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기록

박쥐섬과 뿔라우 빠다르(Pulau Padar)

beautician 2020. 11. 22. 18:43

박쥐섬. 일몰시간이 가까워지자 그 인근으로 관광선들이 모여들었다.

 

빠다르 섬 (Pulau Padar)



라부안바조의 라부안은 항구라는 뜻이 쁠라부한(Pelabuhan)과 비슷하지만 규모는 그보다 작은, 즉 '포구' 정도의 의미다. 거기 도착하자마자 바로 피니시선 소형 크루즈를 타고 나섰으니 정작 라부안바조가 있는 플로레스 섬에 어떤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내가 플로레스에 대해 아는 것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워낙 오지였던 곳이라 파푸아의 보벤디굴처럼 네덜란드 식민정부에 밉보인 독립투사들이 곧잘 유배되던 곳으로 수카르노도 젊은 시절 옌데라는 곳에 잠시 유배되었다는 것과 내 파트너 릴리가 이곳에 유력한 니켈 광산들을 둘러보러 왔었다는 정도다.

라부안 바조를 출발해 그날 저녁 도착한 곳은 뿔라우깔롱. 석양에 물든 수평선을 배경으로 길게 누은 섬으로 울창한 정글 위로 수만 마리의 박쥐가 날아오르는 곳이다. 그렇게 섬 위를 어지럽게 날다가 내려앉을 거라 생각했던 박쥐 떼는 석양이 수평선 너머로 거의 다 넘어가자 섬으로부터 1~2킬로 족히 떨어진 곳에 닻을 내리고 있던 우리 배의 돛대 위를 지나 어디론가 힘차게 날아간다. 그 정도 거리에서 매우 크게 보이는 박쥐들은 실제로 사람 상체쯤 되는 크기일 것 같은데 선원들 말로는 그렇게 바다 위를 날아 플로레스로 간다는 것이다. 박쥐가 그런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동물이었나? 플로레스엔 박쥐섬에 없는 뭐가 있길래 밤마다 섬에서 날아오른 박쥐들이 플로레스로 가는 걸까? 그리고 그들은 언제 어떻게 다시 박쥐섬으로 돌아오는 걸까? 내셔널 지오그래피를 찍으러 간 데 아닌 만큼 그런 신비한 동물의 세계 비밀을 밝히는 일은 다른 전문가에게 맞기고 우린 이 여행의 취지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왼쪽의 인물은 요미우리 기자. 관광선들은 박쥐섬에서 날아오르는 수만 마리의 박쥐들을 관찰하러 왔다.



여기서 우리란 아시아투데이와 오피니언뉴스 그리고 해외 로케장소에 관심많은 한국영화산업 대리 격인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 자격으로 온 나와 자카르타경제신문 조현영 편집장, 유투버 인플루언서 조유리양 그리고 요미우리 신문 타케유키 히토코토 특파원, 데일리 자카루타 심붕의 오노 코타로 기자를 말한다. 우린 관광창조경제부가 기획한 Familiarization tour, 말하다면 기행취재를 온 셈이다. 깔롱섬으로 가던 21일(토) 오후 일본팀은 선상에서 먼저 시깃 관광창조경제부 제2지역 마케팅이사를 인터뷰했고 곧 이어 나도 그와 인터뷰를 했다. 여행의 취지와 아직 열리지 않은 발리 등 주요 여행목적지에 대한 개방일정과 조건 등을 물었다. 마침 그 인터뷰가 막 끝날 즈음에 배가 깔롱섬에 도착한 것이다.

그렇게 여행 첫날이 지나고 밤새 자카르타에서 끝내지 못한 일들을 정리하고 연락을 준비하던 분주한 밤을 지낸 후 다음 날인 22일 새벽 4시15분 선원들이 승객들을 깨워 파달섬 일출 투어를 시작했다. 정박한 배에서 보트로 옮겨타 도착한 파달섬은 삐죽삐죽 솟은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구불구불한 긴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라부안바조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세 개의 각각 다른 색깔 모래의 해변들이 동시에 한 앵글에 잡힌다는 그 유명한 곳이다. 문제는 나무계단 돌계단을 한참을 타고 올라가야 그 장면이 잡힌다는 것이고 내 저질체력으로는 거기까지 올라가려면 심장에 무리가 오는 걸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군시절이라면 40킬로그램 군장 매고도 어렵잖게 올랐겠지만 그건 30년도 전의 일이다. 라떼는~ 하고 얘기해야 할 정도의 옛날 일인 거다.

 

새벽부터 산행. 30여년 전 상무대를 떠나면서, 그리고 제3 땅굴에서 전역하면서 다시는 산을 타지 않으리라 맹세했는데.....

 


하지만 날렵한 일본팀은 팍팍 앞서갔다. 몸 관리를 잘한 저 친구들은 체력도 대단한데 80년대 하반기에도 인도네시아 주재했다는 그래서 도저히 나이가 감이 잡히지 않는(아무래도 내가 잘못 들었겠지. 암튼 98년 폭동전에 주재했던 건 분명한 것 같은데 그게 20대의 일이라면 현재 40대 후반쯤일 것이다) 타케유키 특파원은 체력 뿐 아니라 기럭지도 우월하고 무엇보다도 진지한 표정이 정말 잘 생겼다.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그는 맨 앞에 올라가 정상을 찍고 아직 중턱을 오르던 내 앞을 지나면서 한 마디했다. "조금 늦었어요. 정상에 올랐을 때 이미 해가 다 떠버렸거든요." 그럴 줄 알고 난 중턱에서 미리 일출을 찍었다^^


"This is my best height" 중턱에서 타케유키에겐 그렇게 엄살을 부렸지만 한국팀 두 여인들보다 덜 올라갈 수는 없었던 탓에 기어이 세 개의 해변이 보이는 높이까지는 올라갈 수 있었다.

반 죽어가는 배작가

 

이 지점에선 누가 사진을 찍어도 이렇게 나온다. 관광지 브로셔에 나오던 장면을 내가 똑같이 찍어 카메라에 담았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관광창조경제부 직원들도 함께 여행에 참여했다.

 

유투버 유리는 어떤 포즈를 취해도 멋있다.  나도 저런 20대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

 

저 왼쪽 위에 떠 있는 배가 우리가 타고온 씨사파리 7호(Sea Safari VII)

 

절벽에 선 산양?

 

아까 절벽에 서있던 노루가 해안에서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노루일까? 산양일까?

 

내려오면서 다리가 풀렸다. 


둘째날의 일정은 아직 많이 남았다. 핑크 비치 스노클링을 거쳐(난 스노클링을 찍는 편이지 하는 편은 절대 아니다) 코모도 아일랜드에 간다. 코모도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른다. 라구난 동물원인 따만미니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코모도를 어쩌면 직접 볼 수 있을지 모르나 크루즈 사무장은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코모도 도마뱀이 아니라 코모도 드라곤이라고 부르는 그 대형 파충류는 사실 우리처럼 보러 가는 사람이 없어야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번식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배에서 보내는 1박2일. 물어보니 일반 가격은 일인당 450불이라고 한다.

 



2020. 11.22 (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