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설교시간에 졸지 않는 법 본문
부작용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는 순간 왜 그렇게나 눈꺼풀이 무거워오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건 당연히 잠이 부족해서다. 하지만 왜 밥 먹을 때, 운전할 때, 일할 때는 졸리지 않다가 설교가 시작되는 순간 오지에서 핸드폰 신호 끊기듯 오감에 노이즈가 발생하며 의식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려는 것일까? 아버지가 목사님인데? 동생이 군목 대령인데?
그런 족보는 결국 아무 관계가 없고 기본적으로 설교시간엔 내가 뭘 하는 게 아니라 목사님이 뭔가 하는 걸 장시간 지켜봐야 하는 게 문제였다. 수영 동작을 멈추면 가라앉아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거기서 또 의문이 든다. 지금은 지구촌교회 원로목사가 되신 이동원 목사님이 예전 동국대 뒷문의 우리 교회 담임목사를 하실 때엔 설교 끝나는 게 아쉬워 눈을 초롱초롱 빛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때 내가 내 눈을 스스로 볼 수는 없었으니 옆 친구들 모습을 보고 그렇게 미루어 짐작했다. 내 눈도 그렇게 빛났을까?
그러니 요즘 설교시간에 눈꺼풀이 고층건물 폭파 철거하는 기세로 무너져 내리는 건 단연코 목사님 설교가 재미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창시절 자장가 버금가는 선생님, 교수님들의 지루한 수업시간을 버텨내며 나름 성적을 냈던 내가 왜 목사님 설교가 좀 재미없다 쳐도 왜 그렇게 기절하듯 잠들어 버리는 것일까? 설교말씀이 나중에 시험에 안나오니까?
설교시간에 조는 게 죄악이라면 목사님이야말로 사탄의 사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퍼뜩 들면서 한동안은 열심히 필기도 해보았고 이게 다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빡세게 마음을 다잡아 보았지만 모두 부질없다는 걸 깨닫게 될 즈음 조금 색다른 걸 시도해 보기로 했다. 주보에 실린 사람들의 간증이나 신앙집 발췌문에 토를 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엔 회사에 차려 놓은 고사상에 무릎 꿇기 싫어 기도실에 숨어있던 어떤 부장이 나중에 자기 상관이던 차기 법인장 후보자가 다른 일로 잘리자 결국 자신이 법인장 자리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사자로서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라 생각했겠지만 참 얄팍하고도 일방적인 간증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사에 참여하지 않은 자신이 하니님의 축복을 받아 승진했다는 메인 스토리의 뒷면에 고사에 참여한 그 차기 사장 후보자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 결국 회사에서 잘렸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셈입니다. 일요일 예배를 드리지 않고 주말 가족여행을 떠났던 한 집사님 가정이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해 가족 전원이 사망했다는 예전 어떤 목사님의 설교도 떠올랐습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며 목사님은 성도들을 그렇게 위협했던 것이죠. 당시 성도들은 아멘을 외쳤지만 그 목사님은 거룩한 하나님을 교회 안나오는 사람들을 교통사고로 막 죽여버리는 참 파렴치하고도 잔혹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후략)’
할렐루야.
정말 오랜 만에 졸지 않았다.
그 후 매주 그렇게 글을 썼는데 40분 남짓한 설교시간이 짧은 에세이 한 개를 초안 잡기에 아주 적당한 시간이란 걸 알았다. 얼마 후엔 각종 보고서도 설교시간에 쓸 수 있었다. 역시 내가 뭔가 해야 졸리지 않는 것이다. 단지 부작용이 있다면 목사님이 그날 무슨 설교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것이야 예배시간에 졸지 않은 것으로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부작용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 찾아왔다.
코로나가 닥치고 집합금지가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면예배를 주장하던 교회가 코로나 클러스터가 되면서 교회에 마지막으로 간 게 벌써 1년 전의 일이 되고 말았다. 제대로 에세이를 써 본 게 벌써 1년 전의 일이 되고 만 것이다.
부작용이 심각하다.
2021. 2. 17.
(하나님: 너 정말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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