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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좀 더 다채로운 세상을 향하여

beautician 2021. 1. 5. 01:23

 

홍석천

 

홍석천이 커밍아웃한 것이 2000년의 일이란다.

벌써 20년도 넘었다. 하지만 당시 난리가 났던 세상 분위기를 기억한다.

난 그때 뭐 하고 있었나? 아, 그렇다. 난 1995년에 인도네시아에 왔으니 당시 1998년 자카르타 폭동을 겪고나서 뭔가 봉제 자재를 수입해 현지 공장들에 공급하고 있었다.

 

하리수가 한국 방송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게 2001년의 일이라고 한다. 

논란이 있었지만 하리수는 홍석천처럼 매장되는 대신 각광을 받기도 했고 영화의 주연도 꿰차며 얼굴을 비치지 않은 예능프로가 없었다. 그걸 보면 예쁘면 대충 봐주는 한국인 남자들 성향을 새삼 깨닫는다. 아직 그 진실을 파헤치는 중인 1987년 KAL 858기 사건 당시 그 비행기를 떨궜다고 알려진 김현희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유는 예쁜 여자니 살려준다는 대한민국 남자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분명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두 사람은 '남자지만 남자가 아닌 사람'으로 취급되었는데 홍석천은 게이, 하리수는 트랜스젠더로 분류한다. 하지만 굳이 그런 것까지 구분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도 많은 모양. 그냥 둘 다 동성애자, 둘 다 비정상, 둘 다 병신.....이렇게 생각하려는 성향이 많고 특히 개신교 쪽에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탄의 자식으로 분류한다.

 

뭔가를 동의하고 응원하거나 반대하고 반박하려 해도 제대로 하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세상에 동성애자가 게이와 레즈비언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게 다 커가면서 나쁜 영향을 받은 결과물 또는 정신병의 일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물론 이런 얘기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런 성향을 가진 이들이 보이는 다양한 스팩트럼과 차이점들을 설명하는 것조차 부질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그런 부질없는 짓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지.

 

* 게이 (Gay) - 일반적으로 동성애자 남성.

* 레즈비언 (Lesbian) - 일반적으로 동성애자 여성. 동성애자란 개념에서 게이라 하기도 한다.

* 트랜스젠더 (Transgender) - 출생 당시의 성에서 인의적으로 그 반대의 성으로 물리적 성정체성을 변경한 사람. '트랜스'라고 줄여부르기도 한다.

* 퀴어(queer) - 이성애자가 아닌 성소수자들을 통칭하는 단어. 원래는 경멸적 표현으로 사용되었으나 1980년대 이후 학자들과 활동가들이 좀 더 긍정적인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함. 

* 바이섹슈얼(Bisextual) - 앙성애자. 양성 모두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사람.

 

그래서 이 단어들을 조합해서 LGBTQ 라는 이니셜로 성소수자들, 동성애자들을 표현한다. 즉 L(레즈비언) G(게이). B(바이섹슈얼), T(트렌스젠더), Q (퀴어 또는 퀘스쳐닝) 을 뜻하는 것이다. 물론 이게 전부가 아니다.

 

* 퀘스쳐닝(Questioning) -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

* 트렌스섹슈얼(Transsexxtual) - 타고난 성에 대한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

* 투스피릿(Two-Spirit) - 주로 북미지역에서 최근에 쓰이기 시작한 단어로 남성과 여성의 취향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을 칭함.

* 인터섹스(Intersex) - 크로모솜(chromosomes)이나 생식기로는 남녀 성별 분별이 어려운 사람. 즉 남녀의 성징을 모두 가진 사람으로 간성(間性)이라고도 한다.

* 팬섹슈얼(Pansexual) - 양성 모두에게 성적으로 끌린다는 측면에서 바이섹슈얼과 유사하나 팬섹슈얼은 색맹처럼 성에 대한 구분을 하지 못한다고 보는 게 맞다.

* 에이젠더(Agender) - 무성애자. 스스로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

* 젠더퀴어(Gender-queer) - 스스로 남성 또는 여성으로 양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 또는 그 이외의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

* 바이젠더(Bigender) - 성정체성과 성적 취향이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동시에 가진 사람. 그래서 어떤 경우엔 남성, 어떤 경우엔 여성의 모습을 띔.

 

이 외에도 젠더 배리언트(Gender Variant), 팬젠더(Pangender) 등 더 많은 분류가 가능하다. 말하자면 이들을 '동성애자'라는 특정 부류로 제한하여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성소수자들의 스팩트럼은 매우 다양하다는 뜻이다. ok2bme.ca/resources/kids-teens/what-does-lgbtq-mean/에서 좀 더 구체적인 분류를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 열린 퀴어축제

 

2015년까지 10년 넘게 인도네시아 미용업계에 한국산 미용기기를 수입해 공급하면서 수많은 '벤쫑(bencong)'들을 만나 보았는데 위의 분류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단순화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말하자면 성정체성/성지향성과 성적취향 만을 보는 것이다. 타고난 성이 남성인 경우는 대략 이렇다.

 

 

성정체성/성적지향성

성적 취향

비고

1

매우 남성적

남성적인 남성

일반적인 게이

2

남성적

여성적인 남성

인니어로 레꽁(Lekong). 남성 동성애자 커플 중 남성역할

3

매우 여성적

남성적인 남성

인니어로 빼웡(Pewong). 남성 동성애자 커플 중 여성 역할. 트랜스젠더가 될 소지가 큼. 일반적으로 벤쫑(bencong)이라 불림.

