룹에서 레인웨어를 팔 때에도, 릴리와 함께 봉제 원부자재를 팔고 농산물 컨테이너를 취급하던 때에도, 수마트라에서 발리까지 미용가위를 팔러 다닐 때에도, 베트남에서 하노이와 호치민을 오가며 다른 활로를 찾아보고 있을 때에도, 그리고 호구처럼 자카르타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등 떠밀리고 귀싸대기를 맞던 시절에도, 내 직업은 늘 글 쓰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는 밤마다 글 쓰는 사람에서 요즘 종일 글 쓰는 사람으로 조금 더 진화한 겁니다.

 

그래서 대기업 시절 우리 부장님은 아마도 그걸 간파하시고 내가 써 올리는 사업품의서, 출장보고서, 미팅보고서를 공중에 흩뿌리며 그렇게 소리지르셨던 모양입니다.

 

“이 새끼는 보고서를 쓰라니깐 맨날 소설을 써 와!”

 

 

 

 

2021.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