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손절하기 전 고려사항

beautician 2021. 4. 6. 11:34

지나온 시간들이 의미 있기 위해

 

 

2019년 라마단 금식월이 끝나고 이슬람력 ‘샤왈’ 월에 들어서면서 이둘피트리 축제와 함께 시작되는 연휴 첫 날, 난 술라웨시 떵가라의 주도 끈다리(Kendari)를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습니다. 유치장에 들어간 릴리를 도우러 인디아계 영국인 국제변호사와 함께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물론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고작 변호사 통역 정도였지만 그나마 릴리는 꼭 내가 와 주길 바랐습니다

 

내가 일을 봐주고 있던 회사는 그 여행의 걸림돌이었습니다. 연휴기간 동안의 일정이니 문제가 없어야 했지만 회사의 대표는 점점 더 직원들에게 야박하게 굴고 있었습니다. 대개의 사무실들은 일주일, 공장들은 2~3주를 휴무하며 고향에 다녀오는 것이 보통인 이둘피트리는 사업주 측에서는 짜증나는 시기입니다. 라마단 금식월 내내 금식하며 때 맞춰 기도하러 가는 직원들을 막을 수 없으니 생산성 하락을 감수해야 하고 이둘피트리의 긴 휴무에도 불구하고 월급 전액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 일년에 한 번으로 정해진 100% 상여금도 이때 의무적으로 줘야 합니다. 그러니 가장 가성비 떨어지는 시기에 돈은 가장 많이 들게 되는 것이죠.

 

 

서기 2021년/이슬람력 1441년 이둘피트리  

 

하지만 그건 인도네시아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인데 회사 대표는 자신만은 예외여야 하는 부류의 인간이었습니다. 최소한 자기가 손해보는 만큼 직원들도 상응하는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대기업들도 빨간 날만 놀아요. 그러니 우리도 정규 공휴일만 쉬고 그렇지 않은 날은 모두 출근시키세요. 빠지는 놈들은 무단결근으로 처리하고 경고장 날리라고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다음날 아침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싱가포르의 지인과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나 일주일간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여행을 간다는 거였어요. 자신만은 모든 규정에서 예외여야만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문제는 그가 자카르타의 관문인 수카르노하타 공항 제3터미널에서 KL행 비행기를 탈 그 시각에 나도 끈다리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날 난 사무실에 직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자, 우린 공식적으로 빨간 날만 논다. 하지만 어차피 관공서나 거래선들도 다 노는 기간이니 출근해도 할 일이 없어. 그러니 내가 전화나 문자 보내면 즉시 회신하는 걸 약속하고 너희들도 출근하지 마. 하지만 너희가 집에 있든 어디로 여행을 가든 누가 직접 전화하면 공식적으로 너희들은 사무실에 출근해 있는 거야. 알았어?”

 

그렇게 우리들의 휴무도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난 끈다리에서 경찰서를 다니고 소송 상대방을 만나면서 복잡한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특히 릴리를 고발한 측은 톤당 로열티를 릴리에게 주는 조건으로 릴리의 광산에 장비를 끌고 들어와 니켈채굴을 하던 업자였는데 오히려 릴리가 계약조건을 지키지 않아 큰 손해를 봤다며 경찰서 2인자를 움직여 릴리를 구속해 버린 상태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그 경찰서 2인자는 고발한 측이 자기 형제와 같은 사람이라며 릴리가 300백만 불을 지불하거나 회사 대지분을 자기 형제에게 넘겨야만 풀어주겠다는 조건을 던졌습니다. 중립을 지켜야 할 경찰 고위간부가, 그것도 영국에서 온 국제변호사에게 그런 말을 대놓고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해외에서 여권분실 조심

 

하지만 그것보다 더 믿어지지 않는 일이 끈다리에 도착해 시내 호텔에 체크인한 후 릴리 측 사람들을 만나 상황을 듣는 동안에 벌어졌습니다. KL에 간 회사 대표로부터 전화가 온 겁니다. 내가 자카르타 사무실에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요.

 

“이런 문제도 해결해 달라고 당신 월급 주는 거요. 왜 해결이 안된다는 거요?”

 

이렇게 악을 써대는 그는 KL에 도착해 이민국 데스크에서 입국심사를 하기 전 들른 화장실에 여권을 놓고 나왔는데 급히 다시 돌아가보니 여권이 이미 사라진 후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잃어버린 여권을 ‘자카르타에 있는’ 내가 찾아줄 수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결국 백방으로 연락을 돌려 KL 한국 대사관 담당영사가 공항에 가서 돕도록 조치했지만 여권없이 말레이시아에 입국하도록 해준 게 아니라 임시 여행증명서를 끊어 여권없이 한국에 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게 우리 대사관의 최선이었습니다. 회사 대표는 결국 KL 공항 입국장에서 기다리는 싱가포르 지인을 만나지도 못하고 그날로 비행기표를 사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경계경보 해제, 경계경보 해제. 다들 르바란 휴무 잘 지내도록!”

