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마음 에너지 충전소 본문
고갈된 마음 에너지를 위한 초강력 배터리
내가 힘든 마음을 잘 돌보는 사람인가 스스로 평가해 보려고 하니 우선 마음이 힘들었을 때를 먼저 기억해 내야만 했습니다.
최근 2년쯤을 돌이켜보니 1~2년 치 월세를 목돈으로 내야 하는 임대료, 애들 학비, 차량 할부금 같은 비용들, 먹고 살 생계비, 그걸 충당하기 위해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느냐 소위 생계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짜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날 힘들게 한 게 고작 돈 문제였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아, 애들 학비란,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우리 아이들 말고 자카르타에서 내가 학비를 내주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기간을 좀 더 늘려 보았습니다. 10년간 손잡았던 한국 공급선과 2013년 깨지고 이듬해 친구의 니켈사업까지 망가지면서 대안을 찾아 베트남에 가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봤습니다. 얽혀 있던 문제들은 다 돈 문제…., 좀 더 멀리 가보기로 합니다. 거기선 우리 애들을 싱가포르와 호주로 유학을 보내고 나서 매 학기마다 등록금 때문에 돈을 빌리러 다니던 내 모습이 필연적으로 떠오릅니다. 역시 돈 문제. 좀 더 멀리 가면 2002년 파산, 1998년 자카르타 폭동으로 업무 중단……
날 그동안 힘들게 한 것이 모두 돈 문제, 경제문제였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참 일관성 있는 삶을 살았다고 혀를 차게 됩니다. 틈나는 대로 했던 글쓰기, 곡 쓰기, 초상화 그리기 등도 다 돈문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니 지난 인생이 상당히 수준도 낮고 없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는 평생 돈을 제대로 벌어 보지 못한 겁니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건 오지랍 성향입니다. 도움을 받았으면 갚아줘야 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입장이라면 우선 돕고 보는 버릇 말입니다.
2010년을 전후해 아이들이 각자 유학지에서 대학을 마치면서 난 그 기간을 통틀어 내 일을 도왔던 직원이 고마웠습니다. 정확히 따져보면 어떨 지 몰라도, 파산의 늪 속에서 애들을 대학이나 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래플스 인스티튯과 모나쉬 유니버시티를 각각 보내 졸업시킬 수 있었던 건, 물론 빠듯한 생활비로 4년을 버틴 아이들이 수훈갑이지만 그 외에도 매 학기 돈을 빌려준 한 선배와 내 미용기기 수입판매 최전선에서 뛰며 발군의 마케팅 실력을 보인 직원 메이의 공이 컸습니다.
“우리 애들 대학 보낸 거, 반쯤은 네가 한 거니 이번엔 내 차례다.”
그 친구 아이들 학비를 내주기 시작한 거죠. 유치원부터 시작해 이제 올해 7월이면 큰 애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어느새 10년 차입니다. 인도네시아 초중교 학비 얼마 하랴 싶었습니다. 사실 공립학교들 얼마 하지 않습니다. 단지 문제는 내가 학비를 내준다고 말하자 메이가 아이들을 내셔널++급 사립학교에 입학시킨 겁니다. 국제학교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현지 공립학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도록 학비가 비쌌습니다. 기가 찼지만 그렇다고 왜 너희 애들을 싸구려 학교에 넣지 않았냐고 몰아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곧 그 돈이 아깝지 않아졌습니다.
내가 싱가포르와 호주에 학비를 보낼 때 그 돈이 아까웠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더 보내주지 못한 게 안타까웠을 뿐이죠. 사랑하는 상대라면 그렇게 됩니다. 차차와 마르셀에게도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내 직원 메이는 미혼모였고 차차를 처음 만난 건 그 애가 한 살 반 때였습니다. 보통 미혼모들은 아이가 한 명뿐인데 메이는 차차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 내 회사의 필드캡틴이던 시절 남자아이 마르셀을 낳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메이의 상태는 미혼모. 그 대책없음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였습니다.
차차는 처음 만난 날 내 차를 오줌바다로 만들었고 그 후에도 누가 애들을 봐주지 않아 모두 데리고 출근하면 아이들은 온갖 사고를 쳤습니다. 직원들이 모두 외근 나간 사이 내가 아이들을 봐준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죠. 그러니 그 애들을 학교에 보내는 게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 없었어요. 그렇게 다시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메이와 함께 일하지 않은 게 이미 6년도 넘었지만 이젠 메이가 중심이 아니라 아이들을 중심으로 관계가 이어집니다. 난 이제 옥탄가 높은 마음 에너지 충전소를 싱가포르와 자카르타 두 군데에 가지고 있습니다. 늘 돈 문제로 마음이 힘들어지는 건 좀 형이하학적이지만 에너지 충전소만큼은 가장 예쁘고 건장하다 자부합니다.
2021.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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