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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근대사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23)

beautician 2023. 9. 23. 11:08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23)

 

 

당시 양측엔 휴전이 발효되고 있었습니다. 디포네고로는 레모 까말에서의 회합을 마친 후 외곽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의 군대와 합류해 사카 마을(desa Saka) 북쪽 끄짜왕(Kecawang) 인근에 주둔했습니다.

“나보고 자기 진영에 들어와 달라고?”

바타비아의 드콕 장군은 펄쩍 뛰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적진에 들어가 회담을 가질 생각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디포네고로를 본진에 끌어들여 사로잡으려 했던 만큼 자신도 적진에 들어가면 같은 신세가 될 거라 생각했던 것이죠.

“휴전협상은 우리 본진에서 열어야 하오. 그러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동원하시오!”

드콕 장군의 이와 같은 명령을 받은 클레이런스 대령은 머리를 싸매고 방안을 강구해야만 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가 처음 레모 까말에 나타났을 때 즉시 달려들어 체포했어야만 했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죠.

그때 레모 까말 외곽엔 디포네고로군의 대부대가 전투준비를 갖추고 대기하던 중이었습니다. 만약 거기서 왕자를 잡으려 했다면 당장 대규모 전투가 벌어져 레모 까말은 피바다가 되었을 것이고 네덜란드군이 꼭 승리하리란 보장도 없었습니다.

만약 드콕 장군이 스스로 목숨을 걸지 않으면서도 디포네고로를 잡으려 한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숨을 걸어야만 할 터였습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클레이런스 대령은 결국 자신이 목숨을 걸어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다음날 아침 전령을 먼저 끄짜왕으로 출발시켜 자신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고 한 시간 후 자신은 호위병 몇 명만을 데리고 직접 그 뒤를 따랐습니다.

“술탄 전하, 드콕 장군의 도착을 기다리는 동안 저희도 레모 까말에서의 결례를 사죄하기 위한 선물로서 저희 스마랑 군영에 보호하고 있는 왕후 전하와 왕자님들을 모셔오려 합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의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전쟁을 시작한 이후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기로 수십, 수백 번 맹세한 그였습니다. 그래서 삼촌들과 이복동생들, 왕가의 친인척들과 귀족들이 족자 끄라톤과 네덜란드군의 편에 서 있던, 아군에 있든 그 생사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죠. 하지만 그 역시 아내와 자식들은 누구 못지 않게 애틋하고 그리웠던 것입니다.

“물론, 그분들은 안전하십니다. 하지만 전하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상대인만큼 그분들을 모셔오는 것은 총독조차 결정할 수 없어 어쩌면 본국을 설득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드콕 장군께서 이번 회담에 맞춰 전하께서 그분들과 재회할 수 있도록 바타비아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해준다면 감사한 일이오.”

디포네고로 왕자의 목소리엔 진심이 담겨 있었으므로 클레이런스 대령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왕후전하와 왕자님들은 스마랑에서 오시니 마글랑에 먼저 도착하십니다. 그분들을 이곳 끄짜왕까지 모시는 것은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니 마글랑 가까이의 머노레(Menoreh) 정도까지 나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곳은 전하의 대군이 주둔할 공간도 충분하고 저희들 발품도 크게 줄일 것입니다.”

 

머노레는 끄짜왕이 있는 뿌르워레죠보다 훨씬 더 마글랑에 가깝다

 

머노레에는 네덜란드가 그간 스텔셀 요새작전을 통해 촘촘한 간격으로 지은 요새들 사이에 넓은 개활지가 있고 요새들을 연결하는 몇 개의 통신로가 그 근처를 지나고 있었으므로 유사시 포위작전을 유리하게 펼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설령 머노레에서 회합을 갖게 되더라도 끄짜왕과 같이 ‘적진 한복판’이라는 불리한 위치는 아닐 터였습니다.

“귀공의 노력에 답해 우리가 머노레로 이동하는 정도의 성의는 당연히 보여줄 수 있소.”

