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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4) 본문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4)
제5장 불타오르는 자바
“우리들의 전략적 목적은 이 땅에서 네덜란드인들과 중국인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왕국을 우리 손으로 되찾아 온전히 지배하는 것입니다.”
고아슬라롱에 마련된 본진 사령부 막사에서 망꾸부미 왕자와 끼아이 모조를 비롯해 왕족, 귀족들로 구성된 지휘관들에게 디포네고로 왕자는 이 저항전쟁의 목적을 분명히 했습니다.
침략자 네덜란드뿐 아니라 오랜 기간 동인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중국인(화교)까지 몰아내야 할 이민족으로 규정한 것은 그들이 정부의 세금징수업무를 위임받아 위세를 부렸고 총독부나 네덜란드 개인사업자들의 하수인으로서 자바 백성들 위에서 대체로 군림하며 호가호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1812년 아버지 하멩꾸부워노 3세의 두 번쨰 즉위식에서 영국군에게 협조하여 끄라톤 함락에 일조한 공으로 뚜먼궁의 작위를 하사받고 나요코(Nayoko)의 영주가 된 현지 중국인 사회 우두머리 딴진싱(Tan Jin Sing)이 희희낙락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하멩꾸부워노 2세를 폐위시켜 유배보낸 공로자 중 한 명으로서 그 아들인 하멩꾸부워노 3세에게 표창과 포상을 받은 것입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그날 아버지의 얼굴에 보였던 치욕적인 표정을 마치 조금 전에 벌어진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에게 자바땅의 중국인들은 딴진싱으로 대변되는 반역자들이란 인상이 강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단계적인 전술목표들을 수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효과가 큰 목표는 왕국을 상징하는 족자의 끄라톤 궁전을 탈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왕궁 경비대는 물론 네덜란드군이 철통같이 지키는 그곳을 치려면 우선 지역적 반란을 일으켜 각 지역의 끄라톤 옹호세력들이 끄라톤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디포네고로 왕자는 끄라톤을 고립시키고 유럽인들과 중국인들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꺼두(Kedu), 바글런(Bagelen), 반유마스(Banyumas), 세랑(Serang), 몬쪼네고로(Monconegoro) 동부지역 등 술탄국 전역의 영주들과 수라카르타 수난국 경계의 영주들에게도 전달했습니다. 그 명령서에는 그들을 디포네고로군의 지휘관으로 삼는다는 임명장도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이 인간은 자기가 술탄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들 중엔 아직 디포네고로 왕자와 일면식도 없이 네덜란드와 이익을 공유하는 이들도 있었으므로 이렇게 반응하며 거절한 영주들도 있었으나 상당수의 영주들이 그 명령과 임명장을 받들어 디포네고로군에 합류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이렇게 확보된 조직을 토대로 술탄국 전체를 몇 개의 전역(戰域)으로 나누고 각 지역사령관과 부대장들, 몇몇 보좌관들도 임명하는 등 조직을 만들어 갔습니다.
“우리 군대는 족자 술탄국의 편제나 네덜란드군의 모델을 따르지 않을 것이오. 우린 강성함을 세상에 떨쳤던 오스만 투르크의 군대 편제를 따를 것이오.”
16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칼리파 부대 자니사리(Janissari) 조직이 당시 디포네고로군에 적합하다고 본 것은 이슬람의 기치를 세운 그에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3세기 전 소아시아에 있던 한 국가의 군대편제를 꿰고 있던 것에서 그의 학식의 깊이와 독서량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단장 급인 알리 파샤(Ali Pasha)가 디포네고로 군에서는 알리바사(Alibasah)로, 여단장 급인 파샤(Pasha)는 바사(Basah)로 불렸습니다. 한편 대대장급은 아가둘라(Agadulah)를 본따 둘라(dulah)라 했고 중대장은 세(Seh)라 칭했습니다.
