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사람들이 이직하고 이혼하는 이유

beautician 2021. 4. 9. 13:15

스트레스의 근원

 

 

나는 정삼각형  

 

오늘의 주제는 하는 일의 의미와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방법인 것 같은데 이미 여러 번 직간접적으로 다루어 본 주제인 것 같아 조금 다른 각도로 접근해 보려 합니다. 아직 남은 주제들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앞으로 풀어 놓을 이야기들을 대략 미리 배분해 놓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뭐, 큰 상관은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만은 최근 며칠 쓴 글들 평균치의 반쯤 분량에서 끊겠다고도 다짐해 봅니다. 일하는 것만큼 땡땡이가 쾌감 쩌는 것처럼 쓰는 것 못지않게 끊는 것도 중요한 데 말입니다.

 

스트레스를 다스리려면 그 원인을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일을 두고 말하자면 일이 많아서, 또는 일이 없거나 적어서, 또는 복잡해서, 일이 정기적이지 못해서, 너무 겹쳐 들어와 과중해서, 내가 다룰 수 없는 일을 넘겨받아서, 그 일의 결과가 나나 동료들을 분명히 해칠 게 분명해서, 그 일을 준 놈이 미워서 등, 스트레스의 원인은 다양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번 달 하순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마감의 향연을 봐도 각각의 원고가 너무 길어서 또는 짧게 써야만 해서, 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원고료가 너무 싸서, 관련 자료를 결국 찾을 수 없어서, 조폭처럼 마감 여러 개가 한꺼번에 닥쳐서 등…… 이 대목에서 오늘도 글이 한없이 길어질 조짐이 보여 곧장 핵심으로 건너갑니다.

 

저 모든 이유들을 종합해 대충 버무려 보면 결국 스트레스란 ‘삼각형인 내가 맞춰 가기 어려울 듯한 사각형, 오각형 상황과 마주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념을 잡았으니 벌써 반은 온 겁니다.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것처럼 내 성격과 취향과 배경에 맞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금상첨화지만 사실 이 세상에 그런 일은 잘 벌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삼각형인 내가 굳은 결심을 하고 모든 어려움을 각오하고서 동그라미나 정육면체에 뛰어들기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이미 의지와 신념의 차원으로 넘어가지만 감언이설에 속아 속절없이 사각형과 마주하게 되는 것은 ‘도를 아십니까?’에 홀라당 넘어가는 것만큼 어이없는 일입니다.

 

요즘 대기업들이 아직 그러는지 모르지만 간혹 인니 교민 포털인 인도웹에 올라오는 한국기업들 구인광고 중엔 이런 카피가 걸리기도 합니다.

 

세계 시장에 우뚝 설 우리 기업과 비젼을 함께 할 인재를 모십니다.

 

그럼 구직자들은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회사의 연혁과 배경을 공부한 후 이력서를 들고 와 자신이야말로 그 회사의 장래 비젼에 가장 공감하고 그 꿈을 공유할 유능한 인재라고 강조하며 애써 자신을 어필하죠. 하지만 사실 이 회사는 기업 비젼을 공유할 사람을 찾는 게 아닙니다. 물건을 잘 팔 마케팅 직원, 생산관리를 꼼꼼히 할 작업반장, 누가 봐도 완벽한 재무제표를 세무서 직원 이마에 떡 붙여 줄 회계담당자를 찾는 거지만 일단은 저런 카피를 붙여 놓은 것뿐입니다. 그래야 좀 있어 보이니까요. 그렇게 해서 채용된 삼각형 A씨는 B기업의 사각형 환경에 안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시작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어렵게 들어간 기업에서 의외로 조기에 퇴사하는 이유는 사실 기업이 나와 비젼을 공유할 마음은 애당초 없고 알고 보니 자신과 각 자체가 안맞는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떤 이들은 기어이 회사의 비젼을 억지로 공유하고 자기 뿔과 모서리를 빠그러뜨려 조직의 프레임에 맞춰 살아남기도 하는데 그를 일각에서는 ‘직장인의 모범’이라고도 하고 다른 일각에서는 자신의 폐로 숨쉬나 눈과 혀와 두뇌는 회사에서 지급한 것으로 이식한 ‘괴물’로 보기도 합니다. 꼭 회사뿐 아니라 모든 조직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스트레스는……, 이제 막 갈래를 쳐 길어지려는 사설을 끊으려면 여기서 결론을 내야 합니다.

 

스트레스는 ‘내가 지금 괴물이 되려 한다’는 신호인 셈입니다.

순수한 삼각형으로 남을래? 아님 사각형으로 맞추기 위해 모서리 한 군데를 부러뜨릴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거죠. 

그런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것은 내가 괴물이 되진 않을 거란 반증이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밤새 글도 쓰는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역시 최선의 방법은 스트레스의 근원을 없애는 것, 즉 나한테 맞는 삼각형 환경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이직하고 이혼하여 재혼하고 이사하고 이민 가는 것이겠죠.

 

 

 

나는 정삼각……  

 

어, 여기서 끊으면 분량조절은 대충 절반쯤 성공한 것 같…. 실패입니다ㅠㅠ

 

 

 

2021. 3. 23.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심은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0) 2021.04.13
우리 부장님은 예언자  (0) 2021.04.11
고상한 척 위선 떨지 말자  (0) 2021.04.08
시한부 선택  (0) 2021.04.06
손절하기 전 고려사항  (0) 2021.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