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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근대사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6)

beautician 2023. 9. 16. 11:20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6)

 

 

 

이쯤 되자1825 8 7 드콕 장군은 양자 협상을 요구하는 서한을 서둘러 디포네고로군에 보냈습니다. 네덜란드로서는 당장 전쟁을 멈추게 하진 못하더라도 시간이라도 벌어야 상황이었죠. 그런데 서한엔 대담하게도 이런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자발적으로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는 자들은 신분의 귀천과 지은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사면해 것이다

 

편지를 함께 열람한 고아슬라롱의 디포네고로 왕자, 망꾸부미 왕자, 끼아이 모조 등은 실소를 터뜨리며 조요꾸수모 왕자(Pangeran Joyokusumo) 수르옝로고 왕자(Pangeran Suryenglogo)에게 강경한 답신을 쓰도록 했습니다

 

네덜란드군이 무장해제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길을 막지 않겠지만 계속 알라를 모욕하고 왕국을 침탈한다면 알라의 뜻에 따라 그대들에게 불지옥을 선사할 것이오. 불행한 파국을 피하기 위해 정녕 화친을 원한다면 당신의 고아슬라롱 방문을 환영하며 신께 맹세코 당신과 일행들의 안전을 보장하겠소.’

 

회신을 받은 드콕 장군의 얼굴이 붉그락푸르락 했습니다. 그는 슬라롱의 적진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갈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동인도 네덜란드군 총사령관인 내가 저들 진영에 들어간다면 과연 저들이 가만히 같은가?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뻔한 적진에 내 발로 걸어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오!”

 

그는 참모들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자기 스스로 디포네고로 왕자에게 자기 본진에 들어와 협상하자 말하게 되리라곤 그때 아직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디포네고로군의 기세가 점점 커지자 드콕 장군은 자바 바깥에서 근무하던 장교들과 부대들을 불러들여 자바 전선에 서게 했습니다. 그들 술라웨시에서 불려온 노련한 반게인 장군(Jenderal Van Geen) 스마랑에서 세랑 왕자(Pangeran Serang) 부대를 압박해 들어갔습니다. 세랑 왕자는 수꼬와티(Sukowati) 진군해 까르토디르쟈(Kartodirja) 부대와 함께 렘방(Rembang), 블로라(Blora), 보조느가라(Bojonegara) 등의 농민군을 이끌고 있었는데 스마랑에서 벌어진 반게인 부대와의 전투에서 까르토디르쟈가 다리에 총을 맞고 적에게 사로잡히자 수세로 몰려 마디운으로 후퇴했다가 슬라롱에서 디포네고로 왕자와 합류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세랑 왕자님!”

 

슬라롱의 본진에선 디포네고로 왕자는 물론, 끼아이 모조와 망꾸부미 왕자 디포네고로군 수뇌들이 모두 나와 병사들을 인솔하고 들어오는 세랑 왕자를 대대적으로 환영했습니다. 계속된 전투로 너덜너덜해져 있었지만 세랑 왕자는 믿음직한 미소로 그들의 환대에 답했고요. 디포네고로의 삼촌 뻘인 그는 이후에도 눈부신 활약을 했습니다. 

 

네덜란드군 클레이런스 대령

 

드콕 장군은 디포네고로의 슬라롱 본진을 포위하려 했지만 먼저 스마랑, 바글렌, 꺼두, 반유마스 마디운, 수라카르타 등지에서 벌어진 농민군의 저항에도 맞서지 않을 없었습니다.

 

디엘 중령(Letkol Diell)! 자네는 반유마스의 반군들을 진압하고, 클레이런스 중령(Letkoll Cleerens) 자네는 뜨갈과 뻐깔롱안으로 나가 적들이 이상 진출하지 못하게 하시오!”

사령관 각하, 그렇게 군대를 나누면 슬라롱의 디포네고로군 본진을 병력이 얼마 남지 않습니다. 일부 지역을 잠시 포기하고 슬라롱 공격에 집중하심이….”

적들이 우리 배후를 따라잡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요. 저들을 방치하면 우리가 슬라롱에서 섬멸전을 벌이는 동안 족자를 동서 양쪽에서 압박을 받게 될 것이오.”

 

디포네고로 왕자의 봉기에 동조해 자바 전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백성들의 반란은 네덜란드군이 자바섬 밖에서 힘겹게 소환해온 병력들을 적절히 분산시키며 디포네고로군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1825 10 2일과 4일에 대대적인 슬라롱 공격이 감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디포네고로는 미리 공격정보를 파악해 한발 앞서 덱소(Dekso) 본진을 옮겼고 부녀자들과 노인, 아동들은 수웰라(Suwela) 지역으로 소개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텅텅 슬라롱에 도달한 네덜란드군은 아무 것도 없었으므로 디포네고로군의 정보력과 기동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없었습니다. 디포네고로가 심어놓은 눈과 귀가, 산과 들은 물론 그들의 부대 안에도 있을 것이란 의구심이 네덜란드군 고위 장교들 사이에 팽배했습니다. 디포네고로는 사이 덱소에 본진을 갖추고 부대를 재편하면서 다음 전투를 준비했습니다.

