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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옛날이야기] 싱가폴에서 비자받기

beautician 2016. 10. 7. 21:55

 




지금까지 여권을 여섯 번 정도 바꾼 것 같다. 한번은 여권 중간에 추가 페이지를 한뭉텅이 더 붙인 적도 있었는데 그것마저 다 쓰고 또 여권을 갈아야 했으니 그거 다 계산해 보면 나도 하늘과 바다에 뿌린 돈이 적지 않을 듯 하다. 바로 얼마전에도 여권 유효기간이 거의 끝나 여권 재발급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자여권이 나왔다는 기사가 났다. 이번 여권의 유효기간 끝나기를 기다려 내가 전자여권을 가지고 다니게 될 날은 아직도 몇 년 더 후의 일일 듯 한다.

 
비자도 여러 번 받아 보았다. 예전 한국에서 일할 때 일본 비자를 받을 때마다 왜 얘들은 꼭 12일로 체류시한을 한정하는지 불만스러웠고 미국비자를 받을 때엔 10년짜리 비자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랬던 기억이 있다. 홍콩이 반환되기 전 한국에서는 오래도 시간 걸리던 중국비자가 홍콩에서는 반나절만에 나온다는 사실에 홍콩은 앞으로 중국 때문에 돈 벌 일이 창창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


웬만한 외국에 나가려면 비자를 받아야 하는 인도네시아는 몇년 전 형평을 맞추겠다며 인도네시아를 찾는 모든 관광객들에게도 정식 비자를 받도록 하겠다는 무대포성 정책을 발표하고 나서 있었고 관광업계의 집중포화를 받은 적이 있는데 발리 폭탄테러로 현지 관광업계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이런 논의는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인도네시아에 오더를 뿌리는 미국 바이어들은 물론 대부분의 유럽 바이어들도 인도네시아에 들어오기를 꺼려 거래선들을 싱가폴로 불러 상담하던 당시  대개는 고압적이기 쉬운 인니 대사관에서 누구나 다 비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도네시아 행을 포기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80-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에 여의도에 있는 주한 인니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 보고 영사확인을 받는 등의 업무를 해 본 사람이라면 그 분위기를 십분 이해할 것이다.

 

최근 수년간 시행되고 있는 방문객들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도착비자 시스템은 이런 번거로움을 조금은 덜어 준 셈이지만 공항 도착장에서 긴 줄을 서야 하는 부담감은 여전히 남는다.
 
인도네시아 비자를 내는 것이 마치 무슨 대단한 시험을 보러 갈 때처럼 부담을 갖게 하는 이유는 우선 신청서류를 작성하는 일 자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 신청서를 채우는 것만 20분 정도 걸렸으니 4인 가족의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은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작업이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작성한 신청서를 창구에 가져가면 무슨 대단한 보안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안도 들여다 보이지 않는 창구 유리 밑 구멍으로 손 하나가 나와 영수증을 내 주는 것을 보면서 마치 ‘총몽’ 이란 일본 만화에서 본 것처럼 사람 손이 달린 기계랑 얘기하는 듯한 착각이 들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사관이란 원래 외국에 있는 것이니 인도네시아에서 KITAS나 운전면허 만드는 것처럼 영수증도 나오지 않는 급행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점일 것이다
.

싱가폴에서 비즈니스 비자를 직접 받아본 적이 있었다. 관광회사를 사용하라는 여러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번 직접 부딪쳐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또 한번 치기를 부려 새벽 비행기로 날아가 주 싱가폴 인도네시아 대사관 문 열기가 무섭게 신청서 작성해서 창구에 들이 밀었다. 오래 전의 일이다. 싱가폴 달러 120불인가를 냈던 것 같다. 1년짜리 비즈니스 비자의 수수료는 그때나 지금이나 체류비자(Kitas 비자)보다 항상 더 비싸다. 오차드 거리를 왔다갔다 하며 시간을 때우고 다시 대사관에 돌아왔을 때 그동안의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내 여권에는 비자도장이 멋지게 찍혀 있었고 난 그날 밤 비행기를 타고 다시 자카르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공무원들도, 그 지긋지긋한 급행료 관행도, 싱가폴 같은 선진국에 나오면 확실히! 달라지는구나 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 순간이었다
.

2002년에도 체류비자(KITAS 비자)를 다시 내기 위해 다시 한번 싱가폴로 날아 갔다. 요번엔 가족들과 함께였고 여유를 좀 가지려 수요일 오후에 싱가폴 창이공항을 내렸다. 가족들을 싱가폴에 처음 오는 것이어서 차라리 며칠 머물면서 싱가폴과 인근지역의 구경을 시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아내와 함께 주 싱가폴 인니 대사관을 들어서며 혼자 화들짝 놀랐던 것은 인니 대사관이 금요일은 영사업무를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해 냈기 때문이었다. 멀쩡한 주중 하루인 금요일에 왜 영사업무를 보지 않는지는 물어보지 않아 알 길 없지만(아마도 숄랏 주맛-Sholat Jumat 이라 일컫는 이슬람 기도행사 때문이라 추측하기는 했다) 앞서 언급한 비즈니스 비자를 받으러 온 목요일 아침에도 만약 하루 늦게 왔다면 다음주까지 기다려야 될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오늘은 목요일. 그런 중요한 사실조차 잊어버리며 날이 갈수록 점점 기억력은 나빠지지만 아무튼 찬스만은 놓치지 않는 몸에 배인 동물적 감각(?)에 사뭇 흡족해 하면서 영사과에서 신청서 양식을 다 채우고 번호표 순서에 따라 창구에 서류를 내밀자 인디아 출신이 틀림없는 창구 직원은 퉁명스럽게 창구 유리창 위에 써붙인 공지문을 탕탕 두드린다


