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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22) 본문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22)
제7 장 마지막 라마단 – 운명의 마글랑 회담
사실 휴전협상이 최초 시도된 것은 1827년 중반부터였습니다. 당시 드콕 장군은 영국인 상인 윌리엄 스타버스(William Starvers)와 아랍계 출신인 알리 칼리프(Ali Chalif)를 통해 디포네고로 왕자와 비공식적인 소통경로를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꼼페니의 드콕 장군께서는 왕자님, 아니 술탄 전하께서 족자 술탄국의 왕좌에 올랐다면 이 전쟁은 애당초 벌어지지도 않았을 거라고 탄식하십니다. 지금이라도 당연히 술탄 전하만의 왕국과 끄라톤을 가지셔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그러니 이 전쟁을 멈춰 주시면 자바의 어느 땅이든 떼어 드린다 하십니다. 그 보다 더 큰 사례도 하실 것입니다. 드콕 장군께서는 네덜란드 동인도군뿐 만 아니라 술탄 전하를 따라 봉기한 자바의 군대 역시 이 전쟁에서 더 이상 피흘리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술탄 전하, 그리고 유럽인들도 알고보면 다 말이 통하는 인간들입니다. 피부색과 종교를 뛰어넘어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는 사람들이죠. 저희처럼 국가와 인종을 뛰어넘어 정직하게 동업하는 파트너가 될 수도 있잖습니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파산한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스타버스와 칼리프는 디포네고로 왕자의 사령부 막사에서 아직도 ‘꼼페니’란 단어로 총독부를 지칭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워털루 전쟁에서 쓰였던 구형 화포를 유럽에서 싣고 와 팔려 하던 자리였습니다. 혀에 꿀이라도 바른 듯 술술 흘러나오는 달변에 디포네고로 왕자는 피식 미소를 흘렸습니다.
“그토록 네덜란드를 옹호하는 분들이 어찌 우리에게 화포를 팔러 오신 거요? 우리 진영을 나서면 네덜란드군에게 잡혀 처형이라도 당하는 것 아니오?”
“술탄 전하, 저희들은 정치를 모르는 장사치들일 뿐입니다. 저희들이 무기를 팔러 다니는 것은 저희 무기를 산 군대가 결국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죠.”
“하하, 그대들을 전선으로 내몬 신념의 이름은 신앙이나 애국심이 아니라 돈이 아닌가 싶소만.”
디포네고로 왕자는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곧 정색을 했습니다.
“드콕 장군께서 내게 땅을 떼어주신다 하셨다면 아마도 큰 착각을 하신 것 같소. 자바땅의 주인은 자바의 왕국들이지 네덜란드가 아닌데 어찌 그에게 자바땅을 떼어줄 권리가 있다는 것이오? 오히려 네덜란드는 북부 해안지대의 점령지들을 즉시 자바의 왕국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이고 만약 이 땅에 계속 머물겠다면 모두 할례를 받고 이슬람으로 개종해야 할 것이오.”
유들유들한 미소로 무장하고 있던 스타버스와 칼리프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가 제시한 전쟁종식의 조건들은 강경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것으로도 모라자 디포네고로 왕자는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습니다.
“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네덜란드인들이 자바땅에서 살고 싶다면 굳이 쫒아내거나 위해를 가하진 않을 것이오. 하지만 그들의 상업행위는 더 이상 허용할 수 없소. 네덜라드의 이익을 위해 우리 백성들을 착취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단 말이오.”
기독교인들인 네덜란드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할 리 없었지만 이것은 디포네고로 왕자가 이슬람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뿐 아니라 점령지 반환이나 상업행위 금지 역시 결코 네덜란드가 수용할 리 없는 조건들이었습니다.