 

덱소

 

1825 디포네고로군은 이모기리를 공격하던 네덜란드군을 격파했고 족자술탄국 동쪽 지역에서는 뚜먼궁 수로네고로(Tumenggung Suronegoro) 이끄는 군대가 네덜란드군 방어선을 무너뜨리며 많은 소총과 화포들을 노획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족자 술탄국 서편에서는 전열을 정비한 네덜란드군이 덱소의 디포네고로군 본진을 포위해 들어왔습니다. 치열한 방어전에서 적잖은 인명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디포네고로군은 네덜란드의 예봉을 막아냈습니다.

 

쁠레레드(Plered)1677년 마두라의 뜨루노죠요 왕자가 이끈 반란군에게 함락되기 전까지 마타람 까르타수라 왕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왕가의 인물인 디포네고로 왕자에게 매우 의미깊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디포네고로는 1825 쁠레레드를 손에 넣은 몹시 기뻐하며 덱소의 본진을 쁠레레드로 옮겨오기까지 했습니다. 디포네고로군이 이동과 기동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릴라전 위주의 군대였다 해도 본진의 잦은 이동이 번거롭지 않을 없었지만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쁠레레드에 입성했습니다.

 

그곳에서 디포네고로 왕자는 모든 백성들과 귀족들, 이슬람 울라마들의 강권에 따라 자바 땅의 술탄 압둘하미드 헤루짜끄라 아미룰묵미닌 사이딘 빠나따가마 깔리파뚤라’ ("Sultan Abdulhamid Herucakra Amirulmukminin Sayidin Panatagama Kalifatullah Tanah Jawa)라는 칭호의 술탄으로 추대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스스로에게 붙였던 압둘 하미드라는 이름도 녹아든 이 긴 칭호는 그가 자바 전체의 칼리파임을 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하멩꾸부워노 3세의 임종 당시 약속했던 것처럼 족자 술탄국이라는 일개 왕국의 국왕이 아니라 자바를 아우르는 이슬람 왕국의 술탄이 된 것입니다. 그는 쁠레레드에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쁠레레드 전투 삽화 (https://en.wikipedia.org/wiki/Plered#/media/File:Bestorming_van_Pleret.jpg)

 

하지만 1826 4 16일에 망꾸느가라안 봉국의 군대가 쳐들어와 디포네고로군의 쁠레레드 방어선을 무너뜨렸습니다. 일단 순순히 후퇴한 디포네고로군은 얼마 네덜란드가 물러난 다시 쁠레레드를 차지했지만 그해 6 6 마두라 군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코치우스 대령(Kol Cochius) 네덜란드군과 족자 끄라톤에서 출정한 수리아 왕자(Pangeran Suria), 수리아디닝랏 왕자(pangeran Suriadiningrat) 쁠레레드를 다시 공격해 왔습니다.

 

디포네고로 전쟁 네덜란드 지원을 협의하는 마두라 술탄과 재상 https://m.kiblat.net/files/2014/07/Syamina_Lapsus_XII_Juni-2014.pdf

 

하지만 쁠레레드의 강고한 방어력에 네덜란드의 초반 공격은 무위에 그쳤습니다.

 

쁠레레드의 방어선엔 용맹스러운 소년이 활약하고 있었는데 총사령관 알리 바사 쁘라위라디르죠(Ali Basah Prawiradirjo)라 불리는 센똣 쁘라위라꾸수마(Sentot Prawirakusuma)였습니다. 그는 당시 19살이었고 디포네고로의 다섯 번째 부인 라덴 아유 렛나닝시의 이복동생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하멩꾸부워노 2세의 사위이자 디포네고로 왕자의 장인어른이기도 한 라덴 롱고 쁘라위라디르죠(Raden Ronggo Prawirodirdjo)였습니다. 앞서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일찌기 마디운 반란의 수괴로 몰려 덴덜스 장군(General Daendels)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입니다. 그런 이유로 네덜란드를 극도로 미워한 센똣이 일찌감치 디포네고로군에 합류해 끼아이 모조, 망꾸부미 왕자에 못지 않은 중요한 직책에 올라 있었던 것입니다.

 

센똣 알리바사

 

그러나 6 9 네덜란드군이 강력한 폭탄을 터뜨려 성벽 일부를 무너뜨린 성안으로 밀려들자 전황은 디포네고로군에게 급격히 불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계속된 전투에서 많은 희생자를 디포네고로군은 크게 패한 물러나야 했고 네덜란드군은 쁠레레드 수비를 위해 700명의 병력을 남겨두었으나 디포네고로군은 이상 탈환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1826 7 8 네덜란드군은 쁠레레드 승전의 여세를 몰아 다시 덱소를 공격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미리 정보를 입수한 디포네고로는 이미 까수란(Kasuran)으로 본진을 옮긴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네덜란드군을 회피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덱소를 이상 점령하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 네덜란드군이 728 족자로 철수하던 길에 디포네고로군은 회심의 기습작전으로 부대의 허리를 끊었습니다.

 

알라후 악바르!”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며 수풀 속에서 느닷없이 뛰어나와 아귀처럼 달려드는 디포네고로군은 앞서 번의 승전으로 자만에 차있던 네덜란드군을 강타했습니다.

 

적장을 잡아라! 쁠레레드에서 당한 것을 철저히 갚아 주어라!”

 

전투에서 코치우스 대령과 족자 끄라톤의 왕자가 처참하게 전사했고 네덜란드군 사령관 반게인(van Geen) 간신히 목숨만 살려 수하 명과 도주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전투에서 네덜란드군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고 디포네고로군은 또다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