“각종 비자 처리시한 – 3. 급속 처리를 요하는 신청자는 모든 서류를 완비할 것”
 

3
!?!? 금요일과 주말은 근무를 하지 않으니 다음주 화요일에나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입안이 바짝 말라오지만 난 모든 서류를 완비하고 있다. 여권, 신청서, 거기에 사진도 박아 놓았고 인도네시아 이민국에서 받은 KITAS 비자 케이블 사본까지 첨부해 놓은 상태다


“제 서류는 완비되어 있어요. 오늘 오후에 비자를 찾을 수 없을까요?
 

창구직원은 대꾸도 하지 않고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댄다
.


Another stupid guy came. You handle him.
 

창구직원이 건내는 핸드폰 저편에서는 어떤 한국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왜 연락도 하지 않고 오셨어요? 서류는 창구에 접수시켰나요? 그럼 제가 지금 시간이 없는데 이따 저녁때 저희 사무실로 오세요.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는 여자에게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나는 ‘그런데 누구신가요?’ 라고 멍청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비행기표를 산 H관광과 제휴하고 있는 싱가폴의 L관광이란다. 인니 대사관에서 비자를 하루 만에 받으려면 꼭 자기들을 통해야 하는데 왜 직접 대사관에 나타나 나라망신을 시키냐는 투다. 난 마치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온 사람 취급을 받고 말았다. 당시 처리시한의 규정이 바뀐 것은 몇 달 된 모양이었지만 비자를 직접 받으러 싱가폴에 간다며 티켓팅을 할 때 H관광에서는 아무런 얘기도 해 준 바 없었고 만전을 기하려고 싱가폴의 인니 대사관에 전화를 했을 때에도 처리시한에 대한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물론,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할 말 없지만 이민국 공무원들 업무의 기본적 개념이 국민과 방문하는 외국인에 대한 서비스라면 날이 갈수록 더 나아지기는커녕 거꾸로 나빠지는 쪽으로 역행하는 서비스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내가 아는 것은 예전부터 L관광을 통하려면 실제 대사관의 비자수수료의 2배에 가까운 미화 150불을 내야 한다는 것이고 나는 L관광을 통하지 않고도 예전에 비즈니스 비자를 받은 경험이 있으니 굳이 비싼 수수료를 내면서 L관광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리라는 것이었다. 창구직원은 나를 재쳐 놓고 다음 번호를 부르고 그동안 인도네시아에서 도대체 뭘 하느라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냐는 듯 날 째려보는 아내의 눈초리는 점점 더 냉랭해진다


그날 오후 어느 호텔 1층에 있는 L관광 사무실에서 전화의 여자를 만나 일인당 미화 150불의 수수료를 내고 비자 스티커가 붙은 여권들과 함께 마치 시장통에서 끊어주는 것 같이 날린 글씨의 간이계산서를 받는 기분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미리 연락하고 오면 그 비용으로 공항 픽업에 시내 관광, 출영까지 시켜 주고 당일 비자발급을 위한 모든 수속은 알아서 진행하지만 아무리 모든 수속을 내가 직접 했더라도 수수료는 정액제이니 미화 150불에서 절대 한푼도 깎아 줄 수 없다는 여자의 말은 이틀 후 비행기를 타고 자카르타의 돌아올 때까지도 귓전을 맴돌며 가슴을 후벼 팠고 그 예기치 않은 일격의 후유증은 내 여권에 붙은 인도네시아 비자 스티커를 볼 때마다 생생히 되살아 나는 듯 했다.


서비스업에 있다고 해서 영리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지만 서비스업의 기본은 그 서비스를 통해 상대방을 만족시켰기 때문에 그 대가로 이익을 취하는 것이라 생각해 왔다. 그래서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서비스는 근본적으로 서비스라 부를 수 없는 것이며 기어코 그걸 서비스라 부르고야 말겠다면 그건 사기가 되는 것에 다름 아니라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자신의 영리를 위해 마음대로 국가와 지역의 정책, 허가 등을 좌지우지하려는 인도네시아의 공무원들은 국민과 외국손님들을 대상으로 야바위를 치고 있는 것이고 덩달아 일부 관련업체들도 이에 크게 고무받아 무당 널뛰기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정말 아쉬운 것은 싱가폴에서 마저 인도네시아에 관련된 것이라면 급행료를 지불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고 새삼 깨달은 것은 대사관은 모름지기 해당 국가의 영토라 그 안에 오래 발을 들이고 있는 사람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본국의 체질을 닮아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타까운 것은 이곳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사업할 때 내 싱가폴 경험같은 황당한 경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두뇌 용량을 불문하고 우린 모두 만물박사, 수퍼맨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그러기 위해 안테나를 높이 세워 두어야 하지만 가용한 송신국에서 보내오는 전파는 낙도 초등학교 도서실의 책장처럼 썰렁하기 그지없고 다른 사람들, 후배들의 어처구니없는 실패와 좌절을 충분히 비켜 가도록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도 대부분 누군가의 경험 속에, 책상서랍 속에 자물쇠 채워져 꼭꼭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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