마글랑의 네덜란드 본진으로 돌아온 두 상인에게서 그러한 보고를 받은 드콕 장군은 언짢은 표정을 지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디포네고로 왕자가 그런 추상적인 목적만으로 자바 전역의 봉기를 일으켰을 리 없다 믿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디포네고로 왕자에게 수 차례 서한을 보내 그를 회유하며 전쟁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집요하게 물었죠. 들어줄 만한 조건이라면 대충 절충을 보고 이 소모적인 전쟁을 빨리 끝내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디포네고로는 “자바섬에 이슬람 지도자가 다스리는 독립국가를 세우는 것이 이 전쟁의 목표”라고 답했습니다. 드콕 장군이 원하던 대답도, 들어줄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디포네고로 왕자는 드콕 장군에게 보낸 자바어 서한에서도 다음과 같이 자신의 뜻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비쳤습니다.
친애하는 드콕 장군에게
내가 가진 진의가 무엇이냐는 장군의 질문에
난 이 자바땅 전역에 이슬람을 바로 세우려는 것이라 답하겠소.
당신이 진실로 이 자바 땅의 이슬람을 훼손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나 역시 당신과 기꺼이 강화할 용의가 있소.
하지만 당신은 그 의지를 먼저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오.
그는 이슬람을 바로 세울 뿐 아니라 자바땅에 이슬람국가를 세우는 것을 자신의 궁극적인 책임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당시 막 메카 순례를 떠나려던 끼아이 뻥훌루(Kyai Penghulu)라는 이슬람 학자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완곡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약속해 주시오. 당신이 정말 메카에 닿는다면,
그래서 거기서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말이요.
혹시 노력 끝에 거기서 당신이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다면 부디 내게도 알려 주시고,
모든 이맘(Imam)들에게 기도를 부탁해 내 희망이 선지자 무하마드에게 전해지게 해 주오.
알라의 힘을 입어 더욱 강해지도록 전력을 다해 기도해주오.
자바땅이 알라의 발앞에 입맞추는 신의 나라가 되도록 빌어 주오.
정녕 신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뻥훌루여, 속히 다시 돌아와 주시오.
이 두 편의 서한에서와 같이 디포네고로 왕자는 자바섬에 평화로운 이슬람국가를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스타버스와 칼리프를 통한 첫 휴전 제의가 있은지 3년이 지난 1830년의 전황은 전쟁 초창기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스텔셀 요새작전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며 승기를 잡은 네덜란드는 이제 거드름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마글랑으로 들어와 휴전조건을 협의해 봅시다. 설령 회담이 결렬되어도 디포네고로 왕자와 그 일행의 무사귀환을 보장하겠소.”
몇 년 전 디포네고로 측에서 꺼내들었던 것과 똑같은 협상 조건을 네덜란드 측은 조롱이라도 하듯 들이 밀었습니다. 그러나 디포네고로 왕자는 당시 드콕 장군처럼 그 요구를 피하려고 온갖 이유를 갖다대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1830년 2월 16일 지금은 뿌르워레조(Purworejo) 지역으로 분류되는 레모 까말(Remo Kamal)이라는 곳의 회담장에 디포네고로 왕자가 소수의 호위대만을 거느리고 홀연히 나타났으므로 네덜란드군은 허를 찔린 듯 놀라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이날의 회담이 진전을 보지 못한 이유는 디포네고로 왕자의 상대로 나온 클레이런스 대령의 지위가 격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난 자바땅의 술탄으로 내 위로 아무도 모시고 있지 않소. 그런데 네덜란드군의 일개 장군도 아니고 자기 머리 위에 수많은 상관들을 이고 있는 이가 협상의 대표로 나와 휴전조건을 따지겠다는 거요? 여기서 내가 내린 결정을 당신 상사들에게 추인받겠단 거요? 당신들의 교만함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란 말이요?”
디포네고로 왕자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그 기저에 네덜란드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드콕 장군의 오른팔이라 자부심을 갖고 있던 클레이런스 대령은 자바 전쟁을 처음부터 겪어온 베테랑이었고 나름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도 족자 끄라톤에서 술탄과 똑같은 의자에 앉는 네덜란드의 ‘장관’급 인사입니다. 술탄인 당신과 협상하는데 하등의 하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나와 내 병사들이 이 협상에 나오기 위해 목숨을 건 것처럼 자신의 목숨을 건 클레이런스 대령, 당신의 용기는 나 역시 높게 평가하오. 하지만 내게 협상요청을 한 자는 당신네 드콕 장군이었소. 우리 진영으로 들어와 협상하자 할 때 무서워도 엄두도 못내던 그 자가 이젠 자기 진영에서도 내가 무서워 꼬리를 감춘단 말이오?”
