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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 (3-4)]마타람 왕국의 수호신 니로로키둘

beautician 2021. 2. 8. 12:04

마타람 왕국의 수호여신 니로로키둘 (Nyi Roro Kidul)

 

 

치명적 녹색의 매력, 니로로키둘

 

빠자자란(Pajajaran)은 1030~1579년 사이 서부 자바에 있었던 순다 갈루 왕국(Kerajaan Sunda Galuh) 수도로 15~16세기 포르투갈인들이 만든 지도엔 지금의 보고르(Bogor) 지역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빠자자란 왕국’이 순다 왕국의 동의어이고 그 기원을 서기 669년으로 보는 시각에 따르면 천년 통일신라에 맞먹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왕국인 셈입니다. 수많은 전설들이 이 왕국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죠.

 

 

카디타(Kaditha) 공주의 전설도 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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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오래 전 왕비를 잃고 외동딸 카디타에게 온 마음을 주었지만 여자가 왕위에 오르면 국운이 쇠퇴할 것이란 예언에 따라 젊은 왕비를 새로 들여 왕자를 얻으려 했습니다. 왕비는 요정처럼 빛나는 미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음험한 계략으로 가득 찼던 왕비의 마음 속엔 날로 성숙해지며 아름다움을 더하던 카디타 공주에 대한 시기심이 불타 올랐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따라 힌두신 인드라(Indra)를 극진히 섬기던 순결한 카디타 공주는 왕궁에서는  물론 백성들에게 깊이 사랑받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왕비의 심복 흑마술사의 점괘가 왕비의 시기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카디타 공주는 여왕이 될 운명입니다.”

 

하지만 그 왕좌는 자신이 낳을 왕자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왕비는 거의 매일 카디타 공주의 일거수일투족을 왕 앞에서 문제 삼으며 흠집을 잡았고 흑마술을 통해 왕의 총기를 은밀히, 그리고 조금씩 흩트렸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태기가 돌자 왕비는 왕에게 어려운 선택을 강요합니다. 자신과 공주 중 한 명만 선택하라는 것이었어요. 공주를 선택하면 자신은 앞으로 태어날 왕자와 함께 왕궁을 떠날 것이란 위협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흑마술에 빠져 이미 자아를 상실한 왕으로부터 카디타의 추방령을 얻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왕비는 공주가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는 것을 왕비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왕비는 다시 두꾼을 불러들였습니다.

 

“그 애가 없어져야 해. 설령 그 목숨이 끈질겨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면 가장 추한 벌레 같은 모습이 되어 매일 죽기를 갈망하며 살도록 만들어야 해!”

 

산뗏 저주술로 수많은 이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두꾼도 왕비의 서슬 퍼런 악의에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고결하신 왕비님, 하지만 그동안 어떤 저주도 카디타 공주님께 닿지 못했습니다.  공주님은 강력한 수호령의 가호를 받고 계세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제물로 바쳐야만 왕비님의 의지가 그 가호를 깨고 공주님께 닿을 것입니다.”

 

왕비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왕국이 이제 내 손 안에 있는데 제물이 될 만한 소중한 것들이야 넘쳐나지 않느냐? 설령 그것이 국왕의 목숨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내놓을 테니 반드시 카디타가 스스로 죽고 싶어 몸부림치고야 말 저주를 퍼부어 다오!”

 

“그 말씀에 후회 없으시기를……”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밀실로 물러난 두꾼은 곧바로 가장 악독한 귀신들을 소환해 누구도 절대 피하지 못할 가장 강력한 산뗏 저주를 카디타 공주에게 쏘아 보냈습니다.

 

그날 아침 일찍 작은 마차에 실려 왕궁에서 쫓겨나 멀리 남쪽 해안이 내려다 보이는 구눙살락(Gunung Salak) 산자락에서 밤을 맞던 카디타에게 그 산뗏이 닿았습니다. 인간들의 눈엔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예기치 않은 폭우가 쏟아지는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카디타의 수호령들이 그녀에게 폭우처럼 퍼부어지던 악랄한 저주를 온몸으로 막으며 불꽃처럼 소멸해가고 있었습니다.

