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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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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집단 따돌림과 미얀마 시위대

beautician 2021. 3. 24. 12:17

두려움은 반드시 극복되는 것

 

최근 십 수 년을 막 살다 보니 내가 뭘 두려워하는지도 잊어버렸습니다.

인간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을 리 없으니 겁 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어딘가 고장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나도 어딘가 고장난 겁니다. 그리고 두려운 것은 분명 있습니다. 그걸 직시하고 싶지 않을 뿐이죠.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신이 트라우마라고 하는 건 트라우마가 아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 일부러 눈을 돌리지 않는 곳, 하지만 마주치는 순간 얼어붙어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것, 그게 트라우마라고요. 진정한 두려움도 그런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너무 두렵기에 잊어버려야만 했던 것.

 

어쩌면 내가 자주 꾸는 꿈 속에 두려움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지 모릅니다.

 

복잡한 스토리의 꿈 속에서 내가 차에 타는데 시동은 걸려도 전조등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미등도 들어오지 않아요. 그래서 달릴 수는 있지만 매우 위험한 상태로 운전해야 하는 상황. 마음이 엄청 불안하고 무거워져요.

 

또 어떤 꿈에선 이번에도 복잡한 스토리 속에 누굴 만나러 가야 하는 중요한 상황이 도래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 복장상태가 매우 부실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 입을 수도 없어 그대로 미팅장소를 향해 가는 마음이 한없이 무겁기만 합니다.

 

또 다른 꿈에 몇 달은 충분히 견딜 것 같은 탄약과 식량이 잔뜩 실린 장갑차 같은 차를 타고 가다가 어떤 일에 휘말려 거리를 뛰어다니게 됩니다. 그러다가 차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 되면 갑자기 나쁜 예감이 들어요. 아까 타고 왔던 그 차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죠. 거리의 모습은 아까 내가 기억하던 것과 전혀 다르고 그 차는 영영 찾을 수 없습니다.

 

이 꿈들의 공통점은 다 개꿈이라는 거지만 왜 같은 꿈을 반복해서 꿀까요? 무슨 영화에서처럼 매일 똑같은 꿈을 꾸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꿈을 꾸고 깨어나면 예전에도 같은 꿈을 꾸었다는 걸 기억하게 됩니다.

 

물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지만 그게 내 속에 내재한 두려움과 관계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낍니다. 난 꿈 속에서도 담배를 다시 피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합니다. 하지만 마침내 유혹에 넘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자괴감에 시달립니다. 내가 고작 이 정도 인간이었다니…… 그러다가 잠이 깨고서도 담배를 피운 게 꿈이었는지 아닌지 헷갈린 적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꿈이었다는 걸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죠. 담배를 피우는 버릇은 정말 떨쳐버리고 싶었습니다.

 

30대에 정말 자주 반복되던 꿈 중에 하나는 내가 아직도 군대에 있던 모습이었습니다. 장교로 군생활을 했지만 전역한 후 꿈에서 내가 아직도 군인이란 사실이 공포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면 마치 로또 맞은 기분이었어요. 그러다가 40대에 들어선 후 거의 꾸지 않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이란 결국 희석되어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겠죠

 

 

그러니 야간에 전조등 들어오지 않는 차량, 불량한 복장으로 가야 하는 미팅, 잠깐 떠났던 차량이나 장소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상황을 보여주는 저 꿈들은 내 의식 속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두려움이 실체를 드러내고 문자 그대로 ‘존재를 압박’하던 상황도 한번 있었습니다. ROTC에 입단하게 되면 정식 입단일 며칠 전에 학군단 선배들이 신입 후배들을 소집해 AT라는 걸 시킵니다. 그렇게 소집되는 예비훈련(assistant training)이란 것은 사실 짧으면 2~3일, 길게는 한 두 달 동안 신고식이란 명목으로 후배들에 대한 선배들의 무자비한 폭력이 무한대로 개방되는 시간입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도착한 AT 첫 날, 하루 종일 쏟아진 구타에 더럽다고 침 뱉고 나가버린 동기생들이 일곱 명이나 나왔습니다.

 

다음 날도 새벽에 다시 AT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새벽 세시 반쯤에 일어나고서도 오만가지 생각에 출발준비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대학 3학년이 되어 이제 성인이라 자부하는 시기에 누군가에게 전날처럼 하루 종일 또 다시 막무가내로 얻어 맞을 게 뻔한 곳에 내 발로 걸어가야 한다는 게 너무나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정말 악몽 같았습니다. 그때 엄마가 깨어났어요. 그리고 왜 그러냐고 물었죠. 그런 상황과 내 생각을 엄마에게 얘기한다고 해서 그날 벌어질 일에는 조금도 영향을 줄 수 없는 터였습니다. 하지만 한 시간쯤 속을 다 털어놓고 나니 이제 스스로 출발할 준비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엄마가 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 믿고 이야기를 한 게 아니었어요. 그냥 누군가가, 기왕이면 날 진심으로 걱정해줄 엄마가 내가 처한 상황과 내 마음을 알고 있길 바랬고, 그레서 엄마를 잔뜩 걱정시킨 결과가 되고 말았지만 난 내가 저 골때리는 AT 현장으로 다시 들어갈 때 우주탐사선 외곽을 유영하는 우주인처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엄마와 연결된 상태로 그 상황을 맞게 된다는 것이 더없이 위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전날 일곱 명이 때려 치고 나가는 바람에 구타행위가 국방부에 알려질 것을 우려한 학군단 교관단이 발칵 뒤집혔고 구타는 그날로 금지되고 말았습니다.

 

그 일을 통해 학교나 조직에서 집단 따돌림과 폭행을 당하다가 최후의 선택을 하는 아이들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친분도 안면도 없는, 그래서 일말의 선의를 가졌는지 아니면 악의의 화신이었는지 모를 누군가에게 하루 종일 기약없이 폭력을 당하는 게 어떤 건지 최소한의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그런 상황을 동료들도 없이 오직 가해자들에게 둘러 쌓인 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선 학교들의 집단 따돌림 피해학생들의 입장을 어느 날 떠올리며 그 마음이 어떨지 헤아려 본 일이 있습니다.

 

두려움에 맞서는 방법들은 많이 있겠지만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진정한 두려움 앞에선 얼어붙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스스로 철저한 열세에 처해 있다는 생각에 맞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나보다, 이게 뭐냐고 소리치며 선배 손목을 비틀고 학군단 베레모를 던져버리고 그곳을 이탈한, 그날의 일곱 명은 분명 나보다 나은 인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왕따로 괴롭힘 당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이 내린 최후의 결정을 절대 폄하할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스스로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라 느낀 곳에서 택한 가장 용기있는 결정이었을 테니까요. 그들은 온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두려움을 그렇게 극복하고 그 상황에서 이탈한 것입니다.

 

그러니 학교폭력을 저지르고서 이제 사회에 나와 연예인으로 스포츠인으로 떵떵거리는 이들을 철저히 막아 세워 그들이 어린 시절 망가뜨려버린 수많은 동급생들, 후배들의 인생을 평생 후회하며 보상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미얀마 시위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있는 최악의 두려움과 맞서는 민간인 시외대들이 최소한 그들의 입장과 의지를 백 번 이해하는 우리 같은 해외의 지지자들과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 상태에서 그곳에 있다는 확신을 주고 싶습니다.

 

내가 이런 생각이 많아서 요즘 그런 꿈들을 꾸는 걸까요?

 

 

 

2021.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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