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왜구소설' 코너를 비판할 자격 본문
대전 노은역 부근의 한 서점이 이렇게 서적 코너 이름을 바꾸었다는 기사에는 이 서점에 당신 선 넘은 것 아니냐며 비판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전화가 한동안 이어졌다고 전한다. 일본소설 코너를 '왜구소설' 로 코너명을 바꾸었기 때문이란다.
“IMF 당시 서점을 열 때부터 일본소설 코너를 만들었다. 일본의 수출규제조치가 시작되고 생각해보니 ‘우리가 별도 코너까지 만들어 소개한 건 너무 대우해준 게 아니었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나름 유치하게, 소심한 표현을 한 건데….” 서점 주인은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항의표시로 기존의 일본소설 코너를 왜구소설이라는 팻말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름없는 작은 서점의 이런 행동에 비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선 넘은 게 아닌가 싶다.
경향신문은 이렇게 보도한다......제기되는 비판은 그 ‘유치하게, 소심한 표현’이라는 것이 인종주의적이지 않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장에 꽂혀 있는 <1Q84>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최근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난징학살을 언급하면서 일본 극우세력의 공격을 받았다. 이런 작가들까지 싸잡아 왜구라고 한다면 책이 잘 팔린다고 혐한 코너를 만드는 일본 쪽과 뭐가 다른가”라는 비판이다.
하지만 일본 소재 대형서점들은 버젓이 '혐한류'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혐한서적 중 상당수가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저런 왜구짓 하는 왜구들 소설을 왜구소설이라 하는데 뭐가 큰 잘못인가?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여 늘 벤치마킹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에게 악감정이 있을 리 없지만 그가 일본인으로 태어난 것은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내 잘못이 아니며 그가 쓴 소설이 저 서점의 '왜구소설' 서가에 꽂히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인들이 혐한류 코너 유지운영을 당연하게 여기는 한 말이다.
그러니 일본의 혐한류 코너를 비판하거나 반박하지 못하는 인간들은 저 왜구소설 서가를 비판한 자격이 없다.
그리고 혐한류 코너를 반박한다고 해서 왜구소설 서가를 비판할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일본 가서 조국에서 살면 되는 것이다.
2020. 10. 25
참고: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250836021&code=960100#csidx7bb7d4579406a129136cd1a5179d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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