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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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제18회 재외동포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수상작은 <지독한 인간>입니다.
2016년 8월 5일 자카르타 체류비자를 새로 내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 중 재외동포재단으로부터 받은 이 이메일이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꾼 사건이었지만 당시 내 첫 반응은 ‘이제 와서 어쩌라고……?’ 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받았던 대학시절 문학상 이후 근 4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날로 쪼들리던 내 입지, 너무 가벼워지다 못해 내 몸까지 달고 우주로 날아갈 기세인 내 지갑, 하지만 중심을 잡아줘야만 하는 가장의 입장. 그런 문제들 사이에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었으니 3개월 전에 재외동포재단에 글을 보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을 받는다 해서 내 처지와 주변 상황이 당장 크게 바뀔 리도 없었죠. 상금을 받으면 생활에는 좀 도움이 될까? 겨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땐 별로 기쁘지 않았습니다.
“양다리를 걸쳐 문협의 명예를 해친 사람은 제명해야 합니다!”
2018년 3월쯤 대사관 옆 구영사동 건물 2층 한인회 도서관에서 있었던 문인협회 인도네시아 지부 정기모임에서 지회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모임과 구성원 개인들의 바닥을 봐 버려 마침 손절할 타이밍에서 나 역시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다 뱉어 버렸지만 내 진짜 속마음은 ‘그러시든지~’였습니다.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만들어 놓은 교민사회의 라이벌구도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건 그쪽 사정일 뿐이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꼭 문협에 가입해야 한다는 법도 없고 문협회장과 연구원장이 서로에게 기관총을 쏴대는 아수라장에 굳이 참전할 필요도 없다는 걸 이미 깨닫고 있었습니다. 난 오히려 운신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그간 어디서든 쫓겨날 때마다 한동안 씁쓸한 기분을 곱씹어야 했는데 그날 문협을 나오면서 상쾌함에 쾌재를 불렀습니다.
매달 두 번 찾아오는 원고마감 기일은 늘 목을 조여오지만 사실 그게 꼭 썩 나쁜 기분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열망하던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버는 셈이니 한편으로는 마감일이 기다려지고 고맙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에세이 하나, 기사 번역 하나, 보고서 하나를 써서 퇴고하고 완성해 이메일에 첨부파일로 붙여 전송버튼을 누를 때마다 오늘도 한 건 ‘결착’을 보았다는 느낌이 꽤 괜찮습니다. 어딘가로 보낼 파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글 하나 써서 잘 다듬어 블로그에 올려놓으면 그 보람이 꽤 쏠쏠하죠.
행복도 이런 식으로 진화하는 것 아닐까요?
2021.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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