뭔가 좀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울 것이라 생각했던 디포네고로는 의외로 순순히 듣고 싶은 대답을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적진에 들어가며 식은땀을 흘리며 초초해 마지 않았던 클레이런스 대령과 그 호위병들은 소기의 성과를 안고 무사히 끄짜왕을 나와 마글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디포네고로군이 머노레에 도착한 것은 1830년 2월 21일의 일입니다. 그러나 드콕 장군은 아직 마글랑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명백히 시간을 벌려는 것이었죠. 그 사이 드콕 장군은 두페론 중령(Letnan Kolonel Du Perron)의 부대에게 마글랑의 경계강화를 지시했고 중부 자바 다른 지역에 배치된 부대들을 비밀리에 끌어 모았습니다. 회담이 결렬될 경우 디포네고로와 그 부대를 신속히 제압할 요량이었죠. 드콕 장군은 본격적인 회담을 시작하기도 전 배신을 획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드콕 장군이 그렇게 시간을 끄는 동안 1830년 3월 5일 급기야 라마단 금식월이 시작되었습니다. 깊은 신앙심을 가진 디포네고로 왕자는 술탄으로서 금식월을 지키며 또한 수하들을 위해 종교의식을 주관해야 했습니다. 그는 이미 하염없이 지연되고 있는 회담에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진심을 담은 성스러운 금식월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이슬람력의 월 이름 (라마단은 9월)

 

“이왕 금식월에 접어든 이상 회담을 라마단 이후로 늦춰주시오.”

이런 디포네고로 왕자의 의향이 네덜란드 진영에 전달되자 드콕 장군은 비로소 조금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라마단 중엔 전투를 하지 않는단 말이지?”

그가 머노레의 디포네고로군 진영에 들어온 것은 라마단이 시작된 지 며칠 후인 3월 8일의 일이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드콕 장군에게 정중했고 심지어 친절하기까지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축적된 정보에 따라 라마단 중 절대 안전할 것이란 계산을 모두 마친 드콕 장군은 일생일대의 도박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행동거지가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디포네고로 왕자는 적군 본진에 들어온 드콕 장군이 나름 큰 용기를 보인 것이라 순수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어서 오시오, 드콕 장군. 금식월 중이라 차를 대접하지 못함을 용서해 주시오.”

음력과도 또 다른, 이슬람력의 9월인 라마단 금식월 중엔 해가 떠있는 동안 음식은 물론 물도 입에 대지 않는 이슬람의 전통을 디포네고로 진영에 들어온 드콕 장군도 따라야만 했습니다.

“좀 더 일찍 왔어야 했지만 바타비아에서의 일이 발목을 잡았소. 하지만 회담에서 피차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한 준비였으니 술탄께서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라오.”

그의 말투에서 디포네고로 왕자가 옛날 조부 하멩구부워노 2세 앞에서 온갖 참람한 말을 떠들어 대던 댄덜스 장군을 떠올린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드콕 장군을 환대했습니다.

“비록 다른 신과 다른 선지자를 섬긴다 하지만 장군께서도 자바를 잘 아시니 오감의 욕구를 절제하는 무슬림의 라마단 전통도 익숙하시리라 믿소.”
“물론이오.”
“하지만 지난 5년간 피차 그리 많은 병사들이 죽어나갔는데 우리가 협상을 시작한다 해서 당장 화기애애한 자리가 되긴 힘들지 않겠소? 그러니 본격적인 협상은 라마단이 끝나고 샤왈(이슬람력 10월)에 들어선 후에 속개하는 것이 좋을 듯한데, 장군께서는 어떠시오?”

드콕 장군을 잠시 등 뒤의 클레이런스 대령을 돌아보더니 다시 왕자를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레노 까말에서는 내가 실수했으니 이번엔 술탄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죠. 하지만 이번엔 내가 귀 진영에 들어왔으니 이둘피트리(Idul Fitri – 금식월 직후 샤왈월 1일의 축제) 이후의 회합 때엔 술탄께서 마글랑으로 왕림해 주시길 기대하오.”

디포네고로는 즉답을 피했습니다. 그 대답이야말로 그가 기다리던 것인데 말입니다. 드콕 장군이 다시 클레이런스 대령을 돌아보며 손짓하자 멋진 갈기와 윤기 흐르는 털에, 번쩍이는 안장을 등에 얹은 아라비아 종마 한 마리가 네덜란드군 병사의 손에 이끌려 왕자 앞에 나왔습니다. 말 옆으로 다른 네덜란드군 병사들이 커다란 상자도 한 개 내려놓았습니다.

