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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고전 속에 관광재개 노리는 인도네시아
라부안 바조(Labuan Bajo)의 라부안은 ‘포구’라는 뜻이다.
350년간 이어졌던 네덜란드 식민지시대 끝물에 수카르노를 비롯해 많은 인도네시아 독립투사들이 유배당했던 격오지 플로레스 섬의 서쪽 끝 작은 바조 포구는 이제 동누사떵가라(NTT)라고 불리는 동부 인도네시아의 해양 관문이 되어 있다.
전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에 빠져들 당시 인도네시아 역시 외국인들에게 빗장을 걸어 잠갔고 그 결과 로컬 관광객에게 지난 10월 다시 문이 열리기까지 발리, 롬복, NTT 지역에서 관광산업 종사자 12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2개월 동안 내국인 관광객들이 다시 꾸준히 증가하면서 발리의 호텔들과 유명한 식당들에 손님이 들기 시작했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이 소비를 주도하던 이 지역 경제는 국경이 닫혀 있는 한 결코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한다. 이 지역 가이드들의 90%가 아직 현장에 돌아오지 못했다.
“경제관련 인사들에겐 이미 문이 열렸습니다. 이른바 이코노믹 코리더(Economic Corridor)죠. 이젠 투어리스트 코리더(Tourist Corridor) 차례입니다. 빈딴, 족자, 마나도, 반유왕이 같은 곳들도 철저한 방역에 힘쓰며 외국인 입국금지 해제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관광 의존도가 80%에 달하는 발리가 우선입니다. 곧 관계부처 회의가 열려 12월에서 1월 사이에 전면 해제가 아니라 특정 지역을 지정해 외국인 입국 허용 결정이 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21일 기행취재팀을 태우고 라부안 바조를 출발해 첫 목적지인 뿔라우깔롱(Pulau Kalong), 즉 박쥐섬을 향하던 씨사파리7호(Sea Safari VII) 피니시형 크루즈 선상에서 관광창조경제부 제2지역 여행마케팅 이사 시깃 위짝소노(Drs. Sigit W.)씨가 인도네시아 관광산업의 현주소를 설명했다. 코로나 방역에 애를 먹고 있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또 한편에서는 조속한 관광지 개방을 준비하며 앞서 10월엔 중국유학생협의회와 인도인 거류민 커뮤니티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발리와 인근 도서 관광지들 준비상황을 견학시켰다. 이번 11월 기행취재에는 한인뉴스와 자카르타경제신문, 유투버이자 인플루언서 조유리양, 요미우리 신문과 일본인 커뮤니티 신문 데일리 자카르타 등 한국과 일본 매체들이 참여했다.
붉게 물든 노을 속에 길게 누운 박쥐섬에서 날아오른 수만 마리의 커다란 박쥐들이 돛대 위를 스치듯 지나 일제히 플로레스 방향으로 향하는 장관을 보려고 십 수척의 관광선들이 인근 해역에 모여들었다. 다음날 새벽 빠다르 섬(Pulau Padar)에 상륙해 이 지역 관광지의 아이콘인 세 개의 해변들이 한 앵글에 들어오는 고지대에서 일출을 맞고 파도와 세월에 부서진 붉은 산호 조각들이 백사장을 붉게 물들인 핑크비치에서 느린 오전을 보낸 우린 그날 오후 코모도 섬에 닿았다.
짝짓기 기간이 끝난 지난 10월말 조사한 코모도 섬의 대형 도마뱀 개체수는 1,522마리인데 작년보다 200마리 정도 늘어난 수치다. 예전 한창 때 주말이면 2천 명가량 관광객들이 찾던 이곳은 국내 관광객에게 다시 개방된 후 2개월 만에 평일 200명, 주말 700명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그것도 코모도 1,200마리를 보유한 린차 섬이 공사로 문을 닫은 여파라고 한다. 사람들 발목을 잡아 오랫동안 관광객 발길이 뚝 끊기게 했던 코로나는 해양 관광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인도네시아에 온지 27년 만에 마침내 조우한 살아있는 코모도들은 내 반가움에 데면데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동누사떵가라의 한적한 관광지들과 달리 발리의 덴빠사르와 우붓은 좀 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서양인들도 많이 보였는데 모두 발리에 사는 이들이다.
“외국인 관광이 재개되어도 14일간 자가격리를 강제하는 한국에서 당장 예전 같이 많은 관광객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그 대신 소규모 팀들이 장기간 체류하면서 수준 높은 관광서비스를 즐기도록 하는 것이 우선의 목표입니다.”
시깃 이사는 라부안 바조를 출발하기 전날 밤, 신축 호텔 이나야 자야 코모도(Inaya Jaya Komodo)에서 한-일 매체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여행에 참여한 또 다른 관광창조경제부 직원은 이후 허니문 테마의 견학여행을 기획 중이라고 덧붙였다.
여행은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한 방역이 강조되었다.
출발 전날 자카르타 시내 끄망(Kemang)의 한 클리닉에서 코로나 래피드 테스트를 받았고 거기서 받은 음성결과지를 출발지인 수카르노-하타 공항은 물론 경유지마다 매번 제시해야 했다. 또한 모든 국내 여행객들은 eHAC Indonesia라는 앱을 핸드폰에 깔고 도착지마다 출발지와 비행편, 좌석번호, 현지 숙소 등을 입력해 공항 보건당국의 확인을 받았다. 관광지 모든 식당, 호텔, 가게에 입장할 때마다 손 세척, 체온검사, 좌석 띄어 앉기, 마스크 착용 등 비교적 철저한 방역 프로토콜을 가동했고 호텔 부페에서도 손님들이 직접 음식을 접시에 담지 않고 반드시 칸막이 너머 호텔 직원의 도움을 받도록 일련의 통일된 규칙들이 시행되고 있었다.
여가를 이용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최대한의 느긋함을 즐기려는 남국으로의 여행에 이젠 ‘방역’이란 키워드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피할 수 없는, 그래서 억지로라도 익숙해져야 하는 이 시대의 새로운 트랜드다. 한국인들에게 ‘원숭이 사원’으로 많이 알려진 우붓의 멍키 포레스트(Monkey Forest)에서 마스크를 하지 않은 건 원숭이들뿐이었고 4박5일을 함께 다닌 사람들의 마스크 안쪽 얼굴은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자카르타에서는 코로나 일일 신규확진자가 11월 중 몇 차례 5천 명 선을 넘으며 여전히 기승을 부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관광객 맞이를 준비하는 발리에서는 매 15일마다 덴빠사르 시내 주요 사거리들을 막고 신에게 공양하며 악한 귀신들을 제하는 힌두교 머짜루(Mecaru) 행사도 재개되었다.
하지만 발리의 신들에게도 코로나는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닌 듯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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