 

<카디타, 어서 일어나거라. 저 남쪽 바다 속에 너의 구원이 기다리고 있단다.>

마지막 수호령이 소멸하기 전 낮게 속삭인 목소리에 카디타는 화들짝 놀랐지만 아내 비명을 지르며 젖은 바닥에 뒹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온몸이 타 들어가는 듯한 고통에 휩싸이며 뼈마디가 뒤틀리고 피부가 온통 부어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왕비의 악의가 그녀를 지배했습니다. 호송병사들은 커다란 물집이 온몸에 솟아오르며 누런 고름을 쏟아내기 시작한 카디타 공주가 도와달라 외치며 손을 내밀자 기겁을 하고 모두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카디타 공주는 그렇게 폭우 속에 남겨진 채 흙바닥을 뒹굴었습니다.

 

한참이 지나 조금 정신을 차린 카디타는 자신에게 떨칠 수 없는 저주가 임했다는 것과 살아서 다음날 아침을 맞을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아까 신인지 악마인지 모를  존재의 속삭임을 기억했습니다.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녹아내리는 온몸을 천으로  감싼 카디타는 어렵사리 말들을 다시 마차에 연결하고 밤새 길을 따라 해안을 향해 마차를 몰았습니다. 그리하여 큰 파도가 부서지는 절벽 위에 도착했을 때 흑마술의 저주를 뒤집어쓴 그녀의 몸은 이미 시체처럼 역겨운 악취를 풍기며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억울하고 슬픈 마음만 들 뿐이었습니다.

 

밤새 갑자기 밀어닥친 요란한 폭풍우에 잠을 깬 몇몇 해안마을 사람들은 절벽 위에 서 있던 시체 같기도, 귀신 같기도 한 어떤 여인이 성난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왕국에서 카디타 공주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던진 카디타에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무섭고 서럽기만 하던 바다가 포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곳에 오는 동안 녹아내린 피부도, 빠져버린 이와 손톱도, 어디선가 잃어버린 왼쪽 눈동자도 원래 자리에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카디타는 온갖 무시무시한 바다 속 정령과 마물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 모두를 압도할 영적인 힘마저 넘쳐났습니다. 예의 흑마술사의 점괘대로 인드라가 그녀를 남쪽바다의 여왕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훗날 ‘키둘 지방의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으로 불리게 되는 니로로키둘(Nyi Roro Kudul)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한편 왕비는 왕궁에서 엄청난 하혈을 쏟으며 쓰러집니다. 그녀가 바친 가장 소중한 제물은 바로 태 속의 아기였던 것이죠.  빠자자란 왕국은 그렇게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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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로로키둘에 대한 신앙은 자바 남해안 전 지역에 널리 퍼져 있고 지역마다 사뭇 다른 전설을 가지고 있지만 카디타 공주의 전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카디타가 바다에 몸을 던진 곳은 수카부미 남쪽, ‘여왕의 항구’로 번역되는 쁠라부한라투 (Pelabuhan Ratu) 해안입니다. 여왕의 상징인 녹색 옷을 입고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여왕의 노여움이 미쳐 불행한 일을 당한다는 괴담이 넘쳐나고 이곳 사무드라 비치 호텔 308호는 니로로키둘에게 헌정된 사당이 꾸며져 있습니다. 이 방엔 여러 화가들이 그린 니로로키돌의 초상이 진열되어 있는데 그 중엔 유명 화가 바수키 압둘라(Basuki Abdullah)의 작품도 있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소재를 그냥 지나칠 리 없는 현지 영화계에선 이 308호 객실을 모티브로 호세 뿌르노모(Jose Purnomo) 감독이 영화 <308>을 만들어 2013년에 개봉하기도 했습니다.

 

쁠라부한라뚜(Pelabuhan Ratu)에서는 매년 4월 6일 니로로키둘에게 풍어제를 지내며 공물을 바쳐 자비와 은혜를 구합니다. 어부들은 공물을 실은 배를 먼 바다에서 가라앉혀 여왕과 친선을 도모하는데 여왕이 공물을 받아들이면 그 댓가로 화창한 날씨와 풍요로운 만선을 허락한다고 믿고 있죠. 

