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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기본 표정 관리

beautician 2021. 3. 4. 10:30

 

그게 웃는 거야?

 

 

예전에 차를 몰고 아파트를 드나들 때마다 난 개찰구에 앉은 여성 주차직원에게 엷은 미소를 띄워주려 했습니다. 물론 요즘 들어갈 때는 무인 개찰구를 지나고 나갈 때 비로소 직원을 만나 주차비를 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게 꼭 여성이 아닌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더욱이 요즘은 나갈 때도 무인 스캐너와 씨름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죠.

 

그래서 무척 오래된 얘기인지는 몰라도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활짝 웃으며 표를 받는 어린 여성에게 죽일 듯 딱딱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빨을 드러내며 큰 미소를 짓는 건 과유불급이죠. 어떤 사람은 그게 더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난 내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대에게 거만해 보이거나 전혀 무관심하게 보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만한 과장된 모습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보일 듯 말 듯한 엷은 미소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내가 짓는 그 엷은 미소라는 게 내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좀 슬픈 일이었습니다. 면도할 때가 거의 유일하게 내 얼굴을 보는 일인데 코로나가 닥치고 팬데믹이 오니 자기 얼굴 볼 일이 의외로 많아집니다. 줌미팅에서 말이죠.

 

난 시종 예의 그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모니터에 떠 있던 내 얼굴에 난 살짝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짓고 있었다고 생각한 엷은 미소가 줌 미팅 카메라에는 어딘가 불편한 듯 뚱한 얼굴이 조금 찡그린 표정으로 비치고 있던 것입니다. 아니, 왜 내 얼굴이 내 맘대로 안되지?

 

풋풋하던 시절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땐 원하는 표정이 나왔어요.

하지만 이젠 엑셀 페달을 아무리 밟아도 예전 속도가 나오지 않는 고물 자동차처럼 되어 버리고 만 겁니다. 나이 들면 눈 조리개가 옛날처럼 충분히 줄어들지도 않고 그 속도가 기민하지도 않아 노안이 오고 말듯 얼굴 근육도 반응정도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내가 머리 속에서 생각하는 정도의 웃음을 띄우려면 뇌가 평소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좀 더 활짝 웃어주어야 하는 겁니다

 

꽤 즐거워 소리내 웃는 정도로 레벨을 올려보니 비로소 얼굴에 엷은 웃음기가 번졌습니다. 그건 기본 표정 자체가 그 사이 어둡고 엄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죠. 세월이 디폴트를 너무 끌어내려 버렸습니다.

 

스스로의 그런 상태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엔 사뭇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불쾌한 인생을 살아왔던 것일까요

그 찡그린 얼굴을 본 주차장 여직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난 왜 평소에 좀 더 웃어 보려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그러고 보니 몰을 걷다가 가게 쇼윈도에 비친 내 표정은 어딘가 화나 있는 듯 보였습니다. 룰루랄라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쇼핑을 나섰던 날이었는데 말이죠.

 

축구장 한 가운데 그려져 있어야 하프라인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버린 것처럼 최소한 중립적이어야 할 평소의 표정이 어느덧 독해지고 무시무시해진 것입니다. 그 디폴트를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요

 

그래서 내가 늘 친절하게 엷은 미소를 지어주었다고 생각했던 그 개찰구 여직원에게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들고 말았습니다.

 

응.

 

 

2021.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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