 

저 3번이 미용실이나 영화에서 자주 보는 나긋나긋한 몸동작의 남성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누구나 다 드러내는 건 아니므로 모두가 손목과 허리를 이리저리 꺾으며 과장되도록 여성스러운 동작으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말끔한 복장과 용모로 단호하게 말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1~3의 유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 미용실 업계의 남성 벤쫑들은 좀 더 섬세한 스팩트럼을 보인다. 친절하고 말 많고 때로는 질퍽거리며 치근덕거리고 때로는 새침맞고 잘 삐지며 때로는 질투에 눈이 멀어 처절한 복수극을 벌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철없는 벤쫑들이나 생각없이 하는 짓들일 뿐이다. 

실제로 동성애에 대한 반감이 개신교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덜할 리 없는 이슬람 사회에서 벤쫑 또는 게이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여성적 성정체성을 숨기지 못할 경우엔 말이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그들은 지옥같은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며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과 편견, 때로는 폭력에 노출되곤 한다. 버텨내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나본 벤쫑들 중 어린 애들은 가능한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30살쯤 가까와지면 점점 더 숨기기 어렵게 된다. 복장도 어딘가 이상해지고 머리모양에 화장까지.  그러다가 40대쯤 되면서 누구 눈치볼 일 없어지게 되면 좀 더 복장과 머리모양이 여성스러워진다. 그리고 그들의 필생의 꿈은 성전환수술을 받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미용사의 일반적 수입으로는 그 정도 돈을 모으는 것이 거의 평생이 걸린다. 그래서 40대 후반 50대 초반이 되어서야 비로서 태국에 가서 수술을 받고 트랜스젠더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로 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여자처럼 변모하는 것에는 평생이 걸린다. 그래서 20년 전에 만나 알고 지내던 미용사가 50대 중반이 다 되어 비로서 여자의 모습을 하고 풀메이크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름 감동하곤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평생 겪어야 했던 혐오과 천대, 그 모든 어려움들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성정체성과 성적취향은 타고 나는 것이므로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게이가 되고 싶어도 절대 안되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엔 남성, 여성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위에 열거한 것처럼 수많은 종류의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다양한 성적 지향점과 성적 취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동성애자를 반대한다는 인간들 특히 기독교인들의 무지함에 기가 찰 수 밖에 없다. 흑인을 반대한다고 흑인이 백인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동성애자를 반대한다고 해서 그가 당장 이성애자의 세계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정말 다행스러워 해야 한다. 그들이 '성소수자'라는 것을. 그들이 다수를 차지했다면 오히려 성소수자인 당신들 이성애자들을 반대했을 지도 모르니까. 

 

2009년의 완쩌
2013년 엘리 아줌마 장례식에서 완쩌는 점점 더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2018년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 완쩌는 완전히 여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존재자체를 부정당하고 반대받는 심정이 어떤지 그래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최소한 평생을 빨갱이라고 비난받았던 사람들이라면 그래도 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인도네시아 벤쫑들의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벤쫑들도 있는데 그들은 성정체성의 문제를 차치하고 가문의 일원으로서 의무도 다해야 하는 처지다. 자손을 낳아 가문을 잇는 일이다. 이를 위해 이미 자카르타에서 다른 남자(게이)와 부부가 되어 사는 벤쫑들도 그런 순간이 오면 정상적인 여성과 정식 결혼을 하고 아기까지 갖는다. 죽어도 싫지만 끝내 해내고 마는 것이다. 물론 부인될 사람과 그 집안에는 어느 정도 양해를 구해 놓는다. 그리고서 부인은 고향집에서 아이를 양육하고 자신은 다시 자카르타의 동성애자 생활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부인과 자녀에 대한 생활비와 교육비 등 모든 비용은 평생 그가 책임진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산다. 저 위의 표에서 2번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오해받는 이유는 그들을 이리저리 분류하면서 호모섹슈얼, 동성애자, 양성애자, 항문성교자 등등 그들의 존재와 '성교행위'를 늘 연관짓기 때문이다. 즉 '동성과 섹스하는 놈'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부르는 건데 그렇다면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이성과 섹스하는 놈'이라고 부르면 기분 좋을까? 섹스는 살아가며 하는 수많은 활동 중 일부일 뿐인데 말이다.

 

여자들한테 아무렇게나 들이대는 놈들이 있듯이 동성애자들 중에서도 그런 이들이 있다. 문제는 들이댐을 당하는 사람들 중 동성애자가 아닌 '스스로 정상적'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큰 모욕이라도 당한 듯 씩씩거리며 동성애자들을 더욱 경멸하곤 한다. 그게 정말 그럴 일인가? 그렇게 까인 그 사람은 아무 상처도 안받고 내일 또 다른 사람에게 들이댈 거라 생각하는 거지?

 

정치적으로 극우꼴통이라 해서, 또는 좌파좀비라 해서 다 죽어 마땅한 나쁜 놈일 리 없다.

동성애자도 마찬가지다. 그저 나와 좀 다른 사람일 뿐이다.

 

물론 대충 이쯤 얘기가 진행되면 교회 장로쯤 되는 사람이 나서며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만약 네 아들이 게이가 되었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아무 문제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네 일이라면 그럴 수 있겠냐구?"

 

사실대로 말하지면 이런 논쟁이 이런 식으로 끝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럼 결국 나도 늘 하던 대로 대꾸해줄 수밖에 없다.

 

"너나 똑바로 사세요."

 

사랑은 사랑일 뿐

 

 

2020.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