 

난 직원들에게 그렇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최소한 르바란 연휴기간 중 그가 자카르타에 돌아오지 못할 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렇게 한국에 가서도 매일 전화와 문자로 업무보고를 요구했고 난 자카르타 사무실이 아무 일 없이 고요할 뿐이라고 꼬박꼬박 답했습니다. 아무 일 없이 고요한 건 사실이었으니까요.

 

내가 그런 상황에서도 기어이 끈다리로 날아간 것은 물론 치명적인 오지랍에 릴리 부친과의 맹세, 여자 몸으로 유치장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 릴리에게 줄 육체적, 정신적 압박감에 대한 연민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내가 릴리와 함께 일하며 지냈던 긴 시간을 의미있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때 릴리와 크게 싸워 8개월 정도 서로 얼굴을 보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릴리가 크게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끈다리로 가보니 아프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나와 화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정도 이유를 대지 않으면 내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거죠. 도착하는 순간부터 뭔가 상당히 주술적인 치장과 준비가 되어 있었고 급기야 고령의 릴리 어머니가 대나무에 두 개의 홈을 파고 생달걀을 홈마다 끼운 채 나타나 잎이 잔뜩 달린 나뭇가지나 나도 치고 릴리도 치고 달걀들도 치면서 무슨 주문을 외웠습니다. 술라웨시 방언만 하는 릴리의 어머니는 인도네시아 말을 할 줄 몰라 나와는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았지만 이제 그 달걀을 깨야 하는 순서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릴리는 달걀 하나를 단번에 깼고 나는 두 번쯤 헛손질을 한 후에야 두 번째 달걀을 깼습니다. 그런 상황이 너무 웃겨서 서로 사과도 하기 전에 지난 8개월간 맺혔던 것이 다 풀리고 말았습니다.

 

“아까 미스터 배가 단번에 깨뜨리지 못한 건 나한테 화가 풀리지 않아서 그랬던 거에요. 나 봐요 단번에 깼잖아. 남자가 그렇게 속이 좁아서야……”

 

간신히 풀린 화가 다시 치밀어 오르려 했지만 비행기 값이 아까워서 그냥 그대로 화해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1996년, 내가 인도네시아에 온 다음 해 처음 만난 지금까지 알고 지냈던 릴리와 다시는 서로 안보는 사이게 된다면 그건 릴리와 함께 보냈던 시간과 함께 했던 일들, 그 시기의 모든 희로애락과 노력과 땀방울을 마치 애당초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릴리가 살아나고 다시 중심을 잡는 것이 그에게도 필요한 일이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런 친구가 자카르타에도 또 한 명 있죠. 차차와 마르셀의 엄마 말입니다.

 

끈다리 경찰서

 

그 당시 결국 나와 영국 변호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릴리는 2개월 넘게 유치장에 있다가 검찰에 송치되면서 구속이 풀렸고 나중엔 재판에도 이겼습니다. 잘못이 없어서 이긴 것 같진 않고 재판장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민형사 재판들이 그런 것처럼요.

 

올해도 한달 전쯤 또 다시 비슷한 케이스로 유치장에 잡혀 들어간 릴리가 어제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발한 측과 한 통속인 경찰 측은 구속기간 중에 온갖 서류들을 들이밀며 석방을 조건으로 릴리에게 서명을 강요하는 레퍼토리가 똑같이 반복되었는데 릴리는 이번에도 끝까지 버텨냈습니다. 분쟁이 벌어질 때 상대방을 먼저 인신구속하려 드는 것은 자기 조건을 관철시키기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 고집불통 릴리한텐 그때도 지금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릴리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여러 모로 어렵고 위험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 막되어 먹은 회사대표와의 관계 정도는 얼마든지 희생하더라도 지켜야 할 관계입니다. 그건 릴리가 정의의 편이라서가 아닙니다. 잘못한 게 전혀 없으면 잡혀 들어갈 리도 없습니다. 릴리를 지키는 것이 지나온 내 시간의 의미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1. 3. 20.

 

Ps.

1) 동포사회 문화계의 골치덩이 두 명과 2018년과 2020년 각각 손절한 것은 그들과의 사이에 지켜야 할 중요한 의미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2) 불길하게도 글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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