 

물론 니로로키둘은 가련하고 자애롭기만 한 여신은 아닙니다. 그녀가 강한 것은 그녀 자신의 높은 영력뿐 아니라 마물들로 이루어진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군대를 람뽀르(Lampor)라고도 부르는데 지역에 따라 이들이 도깨비불이나 뽀종 (Pocong)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주장도 있지만 옛 자바왕국 복장의 병사들이 군단을 이룬 모습으로 현신한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입니다. 이와 관련해2019년 군뚜르 수하르얀토 감독이 <람뽀르(Lampor)>라는 영화를 제작해 개봉한 바 있습니다.

 

<람뽀르(Lampor)> (2019)  

 

한편 전승에 의하면 이 군대의 사령관으로 여왕의 끄라톤을 수호하는 니블로롱(Nyi Blorong)은 녹색과 금실로 자수를 친 끄바야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허리 아래로는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한 이무기로 달이 차오를수록 아름다움과 힘이 절정에 달하다가 달이 기울면 원래의 거대한 이무기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중부 자바 족자 남쪽 빠랑꾸수모(Parangkusumo), 빠랑뜨리띠스(Parangtritis) 해안에는 데위 카디타 전설과 결을 조금 달리하는 전설들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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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훗날 마타람 왕국의 시조 권능왕 스노빠티(Penembahan Senopati)라고 불리게 될 수타위자야 (Sutawijaya)가 빠장 왕국(Kerajaan Pajang)과 전쟁을 벌이던 16세기 후반. 거듭되는 전쟁에 지친 수타위자야가 잠시 숨을 돌리려 고향인 꼬따거데(Kota Gede)에 돌아와 남쪽 빠랑꾸수모(Parang Kumuso) 해변에서 깊은 명상에 들었습니다. 영력 강한 인물의 명상은 영적 세계에 천재지변을 일으키곤 하는데 이날 수타위자야의 명상은 그가 의도치 않았지만 남쪽 바다 마물들 세계에 뜨거운 광풍을 일으켜 가까이 있던 귀신들은 단숨에 불타 소멸해 버렸고 강한 마물들조차 명상의 힘에 떠밀리며 아우성을 쳤습니다. 해안에서 아수라장이 벌어지자 깊은 바다 속 끄라톤에 있던 니로로키둘이 뭍으로 올라옵니다. 원래 단숨에 소동의 근원을 제거할 생각이었지만 늠름한 수타위자야의 모습에 수천 년 동안 흔들리지 않던 니로로키둘의 마음이 순간 움직였습니다. 수천 년이라 말한 것은 이 전설속의 니로로키둘은 데위 카디타가 아니라 고대로부터의 남쪽바다를 지켜온 불멸의 영적 존재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그녀는 평범한 인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였지만 수타위자야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영웅이여. 그대가 우리들을 핍박해 얻으려는 게 무엇인가요?”

 

수타위자야 역시 니로로키둘의 눈부신 자태에 금방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수타위자야는 명상을 멈추고 둘은 빠랑꾸수모 해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급기야 니로로키둘은 수타위자야를 바다 속 끄라톤으로 데려가 사흘 밤낮을 함께 지내며 그의 영적 아내가 됩니다. 그녀는 빠장왕국을 무찔러 새로운 왕국 건설을 돕기로 약속하죠. 그리하여 니로로키둘은 마타람의 수호신이자 수타위자야, 즉 스노빠티의 뒤를 잇는 역대 마타람 왕들의 영적 아내가 됩니다. 이슬람 술탄국인 마타람 왕국에 이교도 여신이 개입하는 기이한 상황은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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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람의 3대 왕 술탄 아궁(재위 1613~1645)에게 할아버지인 시조 스노빠티(재위 1586~1601)가 니로로키둘을 자신의 아내라 말했다는 이야기가 ‘자바땅의 역사서’(Babad Tanah Jawi)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마타람이 카르타수라 왕국으로 바뀌고 1755년 네덜란드 총독부가 개입한 기얀티 조약으로 다시 족자와 수라카르타로 쪼개진 후에도 니로로키둘은 여전히 족자 역대 술탄들과 수라카르타(솔로) 역대 수수후난들의 영적 아내로 남았습니다. 현재 족자의 끄라톤 궁전도 머리피 산과 니로로키둘의 바다 속 궁전을 잇는 선상에 지어졌다고 전설에서도 현실 근대역사 속에 니로로키둘이 차지하는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니로로키둘이 술탄과 수수후난의 영적 아내라는 사실로 인해 훗날 그녀를 만난 사람은 그냥 범상치 않은 초현실적 경험을 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제왕이 될 사람, 즉 마타람의 후계자만이 니로로키둘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죠. .  그래서 그녀를 만났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디포네고로 왕자는 끄라톤의 술탄들보다 더욱 압도적인 민중의 지지를 받아 자바전쟁(1825~1830)를 통해 네덜란드 세력을 자바섬에서 거의 몰아낼 뻔한 상황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끄라톤의 술탄이 아니라 니로로키둘을 만난 디포네고로 왕자야말로 마타람의 진정한 적통이라 믿었기 때문이죠.