“자바 왕국의 술탄들을 네덜란드군의 대령급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임을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내 계급과 직위라면 충분히 격을 맞춘 셈이고 난 모든 전권을 가지고 여기 온 것이오.”
디포네고로 왕자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는데 그 목소리에는 결기가 가득했습니다.
“술탄의 왕좌를 감히 당신들 계급장으로 저울질하려 들지 마시오. 지금 당신 목을 날려버려도 당신 자리는 얼마든지 다시 채워질 것 아니오? 그런데 그동안 당신들이 날 잡으려 그토록 애쓴 이유가 뭐요? 날 잡으면 누구도 그 자리를 채울 수 없기 때문 아니오? 그런데도 같은 급이라고? 본디 자바의 술탄들은 당신네 본국 국왕과 같은 지위인 거요. 그러니 자바땅의 술탄이 드콕 장군 정도를 만나겠다 수락했으면 당신들은 감지덕지했어야 해요. 클레이런스 대령, 당신에겐 좀 가혹한 말이겠지만 심해의 고래가 어찌 민물 가물치 한 마리와 바다의 비밀을 논하겠소?”
실제로 네덜란드가 술탄들에게 본국 왕립 육군의 군복을 입히고 대령 계급장을 달아 주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멩꾸부워노 5세도 장성한 후 네덜란드군 대령 계급장을 달게 되고 그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1945년 서부 깔리만탄의 주도 뽄띠아낙의 하미드 2세도 술탄 등극과 함께 네덜란드 왕립군 대령으로 임명된 사례가 관찰됩니다.
다음 세기에 이르도록 동인도의 술탄들을 네덜란드군 장성들의 수하 정도로 여기는 식민지 종주국의 시각은 족자 술탄국의 성립과 거의 동시에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왕가의 왕자들은 초급장교로 간주되었고 앞서 몇 차례 소개되었던 족자 끄라톤 경비대장 출신 위로네고로 왕자는 그의 혈통과 활약에도 불구하고 겨우 중령까지 진급했을 뿐입니다. 디포네고로군 사령관이었던 센똣조차 끄라톤에 들어가 소령 계급장을 받아든 것을 앞서 이미 기술한 바 있습니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 자리가 무산된 것은 분명 당신들의 책임이오. “
클레이런스 대령은 네덜란드 측의 예단이 너무 물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디포네고로 왕자를 자바땅의 일반 왕국 술탄들, 또는 그보다 훨씬 아래 레벨로 얕잡아 보았고 디포네고로 왕자 자신도 그 상황을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드콕 장군은 그때 공교롭게도 바타비아에 가 있었습니다. 물론 어쩌면 고의였을 지도 모르죠. 당시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네덜란드가 이 회합을 디포네고로 왕자의 무조건 항복으로 가는 일종의 요식행위 정도로 여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클레이런스 대령은 디노네고로 왕자가 전혀 항복할 의사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드높은 자존감 앞에서 주제넘게 오만을 떨다가 자칫 일을 그르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술탄 전하, 드콕 장군께서는 바타비아에 가신 것은 총독부의 급한 소환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대신 나온 것이니 너무 노여워 마시기 바랍니다. 드콕 장군은 곧 돌아올 것이니 얼마간의 말미를 주시길 바랍니다.”
클레이런스 대령의 말에 디포네고로 왕자는 또 다시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회합을 속개하려거든 끄짜왕(Kecawang)에서 합시다. 우린 그 근처에 머물 것이오. 라마단(Ramadhan)이 다가오고 있으니 너무 늦진 않길 바라오.”
클레이런스 대령의 말에 디포네고로 왕자는 또 다시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회합을 속개하려거든 끄짜왕(Kecawang)에서 합시다. 우린 그 근처에 머물 것이오. 라마단(Ramadhan)이 다가오고 있으니 너무 늦진 않길 바라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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