디포네고로군은 족자 끄라톤 장악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끄라톤 호위부대로서 만띠레죠 부대(Pasukan Mantirejo), 댕 부대(Pasukan Daeng), 뉴트로 부대(pasukan Nyutro), 만둥 부대(Pasukan Mandung), 끄땅궁 부대(Pasukan Ketanggung), 까노만 부대(Pasukan Kanoman) 등을 창설했습니다. 이외에도 각각의 부대는 오스만 투르크 군편제에 따라 뚜르끼야(Turkiya), 아르끼야(Arkiya) 같은 터키식 명칭이 붙었습니다. 오스만 투르크 최정예부대인 불키요(Bulkiyo)라는 명칭이 붙은 부대도 있었습니다.
한편 병사들에게는 총포를 비롯한 무기 일체와 함께 숲속 화약공장에서 직접 만든 탄약들도 지급되었습니다. 디포네고로군은 반군답지 않게 매우 훌륭한 병참 시스템을 갖춰 병사들의 무장상태가 우수했는데 그것은 오랜 기간의 사전준비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적대세력의 귀족들과 자신을 돕는 귀족들의 명단을 각각 작성해 지휘관들에게 배포했는데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누구와 손잡고 누구를 상대로 싸워야 할지 이미 분명한 판단이 섰다는 증거였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왕족과 귀족 개개인과 가문들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슬라롱에서 디포네고로는 지휘관급 왕족과 귀족들에게 임무를 나누어주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의 아들 아놈 왕자(Pangeran Diponegoro Anom), 뚜먼궁 다누꾸수마(Tumenggung Danukusuma)는 바글렌(Bagelen)지역을, 아디위노노 왕자(Pangeran Adiwinono)와 망운디뿌로 왕자(Pangeran Mangundipuro)는 꺼두(Kedu) 지역 일대를, 아부바까르 왕자(Pangeran Abu Bakar)와 뚜먼궁 자야 무스토포(Tumenggung Jaya Mustopo)는 로와노(Lowano) 지역을, 아디수리야 왕자(Pangeran Adisurya)와 수모네고로 왕자(Pangeran Sumonegoro)는 꿀론 쁘로고(Kulon Progo)를, 뚜먼궁 쪼그로네고로(Tumenggung Cokronegoro)에게는 고데안(Godean)의 방어를 맡았습니다.
또한 조요꾸수모 왕자(Pangeran Joyokusumo – 베이 왕자(Pangeran Bei)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림)가 뚜먼궁 수라딜로고(Tumenggung Suradilogo)의 도움을 받아 족자 북방을, 뚜먼궁 수리요네고로(Tumenggung Suryonegoro)와 뚜먼궁 수로네고로(Tumenggung Suronegoro)는 족자 동편을, 슬라롱을 방어하는 죠요네고로 왕자(Pangeran Joyonegoro)와 수리요디닝랏 왕자(pangeran Suryodiningrat), 조요위노토 왕자(Pangeran Joyowinoto)에게는 족자 남쪽 방면을 맡겼고요.
구눙키둘(Gunung Kidul)은 싱오사리 왕자(pangeran Singosari)와 와라꾸수모 왕자(Pangeran Warakusumo)에게, 빠장(Pajang)지역은 머르톨로요 왕자(Pangeran Mertoloyo), 위르요꾸수모 왕자(Pangeran Wiryokusumo), 뚜먼궁 신두레죠(Tumenggung Sindurejo) 및 디포레죠 왕자(Pangeran Diporejo)에게, 수까와티는 까르토느가라 군수에게, 마디운, 마게탄, 끄디리 등은 망운느가라 군수(Bupati Mangunegara)에게 위임되었습니다.
디포네고로군의 군세는 수적으로 족자 술탄국, 수라카르타 수난국, 망꾸느가라안 봉국 그리고 빠꾸알라만 봉국 군대를 모두 합친 것의 세 배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이제 디포네고로 왕자는 본격적으로 네덜란드와 싸울 준비를 갖춘 것입니다. 네덜란드와 족자 끄라톤은 디포네고로의 군세가 날로 늘어나는 모습에 위협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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