“앞서의 결례를 사과하는 뜻에서 바타비아에서 가져온 선물이오.”

상자 안에는 10,000 굴덴의 은화가 담겨 있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아름다운 말을 어루만지며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날의 간단한 수인사와 덕담이 오고가는 동안 드콕 장군은 내내 마음이 개운치 못했습니다. 선물공세도 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우 같은 놈이 우리 마음을 읽기라도 한 모양이군.”

마글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드콕 장군은 그렇게 툴툴거렸습니다. 그가 그토록 고대한 마글랑 회담 요구에 대해 디포네고로 왕자가 끝내 확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대답을 듣기 위해 나중에 클레이런스 대령이 몇 번씩이나 머노레를 방문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금식월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시기에 해질녘이 되어 디포네고로군의 진영엔 또 다른 네덜란드군 장교가 찾아왔는데 그 모습에 모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네덜란드 군복을 입고 있던 그는 디포네고로군 전(前)사령관 센똣 쁘라위라디르죠였습니다.

그는 디포네고로 왕자의 네 번째 부인으로 일찍이 마디운에서 아버지 라덴 롱고와 함께 네덜란드군에게 살해당한 라덴 아유 찌뜨로와티의 동생이었으므로 왕자의 처남이기도 했습니다. 그를 다시 만난 디포네고로는 만감이 교차했지만 일단 부까뿌아사(Buka Puasa) 행사에 그를 초청했습니다. 부까뿌아사란 일몰 시간에 맞추어 하루의 금식을 마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행사입니다.

“술탄 전하, 신념을 굽힌 것에 대해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망꾸부미 왕자님도 그렇게 놓아 보내드리지 않으셨습니까?”
“잘 모르면서 그분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거라. 게다가 그분은 최소한 투항하면서 족자 시내를 자랑스럽게 행진해 들어가진 않으셨다.”
“전하께서 무슨 말을 하셔도 난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제가 온 것은 단지 하나의 약속과 하나의 소식을 전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삶은 감자와 싱콩 뿌리(카사바) 밖에 없는 식사를 나누면서 디포네고로 왕자는 센똣의 마음 속을 가늠하듯 눈을 가늘게 떠 보았습니다.

“약속이란 마글랑에서 전하의 안전을 제가 보장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는 약속할 수 있는 지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마글랑에 가실 때 안전을 걱정하실 필요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왜 내가 마글랑에 갈 거라 확신하는가? 디포네고로가 그렇게 묻는 듯한 표정을 짓자 센똣은 이에 대답하듯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소식이라 함은, 제가 여기 오기 전, 먼저 스마랑을 들러 왕후전하와 조카님들을 뵈었다는 것입니다.”

센똣은 디포네고로 왕자의 미간이 들려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 오는 길에 함께 모셔왔어요. 왕후전하와 조카님들은 지금 마글랑에 와 계십니다.”

디포네고로는 표정에 진심을 비추지 않으려 전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밀려 올라오는 반가움과 안도감을 센똣은 어렴풋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인들에게 늘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디포네고로 왕자가 라덴 아유 렛나닝시에 대해 품고 있던 깊은 애정을 측근들 중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 센똣 역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안전 역시 저와 클레이런스 대령이 함께 보장하오니 부디 마글랑에 들어오셔서 이둘피트리를 그분들과 함께 보내세요.”

이둘피트리(Idul Fitri)란 아랍어에서 차용한 단어로 라마단 금식월이 끝난 다음날, 즉 샤왈월의 첫날을 칭하는 것으로 한국의 추석처럼 산지사방에 흩어져 살던 가족 친지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축제이자 잔치날입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르바란(Lebaran)이라고도 부르죠. 센똣은 그날 이후 더 이상 부까뿌아사에 초대받지 못했지만 사절단으로 함께 온 네덜란드군 장교, 병사 몇 명과 함께 디포네고로군 병영 내에 장소를 얻어 머물렀습니다. 디포네고로가 마글랑으로 간다면 센똣 일행은 그 일행의 길잡이로 선두에 설 참이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