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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나쁜 친구를 대하는 법

beautician 2021. 3. 27. 13:36

내 친구 메니에르

 

 

 

2008년 전후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씩 하던 미용실 방문판매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매에 비해 특별히 매출이 느는 것도 아닌데 방판조직을 꾸리고 영업비를 지불하고 오토바이를 추가로 사는 등 비용만 자꾸 늘어갔습니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직원들이 직접 우리 미용가위를 들고 자카르타와 반둥 시내의 미용실 수백 군데를 돌아다니니 지면광고를 내는 것보다 홍보효과가 획기적으로 높다는 것이었죠.

 

문제는 현금수금을 하는 상황이라 매일 정산하지 않으면 사고가 나기 쉽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밤늦더라도 직원들이 모두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 수금한 돈을 보고서, 들고 나갔던 남은 물건들과 제출받고 퇴근하는 시스템이었죠. 영세기업 돌아가는 게 그랬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사고는 수없이 터졌고 그 사업이 기울기 시작한 것도 결국 신용카드나 송금결재가 안되는 환경에서 금전사고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코로나로 인해 결재와 배달시스템이 완전히 정착했다면 얘기는 많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밤늦게 혼자서 직원들을 기다리던 중이었고 내 방 말고는 불이 꺼져 있어 저녁 9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인데 벌써 사무실엔 귀기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우기엔 도깨비불이 떠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죠. 그런데 회전의자에 등을 깊이 기대고 있을 때 뭔가 이마에 와 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완전히 뒤로 넘어가면서 회전의자와 함께 바닥에 내팽개쳐지고 말았어요. 머리가 띵한 상태에서 급히 일어나 주변을 살폈는데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까 누군가 보이지 않는 거인이 손가락을 내 이마에 대고 쭉 밀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난 머리를 획 돌려 내 방 바깥 어둠에 휩싸인 사무실을 노려보았습니다.

 

니들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렇게 소리지른 건 사실 좀 겁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생전 처음 말도 안되는 일을 겪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귀신의 조화가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직원들에겐 그날 내가 겪은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실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면 직원들이 무섭다고 사무실에 들어오지 않거나 결근, 심지어 퇴사할 수도 있고 어쩌면 직원들이 집단으로 쓰러져 비명을 질러대는 이른바 집단빙의, 끄수루빤 마쌀(Kesurupan Massal)이 벌어지는 상황이 찾아올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바로 몇 달 전 저녁 부엌에서 뭔가 해먹으려 냄비를 꺼내려 선반 위로 손을 뻗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몸이 기울며 머리부터 바닥으로 무너지듯 쓰러졌습니다. 급히 팔로 막았지만 좁은 공간에서 쓰러지는 과정에 머리가 먼저 냉장고를 들이받으면 한 쿠션을 먹고 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충격을 줄이려 그 순간 몸을 받쳐준 팔꿈치는 일주일 넘게 붓기가 빠지지 않았어요. 아무튼 그날도 불의의 편치를 맞고 쓰러졌다가 화들짝 일어서는 복서처럼 또 황망히 벌떡 일어나 냉장고를 살폈어요. 다행히 냉장고 문은 내 돌머리에 직격을 당하고도 찌그러지지 않았습니다.

 

10여년 전에 사무실에서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밀었던 보이지 않는 그 거인이 돌아온 겁니다. 사실 그는 내 왼편 귓속에 살고 있는 메니에르라는 친구입니다. 뇌혈류 이상이나 여타 여러가지 특정하기 어려운 이유들로 인해 원래 잔잔해야 할 귓속 달팽이관 안에 물결을 일으키고 때로는 작은 소용돌이를 만드는데 그 미세한 증상이 커다란 몸을 단번에 내리꽂는 것입니다.

 

물론 대개의 증상은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지만 메스꺼움을 동반한 극심한 어지럼증과 함께 시작하죠. 어느 날 밤 반둥에서 차를 몰고 돌아오던 길 고속도로에서 그런 상황을 만나 어찌할 바를 모른 적이 있습니다. 마침 가까이 있던 휴게소로 들어가는데 세상이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자카르타 시내 고속도로에서 또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엔 붐비는 도로에서 몇 분간 꼼짝하지 못한 채 진땀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놈이 10년에 한 번쯤 날 그렇게 업어치기로 패대기를 친 것이죠.

 

이석증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메니에르는 요령을 알기 전까지는 어지러움과 메스꺼움, 설사와 구토를 동반한 총체적 난국에 두 시간가량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결국 온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식은 땀을 흘린 후에야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하는 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시도때도 없이 벌어져서는 사회활동을 할 수 없는 거죠.

 

특히 운전대를 잡는 것이 자살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메니에르가 동반하는 어지럼증은 서서히 어지러워지는 게 아니라 급격하게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어느 날 톨에서 증상이 나타났을 때 시선이 닿는 저 톨의 끝 부분이 마치 부채 끝처럼 하늘과 땅 사이로 오르내리며 파닥거리고 있었습니다.

 

몇 번이나 병원에 갔고 이비인후과 전문병원에서 몇 차례 검사도 받았지만 딱 부러지는 진단이나 특별한 약을 주는 것도 없었습니다. “이런 건 그 원인이 워낙 다양해서 처방이 어려워요.” 의사가 이런 말을 할 때는 화를 내야 할지 헛웃음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일을 여러 번 겪으면서도 사람들에겐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내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 사람들이 짓쳐 들어올 기회로 삼는다는 세상의 원리를 걸 이미 알고 난 후였거든요. 사업상 미팅을 하다가 그 최악의 어지럼증이 닥쳐와도 마치 아무 일 없는듯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모면했습니다. 하지만 악수를 하고 나가려면 몇 걸음 못가 쓰러질 게 뻔하니 그 상황에서도 미팅이 빨리 끝나지 않도록 조정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스트레스 잘 안받는 성격이라 해도 그 대책 없는 상황에선 점차 의기소침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지럼증이 시작되려는 순간 내 몸을 앞으로 5도 정도 숙이면 지축이 흔들리는 어지럼증까지 도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지럼증의 강도가 심하면 좀 더 앞으로 숙이면 나아졌고요. 운전하다가 메니에르가 인사를 해올 기미가 보이면 핸들 윗부분에 눈높이를 맞출 정도로 몸을 잔뜩 웅크리면 도로 한 가운데 차를 멈춰야 하는 불상사를 매번 피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메니에르는 여전히 내 왼쪽 귀를 떠나지 않고 있지만 이젠 운전하는 게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두 시간씩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회복을 기다리는 상황도 좀처럼 겪지 않게 되었고요. 나름대로 대처 요령이 생긴 겁니다.

 

옛날 상무대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을 때 빠른 군번 때문에 연대부터 자대까지 각 부대를 거칠 때마다 선임장교가 되어 악을 쓰며 신고식을 하고 나니 그때부터 귀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평생 따라다닌 귀울음은 특정 음역을 듣지 못하게 하고 서서히 청력을 갉아먹더니 이젠 메니에르로 발전한 겁니다. 정말 오래된 친구인 셈이죠.

 

물론 앞으로도 상황이 더 좋아질 리는 없지만 아무튼 난 또 최선의 방법을 찾아낼 겁니다. 내게 시련을 기회로 바꿀 긍정의 파워는 아마 없는 것 같지만 시련 속에서도 대충 기죽지 않고 살아낼 요령과 꼼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21.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