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하는 일 본문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하는 일

beautician 2021. 4. 2. 12:28

프로젝트의 관건은 디자인과 관리.

 

작년 11월에서 12월 사이 본국 노동연구원에서 나온 인도네시아 진출 한국기업 실태파악을 위한 설문조사와 현지 모 한국기업에서 현지인 직원 120명이 제출한 회사발전을 위한 제안서 번역작업을 동시에 한 적이 있습니다.

 

프로젝트는 크든 작든 그 작동구도와 일의 수행방식을 효과적으로, 실행 가능하도록 디자인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설문조사는 일단 한국인과 한국어 구사하는 현지인 한 명씩 두 명을 묶은 조사팀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각 팀의 케미스트리는 한국인 조장의 능력과 성품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오프라인 조사팀도 하나 운영했어요. 전화와 이메일로 움직이는 조사팀만 운영하는 것이 원안이었지만 문제는 앞서 다른 곳에서 유명한 한인사이트에 두 달간 설문링크를 올려놓고 받은 답변지가 달랑 30개였는데 우린 한달 동안 200~300개 답변지를 받아야 하는 조건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화와 이메일만 사용하는 조사팀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막무가내로 한국기업들을 밀고 들어가 설문지 답변을 받아올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 일을 당시 한국계 자재업체에서 일하던 메이에게 맡켰습니다. 차차와 마르셀의 엄마, 그 대책 없는 미혼모 말입니다. 코로나로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면서 일도, 월급도 대폭 줄어든 메이에게 어차피 돌아다니며 거래선들 만나는 김에 겸사겸사 설문조사지 답변도 받아오는 것은 적잖은 추가수입이 걸린 일이었습니다. 이 일의 관건은 과연 200~300개의 답변지를 기한 내에 받아내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번역작업은 그 회사 직원들이 각각 짧으면 A4 세 장, 길면 7~8장에 걸쳐 인도네시아어로 쓴 제안서를 한국의 회장님이 읽을 수 있도록 단시간 내에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이었습니다. 평균 네 장으로 보면 500장을 10일 안에 번역해야 했습니다.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했으므로 한국어 전공했거나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현지인 번역사들 다섯 명을 자카르타와 족자, 발리에서 구했습니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한 두 시간쯤 걸리는 곳들이죠. 그리고 차로 한 시간쯤 걸린 찌까랑과 카라와치에 한국인 윤문작가들을 두 명 구했습니다. 이제 다섯 명의 현지인들이 작업한 것을 나를 포함한 한국인 세 명이 받아 한글인 듯 아닌 듯한 초벌번역본을 회장님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한국어로 다듬는 일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시간싸움이었죠.

 

이 두 가지 일은 어찌 보면 코로나 상황에서 처음 시도해 보는 형식이기도 했습니다. 설문조사 용역은 첫 경험이었고요. 그 와중에 원래 하던 보고서 원고마감일도 여지없이 찾아왔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확장 모니터에 관련 단톡창들과 관련 채팅창들을 열어놓고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두 프로젝트의 각 단계들을 관리했습니다. 해야 할 과업을 구성원 각각에게 나누어 주고, 진행상황을 중간중간 확인해주고, 매일의 성과를 닥달해 받아내면 그걸 취합하고 정리, 분석해 주간보고서 식으로 노동연구원에 보내는 게 설문조사 쪽 기본 구도였습니다. 번역은 첫 나흘간 입고되는 제안서 원본을 현지인 번역사 다섯 명에게 적절히 배포하고 번역을 독려하고 속도가 늦는 사람 것은 속도 빠른 다른 사람에게 옮겨주고 그렇게 해서 받은 초벌번역을, 마찬가지로 각 윤문작가들에게 배포하고 결과물을 돌려받는 작업을 매일 했습니다.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 프로젝트는 시간 내에 목표한 바를 달성하며 마무리되었고 난 이 과정에서 내가 이런 류의 프로젝트들을 디자인하고 관리하는 것에 딱 적성이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미처 몰랐던 일이었어요. 이런 식으로 인터넷으로 관리 가능한 프로젝트라면 동시에 서너 개를 함께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단 확신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정도 규모의 용역 프로젝트들이 그 후 아직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요즘 원고마감 상황으로 보면 그런 용역을 수행하는 게 지난 해처럼 수월하진 않을 게 틀림없습니다.

 

내가 아직도 스스로 잘 모르는 부분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좀 놀랍기도 했습니다. 요즘 만두도 빚고 소고기도 재면서 내가 라면 끊이는 것 말고도 가능한 요리들을 몇몇 새로 배웠다는 것도 스스로 신기했습니다.

 

나라는 인간에게 아직도 내가 스스로 잘 모르는 구석이 남아 있다는 것.

그게 내 매력이지 싶습니다.

 

정말 예쁜 여자는 자기가 예쁜 줄 모르는 여자라는 옛 성인의 말씀을 논리를 다시 살펴보면 나, 매력 있는 거 맞는 것 같습니다^^

 

 

언젠간 이렇게…..^^    

 

2021. 3. 16.

 

 

PS. 이게 뭐지?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