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순리대로 살아질까요? 본문
세상의 순리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과의 문제였습니다.
개중엔 노골적으로 무례하고 오만한 이들도 있지만 대개는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는 데도 그 자리나 일의 매뉴얼이 상대방을 화나게도 황당하게도 만들곤 해요.
인도네시아 은행이나 관공서에 가면 안되는 일이 그리도 많습니다. 은행에서는 오후 2시 이후에 문을 닫은 것도 아닌데 달러화 입금도 출금도 해주지 않습니다. 룰이 그렇데요. Giro라고 부르는 어음을 현금화하려고 가면 어떤 은행은 9시반 이전에 와야만 한답니다. 자기들은 8시반에 문을 열면서요. 차량 부품이나 기계 부품이 고장 나면 어디든 가서 수리받는 게 보통이지만 여기선 거의 대부분 새 걸로 바꿔 끼우라 합니다. 새 걸 사서 끼우는 건 본질적으로 수리라고 할 수 없죠.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그렇게 돌아갑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무슨 악의가 있거나 문제가 많은 사람인 것도 아니에요. 단지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도록 교육받은 것 뿐이요. 내가 열불이 나든 말든요.
천하의 못된 놈을 만나 한바탕 충돌하면 한동안은 두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흥분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정신적, 심리적인 타격을 크게 받는 것 같진 않습니다. 특히 그게 서로 욕설을 주고받는 정도라면 말이죠. 그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가 욕을 하는 이유가 너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걸 차치하고 그의 입이 그의 얼굴에 붙어있기 때문이죠. 그의 입이 내 얼굴이나 옆집 담벼락에 붙어 있었다면 감히 그러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그가 나한테 욕을 못하도록 만드는 건 그의 입을 거기 붙여 놓은 신의 섭리를 거역하는 거에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같은 신의 섭리에 따라 내 얼굴에 붙은 입으로 걸쭉한 욕설을 하며 맞받아쳐 주는 거죠.
세상의 순리가 알고 보면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에요
정말 우울한 순간은 내가 통제할 수도 없는 다른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지 못하거나 세상 일들을 어찌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마땅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내가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하지 못했을 때, 또는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했을 때 찾아옵니다.
아직 담배 피던 시절, 잔뜩 집중해서 보고서나 에세이를 하나 쓰고 났을 때 자판 옆 재떨이를 파묻어 버릴 듯 산더미를 이룬 누런 담배꽁초 더미를 보면서 자괴감과 함께 우울이 찾아왔습니다. 왜 절제가 안되는 걸까요.
몇 건의 원고마감을 앞두고 맞은 금요일 오후, 며칠 후면 모든 마감의 압박을 떨치고 상쾌한 월요일 아침을 맞을 거라 마음먹지만 때로는 단 한 건의 마감도 처리하지 못한 채 일요일 밤을 지새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후회막급한 심정이 되어 버립니다. 난 왜 주말 시간을 다른 일로 낭비해 버리고 정작 해야 할 일들을 뒤늦게 시작하곤 하는 걸까요. 후회하게 될 걸 뻔히 알면서도요.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의 나태와 나쁜 버릇때문에 피하지 못하게 되어 버리는 것은 가장 절망적인 경험입니다. 정말 우울해지죠.
고질적인 담배는 6~7년 전에 마침내 끊었지만 원고마감 즈음에 찾아오는 '배수진' 마인드는 아직도 버리지 못했습니다. 영어로 읽어도 한글로 읽어도 여전히 독해가 난감한 회계자료 번역이 며칠째 밤을 새다시피 하면서도 오늘로 마감을 이틀 넘겼습니다. 내일 새벽까지는 어떻게든 끝내게 되겠지만. 우울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순리를 알아도 그렇다고 똑바로 사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2021.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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