 

이후에도 민중의 전폭적 지지를 얻거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니로로키둘을 만났다고 스스로 소문을 내는 이들이 적지 않았고 역대 대통령들도 대체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독립전쟁 영웅이자 족자 술탄이었던 하멩꾸부워노 9세도 그의 자서전에 니로로키둘과 영적으로 조우한 경험을 기술했고 1988년 10월 3일 그가 서거했을 때 끄라톤 궁전 사환이 임종을 맞는 술탄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니로로키둘의 모습을 보았다는 기사가 무려 템포(Tempo) 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니로로키둘은 여신이나 전설이 아니라 다분히 자바 사회 저변을 아우르는 일종의 ‘현상’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족자 술탄국은 이제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실상 술탄의 대가 끊긴 족자 끄라톤의 술탄 하멩꾸부워노 10세(앞서 9세의 아들)는 2015년 5월 5일 자신의 장녀 뻠바윤 공주(Gusti Kanjeng Ratu Pembayun)를 차기 술탄으로 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바아흐로 족자 술탄국 사상 첫 여성 술탄이 탄생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성 술탄이 즉위하면 니로로키둘의 남편으로서 거행하는 대관식에 문제가 생깁니다. 술탄의 영적 아내가 아니라 이제 영적 언니가 되어야 할 상황에 처한 니로로키둘도 바다 속 끄라톤에서 매우 난감해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족자 술탄 하멩꾸부워노 10세와 구스띠 깐젱 라뚜 뻠바윤 공주  

 

 한편 인도네시아의 문호 쁘라무디야 아난따 뚜르는 이 전설에 대해 냉정한 분석을 내립니다. 1988년 막사이사이상 수상연설에서 그는 술탄 아궁이 1628~1629년 사이 바타비아를 공격해 네덜란드인들을 궁지로 몰았지만 결국 함락시키지 못하고 목적했던 북쪽해안 통상로도 얻지 못하자 마타람 궁전의 모든 문신들을 동원해 그 정신적 보상차원에서 니로로키둘의 전설을 창작해 그래도 남쪽 바다는 마타람의 지배하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라 주장한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전설이 또 다른 전설을 낳으면서 마타람의 역대 제왕들이 바다의 여왕을 아내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죠.

녹색 옷을 금기시하는 전설의 디테일 역시 사실은 대체로 녹색 계통이었던 네덜란드군의 군복과 연관을 지으려는 문인들 노력의 산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녹색 제복의 네덜란드군을 혐오하는 니로로키둘은 반식민주의적, 민족주의적 여신으로 민중의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쁘라무디야 아난따 뚜르의 주장과 관계없이 니로로키둘은 자바 문화 속에 깊이 녹아 들어 있고 이를 증명하듯 남쪽 바다 여신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와 드라마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어찌 보면 전설 속, 무너져버린 육신을 험한 바다에 내던진 순결하고 나약했던 빠자자란의 공주, 그리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영력으로 풍랑을 다스리고 마타람을 수호하며 신성한 녹색을 범한 이들을 파멸시키는 남쪽 바다 여신의 극단적 대비는 15~16세기부터 시작된 외세의 침략에 속수무책이던 자바 왕국들의 현실적 무력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자바인들의 집단적 의지, 그 양면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 아닌가 감히 생각해 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직전인 1941년 미국에서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화 캡틴 아메리카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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